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수업? 엄마수업!

아이와 함께 만들어가는 엄마의 두번째 인생

by 아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이미 연구원이었다. 아이를 기르며 배게 만한 책들을 일주일에 한권씩 소화하고 글을 쓸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육아휴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승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별안간 휴직을 하겠다는 나를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았지만 스승처럼 성공한 작가가 될 수 있다면 그 정도 난관쯤이야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과제로 나온 책들은 ‘무의식’이 어쩌구 ‘신화’가 어쩌구 그야말로 뜬구름만 잡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스승이 던진 질문에 대답하고 있노라면 자신조차도 눈뜨고 볼 수 없기에 어떻게든 꽁꽁 숨겨놓고 싶었던, 아니 워낙에 감쪽같이 숨겨놓아 존재조차도 잊고 있던 처참한 몰골의 나와 자꾸만 마주쳐야 했다. 지금보다 더 멋져 보여도 시원찮을 판국에 어쩌자구 이리 내리 곤두박질만 치게 하시는 스승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희미하게나마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글을 쓰는 것이 좋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 자신을 위한 글쓰기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런 내가 대중을 상대로 한 글쓰기를 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쩔 수 없어 감당하고 있던 ‘엄마’라는 역할이야말로 ‘사람의 성장을 돕는 조력자’의 자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다시 말해 지금 여기서 내가 정말 해야할 일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에 내 가치를 증명해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돕는 ‘엄마’로서의 역할에 전념하는 것임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보살펴야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진실이었다. 정말로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먼저 나 자신과 아이를 정성으로 보살피고 성장시킬 수 있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 스승을 비롯해 내게 힘을 주던 위대한 작가들 역시 지금의 나처럼 희미한 가능성의 씨앗에서부터 자신을 성장시켜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깨달음은 점점 신념으로 변해갔다. 아니 혹시나 작가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인간을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직업을 품고 있는 '엄마'역할을 속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하나쯤은 발견하고 단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혀 예상치 못하던 깨달음으로 삶의 결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남몰래 기대했던 것처럼 벼락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도 아니었지만, 더 이상 일상은 무료하고 건조한 사막이 아니었다. 이것이‘살아있음의 경험’인가 하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왔다. 나와 아이들을 흠뻑 사랑하는 시간을 통해 꿈꾸는 새 삶을 일구는데 필요한 근육을 단련시킬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니 고생마저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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