휼륭한 직장과 예쁜 아이를 가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
2020.8.9 월요일. 회사에서 받은 마지막 여름 휴가를 마치고 출근을 했다. 아이들의 학원 일정에 맞추느라 지난 10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던 여름여행을 취소한 것도 그렇고, 연금을 위해 가까스로 버텨왔다지만 막상 떠날 생각하니 괜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동안 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리도 그리워하던 자유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니 홀가분하고 좋지 않냐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허전하고 막막한 기분은 좀처럼 떨쳐지지 않았다.
구내번호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가중이란다. 이번 주부터 휴가라고 하니 일러도 다음 주쯤에나 그녀와 대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상한 것은 휴대폰에 찍힌 번호다. 회사에 등록되어 있는 그녀의 번호는 아니라고 한다. 동료직원에게 얻은 그녀의 번호로 전화를 해본다. 전원이 꺼져있다는 메시지만 들려온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그래도 뭐 다음주 월요일엔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겠지..
딱 10년이 흘렀다. 10년 전, 그러니까 소연의 나이 즈음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인한 극도의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부심의 근원이면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고갈시키는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황망해하던 나를 구한 것은 ‘나를 찾는 지적 탐험’이라는 한 인문학 자아탐구 프로그램이었다. 휴직까지 하고 감행한 치열한 탐구 끝에 ‘꿈’이야말로 삶을 지탱해 줄 동력임을 깨닫고, 힘들게 복원해낸 작가의 ‘꿈’과 워킹맘으로서의 현실을 화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여 이듬해 책으로 펴냄으로써 새로운 삶을 열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만의 성배를 찾아 당당하게 복귀하겠다던 당찬 다짐이 무색하게 복직 후 나의 삶은 휴직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일과 사랑을 꿈이라는 가느다란 실로 꿰어보겠다는 욕심은 여전히 참으로 무모하게만 느껴졌다.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주는 한 줄 가르침에 모든 것을 다 알 것 같은 흥분에 사로잡혔다가도 여지없이 몰려오는 현실의 무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곤 하는 패턴이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과 지친 어깨를 기댈 수 있는 딱 나만큼 지친 가슴들의 주소를 알았다는 것 정도. 때로는 天刑처럼 느껴지는 고된 길이었지만 내 길이었다. 내가 견뎌낸 그 만큼만 열리는 그런 길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지치면 잠시 쉬었다가 힘이 모이면 또 다시 떠나기를 반복하는 수 밖에.
10년 전, 7월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폭염속에서도 밤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연구원 동기인 경환오빠가 물었다.
「사랑이 뭐니?」
이런 저런 대답들이 이어졌고,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순번이 돌고 다시 경환오빠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나도 모르니까 물었던 거지.' 하며 시치미를 뗐다. 그러다 모두 함께 질러대는 원성에 못 이기는 척 대답했다.
「그래도 굳이 말하라면, 한 사람 안에서 우주를 발견하는 것 아닐까?」
시원한 펀치였다. 나는 그날의 먹먹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의 말은 내가 그토록 어려워하던 ‘관계’의 미로를 탈출하는 아리아드네의 실이 되어 주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참 힘들다. 아마도 눈동자를 마주보고 있을 때 그의 동공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나의 동공 안에서 그를 품어주고, 그의 눈동자 안에 들어있는 나의 눈동자에서 다시 그를 발견하고...뭐 이런 느낌!
그가 말하는 ‘우주’가 정확히 그런 뜻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1년을 함께하며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를 품어주는 사이가 되었고 눈동자에 머금은 우주는 분명한 빛깔을 띠며 가까워지기도 하고 또 희미하게 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눈에서 멀어진 때에도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9개의 별은 자신의 궤도를 도는 가운데 끊임없이 뭉쳤다 헤어지며 새로운 별자리를 만들어냈다. 경환오빠의 질문과 대답은 우리에게 사서함같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어디에 있더라도 내 소식을 기다려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내게 소식을 전해 올 누군가가 있다는 것. 달라진 것은 그 뿐이었는데 이것만으로도 여행길의 고됨조차 신나는 이야기거리를 만들어주는 고마운 이벤트처럼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귀한 발견이었다.
