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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에서 보물을 찾다



나는 그곳에서 보물을 보았다





전통시장



 우리가 어떤 단어를 연상할 때 그 인식의 범주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경험에는 직접 경험과 간접경험이 포함된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온 환경의 중심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이것은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단어를 생각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시장이라던가...

'시장'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특히나 전통시장이라고 하면 8~90년대를 살아온 세대들의 공통된 기억 속에 존재하는 모습들은 거의 비슷하다. 노점에 좌판을 깔고 앉아서 나물과 채소들을 판매하는 상인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일찍이 터를 잡고 자그마한 지붕 있는 건물 내에서 생선을 판매하고 있는 생선장수, 먼지가 자욱한 유리 여닫이 문안으로 보이는 곡식 다라.




 시장이라는 연상의 종착점에는 이렇게 누구나 생각하는 시장적 풍경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 보면 이러한 존재의 인식 과정을 깨는 경우들이 종종 발생한다. 이런 사고의 확장은 창의성의 질료가 되고, 조금 더 나은 도출과정을 위한 원동력이 된다. 이걸 요즘에는 '창조경제', '콜라보'등의 여러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얼마 전 장흥에 내려갔다가 이러한 시장의 선입견을 깨고 있는 곳을 발견했다. 전통시장 내에 조그맣게 자리 잡고 있는 레스토랑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전혀 시장 같지 않았으나 시장에 위치하고 있었고, 전혀 레스토랑이 있지 않을만한 곳에서 레스토랑을 열고 있었다.







레스토랑


 목재로 구성된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건 거꾸로 걸린 와인잔과 샴페인 잔들이었다. 새로운 풍경이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상상하고 들어왔는가. 이 레스토랑의 바깥쪽과 안쪽의 차이는 영화 '헤리포터'에서 나오는 영국의 거무튀튀한 플랫폼과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방불케 했다. 이러한 비유가 너무하다면 만화에서 주인공이 벽에다 문을 그리고 열고 들어갔을때 맞이하는 새로운 세상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될까?




 대략 6평 남짓한 그들의 가게는 꽤나 새로운 경험이었다. 로빈슨 크루소가 표류했던 섬에서, 난쟁이들에 의해 코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묶여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알만 간신히 돌리며 새로운 세상에 아연실색하던 그러한 모습으로 나는 가게 앞에서 2초간 움직이지 않았다.

 가게 안은 나지막이 깔리는 음악을 제외하곤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6평 남짓한 가게에는 기껏해야 테이블을 2개 정도밖에 놓을 수가 없었다. 들어갔을 때 한 무리의 일행들이 가게의 반을 차지하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 무리라고 해봤자 2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남겨준 나머지 반에 앉아서 우리는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메뉴들을 보니 이제야 레스토랑 같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이것저것 시켜본다. 항상 내일은 없는 것처럼 오늘을 먹는다면 우리는 행복하리라.




그렇게 하나하나 코스로 나오는 요리들을 맛을 본다. 음식들 대부분이 먹는 순간 맛의 풍성함이 뇌리를 스친다. 나 같은 음식에 문외한들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맛들이 풍성하다. MSG에 절어있는 얇고 강한 맛이 아니라 날것의 느낌이 살아있는 풍성하고도 강렬한 재료의 맛이 느껴졌다. 혀로 그 감촉을 느끼며,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얼마 전 한 셰프에게 물어봤다.


 "음식을 잘한다는 건 뭐고, 맛있는 음식이란 무언가요?"


 "음식을 잘한다는 건 음식에 균형이 맞는 것을 말합니다. 각각의 맛이 조화로워야 하고 그것들이 어우러지게 만드는 것을 음식을 잘 한다고 하는 거지요."


 그랬다.







하지만 보물은 음식의 맛뿐만이 아니다




  하도 독특하여 알아본 셰프의 히스토리는 재미있었다. 각종 요리대회를 석권하고 프랑스 대사관에서까지 일을 했었다. 한창 잘 나가는 30대의 젊은 나이. 그런데 문득 고향으로 내려와 이 작은 가게를 운영하게 된다.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단지 삶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이렇게 결정을 내리고 실행한다는 점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수많은 방향성을 설정하지만 실행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새로운 선택을 위해 버려야 하는 기존의 것들에 대한 미련이며 찾아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서울에서 잘 나가던 이가 정반대의 땅끝으로 오게 된다면. 우리가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할까.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사회에서 다들 얻으려 발버둥 치는 것들은 거의 정해져 있다. 그것들이 비록 실체가 없는 것들이 기는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이것에 목을 매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일순간 셰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듯도 했다. 살다 보면 마음에 등이 켜질 때가 있다. 노란색 등이 켜지면 허상 같던 사회적 가치들보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찰나의 순간 떠오른다.

 물론 이러한 순간은 일상에 묻혀 금세 바람에 실려가 버리고, 다시 사회에 부속된다. 하지만 마음의 맥을 잘 잡고 간다면 우리는 언젠가 스스로 추구하고자 하는 최선의 상대적이고도 주관적인 가치를 실현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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