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
‘평생직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질 만큼 사회구조가 변화무쌍해진 요즘, 일단 되면 죽을 때까지 현역에서 뛸 수 있는 평~~~생 직업이 남아 있다. 혹하는가?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엄마’. 엄마가 무슨 직업이냐고? 나도 그런 줄만 알았다. 그랬으니 풀타임 직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간 크게 아무 대책도 없이 아이를 낳을 엄두를 낼 수 있었다. 출산준비물 세트를 완비하는 걸로 아이를 맞을 준비가 다 끝나는 줄만 알았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이라는 가상 구직 광고를 하고 구직자들과 인터뷰를 한 실황을 엮은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직책은 상황실장. 아주 중요한 직책임. 업무량이 매우 방대함. 기동성이 뛰어나야함. 뛰어난 협상기술, 인간관계 능력 요구. 업무시간 대부분 서있거나 허리를 구부리고 있어야 함. 24시간 밤샘 대기를 해야 하는 날도 있다. 휴일도 없고 명절에는 더 바쁘다. 고객에게 눈을 떼서는 안 된다. 의학 재정 요리 학위가 필요하다. 급여는 없다.”
이런 극한 직업 있다면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되던 영상이었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혹독하다. 미친 짓, 비인도적’이라며 누가 이런 일을 하겠냐고 반응했다. 영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위해 기쁘게 헌신하는 위대한 엄마들을 찬양하며 훈훈하게 끝났지만 내 맘은 전혀 훈훈해 지지가 않았다.‘그렇게 좋으면 니가 대신 하던지!!!’하는 말을 삼키느라 한 동안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였으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길을 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고삐를 붙잡고 아들은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부자를 향해 “당나귀는 사람이 타거나 짐을 싣는 동물인 데 마치 상전 모시듯 한다”며 조롱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당나귀 등에 아들을 태우고 간다. 마을 정자를 지날 때쯤 노인들은 큰 소리로 “아버지가 아들 버릇을 잘못 들이고 있다”며 꾸짖는다. 훈계를 받은 아버지는 아들 대신 당나귀 등에 올라타고 길을 재촉한다.
빨래터에서 이를 본 동네 아낙들은 “아들을 나 몰라라 하는 매정한 아버지”라고 맹비난한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당나귀 등에 올라타고 길을 간다. 이번에는 젊은 사람들이 “저러다가 힘에 부친 당나귀가 쓰러져 죽을 거다”며 혀를 끌끌 찬다.
어찌할 줄 모르는 아버지는 “부자(父子)가 당나귀를 짊어지고 가면 될 것”이라는 한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리를 건널 때 당나귀가 갑자기 바동거린 바람에 당나귀는 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당나귀를 팔러 가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제목의 이솝우화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익숙한 이야기다. 그런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물론 깜짝 놀라 얼른 눈물을 훔치고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나 결국 아이가 잠든 후 다시 나와 펴들고 혼자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면되는 거냐고! 좋은 엄마는 바라지도 않아!!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야 나쁜 엄마를 면할 수 있는 거냐고!!!’
세계적인 경영의 구루 피터드러커는 저서 <성과를 향한 도전>에서 어떤 직무가 두 세 사람을 좌절시킨다면, 심지어 그들 각자가 전직에서는 직무를 훌륭히 수행했는데도 그렇다면, 그 직무는 인간이 맡기에는 부적합한 것이라고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런 직무는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인간에게는 보기 드문 다양한 기질들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개개인들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지식과 고도의 갖가지 기술들을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기질을 바꿀 수는 없다. 따라서 갖가지 특수한 기질들을 요구하는 직무는「수행할 수 없는 직무」, 즉 「사람을 죽이는 직무」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능력과 천운이 겹쳐 이런 업무를 수행해내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과를 내는 최고경영자는 조직의 성공여부를 천재가 있는가 없는가에 걸지 않는다. 조직의 성공여부는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비범한 성과를 달성하도록 하는 능력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업무가「사람을 죽이는 직무」임이 확인되면 이를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직무를 다시 설계하는 것 뿐이라고 한다.
피터드러커는 대표적인 「사람을 죽이는 직무」로 규모가 큰 미국 대학의 총장, 대규모 다국적 기업의 해외담당 부사장, 주요 강대국 대사를 들고 있다. 이 직무들은 이론상 뛰어나고 논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느 누구도 그런 직무들을 감당할 수가 없다. 이미 능력이 증명된 사람들이 그 직무를 시도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다. 그들의 활동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그런 일을 모두 관리하다보면, 정작 자신의 제1업무에 쓸 시간이 없고 흥미도 못 느끼게 된다. 결국 6개월 또는 1년 후, 그 직무를 맡은 사람들은 실패자라는 낙인과 함께 그 직무를 떠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직무들이 제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엄마’라는 직무만 할까? 거액의 연봉과 사회적 인정, 뭐 이런 이야기는 다 그만두더라도 결정적으로 ‘엄마’는 일단 되고 나면 죽기 전에는, 아니 죽어서도 절대로 그만 둘 수 없는 종신직이 아닌가? 게다가 조직원이라고는 달랑 부부 밖에 없는 가정이라는 조직에서 도대체 누가 이 말도 안 되는 직무를 합리적으로 재설계해 줄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