여인의 神話를 만들고 싶었다. 일과 꿈과 사랑, 여자를 이루는 세 원의 교집합이 커져갈 수록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나의 삶을 통해 하나의 솔루션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힘들지만 그래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희망을 뿌리고 싶었다. 우선은 내게 너무나 절실한 영양소였으니까. 그 희망이라는 것은.
더 솔직히 말하자면, 2년간 노력하면 유용한 그리고 범용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살면서 하는 고민이라는 게, 더군다나 직장 다니면서 애 키우는 엄마들의 고민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겠는가. 정리가 안 되어 있으니 본질이 같은 고민을 되풀이하면서도 매번 처음부터 다시 접근하느라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어느 정도의 틀을 잡아준다면 자신의 상황에 맞게 조금씩 다듬어 각자의 삶을 명쾌하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문제라면 내가 하겠다. 어차피 내가 풀어야 할 문제이니, 겸사겸사한다고 생각하면 특별히 대가가 없더라도 섭섭할 것 없지 않겠는가?’ 이런 믿음에서 쓴 책이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 하라!』였다. 소설형식을 빌어 다양한 삶을 사는 워킹맘들의 삶을 컨설팅하는 내용으로, 연구원 수련기간 중에 접한 거창한 스승들을 등에 업은 모양새만은 참으로 그럴듯한 책이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였다. 성공이라고 말한다면, 이 책으로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이름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연구원 수련기간 동안 마음에 새긴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 하라’는 나의 좌우명을 실현한 최초의 성과이기도 했다. 집필하는 동안 나는 태어나서 가장 기쁜 나날을 보냈다. 모든 에너지를 아낌없이 다 바칠 수 있는 아이템을 발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사소한 어려움은 오히려 더 큰 기쁨을 위한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나의 첫 책이 나왔고, 꽤 잘 팔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대 이상의 반응에 출판사에서는 새 책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 오고 말로만 듣던 팬레터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몇 개월쯤 지난 무렵이었을까?
작가님의 책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도 너무 멀게만 느껴지네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화려한 어휘로는 도저히 진단할 수 없는 그런 삶도 있답니다.
그런 삶의 주인인 제게 작가님의 책은
희망이기 보다는 절망입니다. 건승을 빕니다.
칭찬 일색이던 팬레터에 취해있던 내게 얌전한 손글씨로 쓰여진 익명의 편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불안한 느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종교지도자도 아니고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구스르며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다.
흔한 악플같은 편지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겐 아니었다. 이건 내가 정말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 하겠다지만 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별 관심도 없는 것 아니냐?’던 연구원 동기 혜경언니의 코멘트가 다시 한번 살아나 숨통을 죄어 왔다.
‘나지선, 너 뭐하는 거니?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부럽지? 그럼 나처럼 해 봐! 안되면 말구! 이게 네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인거니? 그런 자랑질에 세상이 반응한다고 해서 그걸 기쁨의 탄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니! 너 정말 그것밖에 안 되는 거니?’
할 수만 있다면 출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부끄러운 나의 아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평생을 복중에 품고 다니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 스스로 만족할 만한 답을 내기 전까진 글을 써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 나에겐 푸르기만 한 희망이 다른 이에겐 새빨간 절망이 된다는 말인가? 나는 웃어야 행복한 사람인데...내 미소가 다른 이에게 상처가 된다니...그럼 난 어떻게 살아야한단 말인가?’
편지는 ‘어쩌면 내 기쁨이 세상에 폐가 될지도 모른다’는 나의 해묶은 불안을 자극했고, 그 상처는 작가로서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지독하게 영향을 끼쳤다. 마치 겨울잠에서 깨어난 마모트*가 아직도 드리워져 있는 자신의 그림자에 놀라서 다시 겨울잠에 빠져버린 것처럼. 소연이 나의 삶 속으로 들어온 것은 그렇게 시작된 겨울이 벌써 8년이나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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