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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엄마가 함께 자라는 시간

아이와 함께 만드는 엄마의 새인생

by 아난다

그렇게 아이들이 학교나 어린이집에 간 자유시간에 스스로를 돌보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그 에너지를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과 나누는 형태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이를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이라고 부른다. 기왕 마음먹은 만큼, 아이들에게 가능한 가장 건강한 에너지를 주고 싶었다. ‘언제 나는 가장 건강한 에너지 상태가 되는가?’라는 질문이 생긴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재밌어. 엄청 재밌어. 지금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거 하나 밖에 없거든.”


소설『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을 상담하던 정신과 의사 아내의 이야기다. 유능하고 욕심 많던 안과 의사인 아내는 교수를 포기하고, 페이닥터가 되었다가, 결국 일을 그만둔다. 학창시절 내내 온갖 수학경시대회를 휩쓸었던 그녀는 틈만 나면 아이의 초등학교 문제집을 풀어댄다. 그 모습이 거슬렸던 남편이 이유를 묻자 그녀는 재밌어서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지금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거 하나 밖에 없거든.”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다시 묻는 남편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다. 꼭 그녀와 같은 마음으로 하던 일이 바로 읽기와 쓰기였다. 호기있게 일터를 떠나왔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현장에 들어서고 보니 엄마로서의 ‘성장’과 인간으로서의 ‘성장’이 하나를 추구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하는 제로섬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상생하는 관계라는 깨달음은 간절한 희망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신념에 불과해 보였다. 더군다나 두 영역 모두가 이제야 가능성의 씨앗 정도를 발견한 왕초보 수준이었던 상황이니 그 신념조차 흔들리기가 일쑤였다.


이런 내게 책은 느리고 한심해 가족과 친구들에게조차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인 찌질한 노진구의 곁을 지켜주는 도라에몽과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책은 지혜가 필요할 땐 지혜를, 위로가 필요할 땐 위로를, 뭐가 필요한지 조차 잘 모를 때조차 바로 그 순간 꼭 필요한 그 무엇을 주었다. 편한 시간에 시작해 힘들면 언제든 끝낼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래도 답답하고 못 견디겠으면 노트를 열었다. 거기에 좋은 ‘엄마’,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할 수 없었던 마음 속 말들을 다 쏟아내고 나면 속이 시원해졌다. 그러다보면 책에서도 얻지 못하던 질문의 답을 얻기도 했다. 다시 말해 책과 노트는 내 뜻대로 되는 유일한 세상이었다.


틈만 나면 책과 노트를 붙들고 있는 내가 식구들에게 좋게 보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돈이 되냐? 밥이 되냐? 그럴 시간 있으면 아이들이나 한 번 더 안아 주지.’ 누군가는 말로 했고 누군가는 말아닌 말을 했다. 그러나 버석거리는 가슴으로는 아무도 안을 수가 없었다. 아이를 안을 힘을 모으기 위해서라도 내겐 바로 그 시간이 절실했다. 아이들에 대한 본능적 책임감이 나를 살아있게 한 이유였다면 읽기와 쓰기는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생명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나를 살리는 공부가 ‘육아’에 적용되고, 아이들과 함께 나눈 기쁨이 ‘나’를 일으키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작은 씨앗은 조금씩 자라났고, 위태롭게만 보이던 나의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도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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