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아난다의 일곱번째 화요편지

by 아난다

안녕하세요? 화요편지 애독자 여러분!


지금 시각은 새벽 2시 18분. 편지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은 지 8시간째입니다. 저는 안녕할까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엄청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어떤 주제로도 한 단락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머리는 점점 멍해오지만 설상가상 내일은 오전부터 다른 일정이 있어서 시간을 내기 어렵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무조건 쓰고 자야합니다.


그나마 다행은 글이 안 되는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겁니다. 저는 그걸 ‘私心’이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사사로운 욕심. 우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오염없이 전달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자에게는 단 한 줄의 글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 ‘작가’란 글을 지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비워 세상을 위해 내어놓은 자를 이르는 호칭이라는 것을 또 까먹었습니다. 이럴 때 방법은 하나입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깊게 호흡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잠자리에 들기 전 어지러운 마음을 추스르려고 선배들의 마음편지를 읽어내려가다 발견한 글입니다.


<난관을 대하는 하나의 자세>*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mailing&search_keyword=%EB%82%9C%EA%B4%80%EC%9D%84&search_target=title&document_srl=590821)


써야할 글이 안 풀릴 때는 속이 타들어갈 만큼 답답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글이 막히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은 아닌 듯합니다. 글이 안 될 정도로 ‘私心’이 넘쳐날 때는 삶도 뭉치고 막히게 마련입니다. 눈이 오는 것을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듯 욕심이 일어나는 것 역시 의식으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 듯 하구요.


그러나 저의 경우, 글의 불통과 삶의 불통을 대하는 자세는 사뭇 다른 모양입니다. 오롯이 홀로하는 작업인 글이 안 풀릴 때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들여다보지만 일상에서는 문제가 표면화되기 전까지는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이 막혀준 덕분에 고요히 제 마음을 바라 볼 기회를 얻고서야 옳고 싶고 이기고 싶은 욕심에 휘둘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그 욕심을 어째보려고는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억 지로 밀어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 어쩔 꺼냐구요? 저도 엎어진 김에 좀 쉬어가 볼까요? 우선은 잠깐이라도 눈을 좀 붙이는 것부터. 그 다음 일은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


* 이 글은 2006년 3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총 455여편의 편지를 보내주신『숲에게 길을 묻다』,『숲에서 온 편지』등의 저자 김용규 작가의 글 중에 독자분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편지 중 한통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