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직장과 예쁜 아이를 가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
본격적인 짝사랑의 대상은 대학 동기였다. 한마디로 잘 생기고 철없는 녀석이었는데, 잘생겼다는 것은 당시 나 말고도 그를 마음에 두고 애태우는 여학생들이 많았다는 뜻이고 철이 없다는 것은 나에겐 정말 눈꼽만치의 관심도 없었다는 뜻이다. 내가 대학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던 학내 방송서클에 들어간 것도 순전히 그 녀석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참 기회가 많은 공간이었는데 그 시절 나에게 서클은 그 녀석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외국물 먹은 티가 팍팍나는 스타일리쉬한 분위기에 유창한 영어와 일본어,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아선지 조금은 엉뚱한 행동들. 그리고 무엇보다 제임스딘을 연상시키는 수련한 외모. 서클룸에 놓여진 그의 가방만 봐도 가슴이 뛰었다. 그러다 상태가 더 심해지자 그의 이름만 들어도 얼굴이 붉어졌다.
나중에 알았다. 내가 그 녀석을 짝사랑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 하긴 그렇게 온몸으로 티를 내는데 어찌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었겠는가? 짚더미속에 머리만 감추고 제 몸을 다 숨겼다고 생각하는 닭처럼 나는 아무도 모를 거라 굳게 믿었다. 바보같이. 대학에 입학했던 2003년에서 2006년 여름 첫 남자친구를 사귈 때까지, 아니 남자친구를 사귀면서도 한동안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나는 그의 뭐가 그렇게 좋았던 걸까? 졸업할 때까지 근 6년을 가까이서 지냈지만 30분은 커녕 10분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기억이 없다. 별나게도 말하는 걸 즐기는 나로선 참 어이없는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공감대라는 건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무엇이었을까? 음...역시 ‘외모?’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하.
두 번째 짝사랑의 열병은 일본유학시절에 찾아왔다. 동갑내기 연구실 동료였다. 후뉴 토모노부. 이 녀석 덕에 어처구니없는 삼각관계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삼각관계라고는 해도 내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그런 관계였다. 이 녀석이 연구실 안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자칫 완벽할 뻔한 그의 양다리는 어쩌다가 그의 또 다른 그녀와 내가 급속도로 친해지면서 참으로 코믹하게 들통이 나게 되었다.
나도 그녀도 그의 차를 타고 그의 본가에 놀러갔고, 같은 우동집에서 우동을 먹고 우동집 주인에게 ‘여자친구가 예쁘다’는 인사를 들었으며, 공원에서 산책을 했고, 집에 들어와 그의 어머니가 차려주신 나베요리를 먹고 그의 취미라는 나비표본을 구경했다. 내가 차마 말하지 않은 부분은 다음날 집에 바래다주면서 그가 했던 말.
「소야짱이 자고 있을 때 내가 살며시 방으로 들어가 이마에 츄~ 했는데.. 알고 있어?」
솔직히 나는 기억에 없다. 대체 그는 무슨 의도로 내게 그런 말을, 혹은 그런 행동을 했던 걸까? 내내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 가운데 로맨틱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에 대한 감정의 색깔이 짙어지고 있던 즈음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이 말을 하지 않았던 건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궁금은 했지만 차마 거기까지는 확인하고 싶지 않았었나 보다.
그의 집에 다녀와서 별일 없었다. 일본에 유학 온 외국인 친구를 본가로 초대하는 일 정도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그가 집으로 오면서 던진 말의 무슨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설사 그가 내가 자는 도중 방으로 건너와 키스를 했다한들 입술도 아니고 이마라지 않는가? 누가봐도 에로틱한 느낌이라기보다는 오빠가 여동생에게 건네는 굳나잇 키스정도의 의미에 더 가깝다.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여기서 그만하자. 이러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는데 기미코와 이야기를 하고 난 이후 내 마음 갑자기 사납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 그렇다면 그는 갈등하고 있다는 거야?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다는 거잖아?’ 엉뚱한 해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그와 그녀는 육감적인 사랑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고 나는 그것을 낱낱이 지켜봐야 했다. 후뉴는 이후에도 나를 여동생처럼 챙겼다. 아마도 만화로 배운 유아틱한 일본어가 그의 부성애 정도를 자극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자기네 나라로 유학 온 외국여학생을 잘 접대해 보내겠다는 애국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일본에 건너가 두 달쯤 지날 무렵부터 형성된 묘한 감정의 기압골은 귀국이 임박한 시점까지도 계속되었다. 나는 그가 기미코와 사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호의를 연정으로 바꿔보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으니까.
이런 내 입장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의 연애는 겨울 방학때 후뉴가 동남아로 필드웍을 떠나면서 막을 내렸다. 속이 상한 기미코는 그에게 받은 편지며 선물을 몽땅 갖고 기숙사로 찾아왔다. 그리고 며칠을 펑펑 울었다.
「그 자식이 내게 이럴 수가 있는 거냐며. 모든 걸 다 바쳐서 그를 사랑했는데 이럴 수는 없다고!」
진심으로 그녀가 안스러우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그와의 가능성의 빛을 모으고 있는 또 하나의 내가 있었다. ‘역시 그가 정말로 좋아했던 건 나야. 결국 그랬던 거야!’하며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쓰며 흥분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늪이었다. 빠져나오려고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들었다. 아니 머리는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가슴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뜨겁게 요동치는 가슴을 이기기에 머리는 너무나 무력한 기관이었다.
참 비겁한 승리였다. 마지막 남은 이성의 힘으로 필사적으로 외친 S.O.S.가 착하고 바보같은 누군가의 귀에 닿았던 것이다. 아직도 궁금하다. 그 바보는 정말 바보였던 걸까? 그가 정말 바보였을지라도 몰랐을 리 없다. 나의 머리는 마지막 S를 외치는 순간 죽어버렸고, 나의 가슴은 아직 늪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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