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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시>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아이에게 선물 받은 새로운 인생

by 아난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즐기는 세상’에 대한 열망에 몸을 맡긴지 올해로 10년차를 맞게 되었다. 그사이 엄마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던 아이들도 훌쩍 자라 조금씩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섭섭하지 않다고는 못하겠지만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이니 또한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오래 기다려온 그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왜 자꾸만 영화 <쇼생크의 탈출>에서 극중 장기수 레드로 나오는 모건 프리먼의 가석방 심사장면이 떠오르는 걸까?


쇼생크의 가석방 행사는 보여주기식 연례행사다. 어차피 내보내지 않을 종신형 죄수를 심사한 후 부적격 판정을 내리거나 너무 늙어서 수감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죄수들을 사회로 내쫓는 수단일 뿐이다. 앞선 두 차례의 심사에서 레드는 면접관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잔뜩 위축된 채 자신이 교화되었다는 판에 박힌 말을 늘어놓을 뿐이다.


하지만 마지막 가석방 심사에서 레드는 더 이상 심사관들의 눈치를 보며 불안해하지 않는다. 얌전한 모범수인 양 스스로를 포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40년간의 수감생활이 자신에게 알려준 것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삶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젊은 시절에 저지른 실수로 철저하게 망가져버린 인생, 애타게 후회하지만 결코 되돌릴 수 없기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삶에 대해 진솔한 태도로 말한다. 그는 후회로 점철된 자신의 삶이라도 온전하게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배운 것처럼 보였다.


레드의 희망은 언젠가 감옥에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었다. 그는 감옥에서 만난 친구 앤디에게 회색 감옥에 살아야 하는 죄수라도 독방 한 켠에 꽃을 심어 가꿀 수 있음을, 작은 하모니카를 불 수 있음을,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이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이 레드를 좀 더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었고 역설적이게도 가석방심사관들은 레드의 의연한 태도에 감명을 받는다. 드디어 레드의 세 번째 가석방 심사 서류에 붉고 선명한 ‘승인’도장이 찍힌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고작 감옥생활과 비유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뜻하지 않게 들어간 감옥이 레드에게 ‘학교’였고, 감옥에서 만난 친구 앤디가 ‘스승’이었던 것처럼 엄마가 되기 전에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하던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게는 같은 역할을 해준 운명이었다는 것뿐이다.


극중 레드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그동안 몇 차례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을 벗어나 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아니라고 잡아 땠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완전히 잊혀져 영원히 집안에 갇혀 살게 될까봐 너무나 두려웠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이제 그만 집밖을 나가도 된다는 허가를 받아내고 싶었다. 결과는 당연한 기각. 그래도 몇 차례의 아픈 실패를 통해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다.


두려움과 조바심은 삶과 글에 모두 해롭다는 것이었다. 삶을 위해서도, 글을 위해서도 여전히 나를 휘두르는 두려움과 조바심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화두가 내게로 온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를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그토록 원하던 자유의 時空임을, 다시 말해 나를 석방시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임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다시 한번 가석방심사에 응해보기로 한 것은 지난 10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내게 일어난 변화들을 정리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 ‘엄마로 산다는 것은 내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육아와 자기 생활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어떻게 진정한 나를 발견해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나만의 대답을 구하던 내 생애 가장 치열하고 충만했던 시간들을 담담히 돌아보다 보면 지금 내가 서 있는 현 위치 정도는 가늠할 수 있게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엄마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바로 그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쓰는 사람으로서도 마찬가지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내가 독자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비법도, 뛰어난 지혜도 아닌 더 아름다운 삶을 그리워하는 한 인간의 솔직하고도 진지한 모색의 과정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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