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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상청 날씨 같으니라고

어느 운명론자의 긍정적 사고론



주말엔 야외 촬영이 주를 이룬다.(내 직업은 포토그래퍼다. 시간 날 때마다 글을 쓰긴 하지만)

운영하는 한옥 스튜디오는 보통의 스튜디오들과 달리 마당이 있고, 마당에서 촬영이 이루어진다. 

야외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예약은 꽤 있는 편이다.


하지만 야외이기 때문에 신경 쓰이는 건 단연코 날씨이다. 더운 날도 추운 날도 힘들다. 햇빛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오후 12시에서 3시 사이엔 얼굴에 그림자가 져 촬영이 불가하다. 

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건 '비'나 '눈' 


 폭우나 폭설이 내리면 장소 특성상 사진 촬영이 무산된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계획된 하루 일정이 사라지는 것은 손해다. 시간을 먹고사는 직업인지라 더욱 그러하다. 그렇기에 기상청 예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예보가 맞았던 적은 손에 꼽힌다. 

특히 3~4일 전 예보의 정확도는 흠.. 기상청 야유회 날 비 온다는 옛 유머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번 주말도 비가 온다는 소식에 걱정했었다. 예약이 5건이나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말 아침. 하늘이 어찌나 청명하고 좋던지. 하늘에서 구름이 춤을 추고 있었다. 

 "... 역시 기상청 훌륭하군."

 속으로 되뇌었다. 

 덕분에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땀을 뻘뻘 흘리며 모든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기상청을 욕할 생각은 없다. 사람 일도 한 치 앞을 알기 어려운데, 날씨야 오죽할까. 주변의 대부분도 기상청 예보에 그다지 신빙성을 표하진 않는다. 나 역시 그러하고. 결과적으로 비가 올지 눈이 올진 내일이 돼봐야 안다. 그러면서도 기상청 예보를 찾아본다.


어차피 결과는 맞거나 맞지 않거나 50% 이지만.


기상청 예보를 찾아보는 행위는 사주나 점을 보는 행위와 닮아있다. 

미래를 확인하고 싶어 사주나 점을 보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리고 안 일어날 일은 안 일어난다. 

사람들은 말한다. 

 

"에이 재미로 보는 거지."


그렇다. 정말 재미로 보는 거다. 미래를 바꿀 수 있어 본다기보다는 TV 관전하듯 그냥 재미로 보는 거다. 그래서 난 사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재밌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런 거에 휘둘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보는 걸 좋아하는 것과 휘둘리는 건 차이가 있다. 그다지 휘둘리지는 않거든. 왜냐하면 일어나야 할 일은 언젠가 일어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운명론자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 개인적으로 운명론을 좋아한다.

운명론 때문에 나는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만약 우리가 어느 시기에 운이 따라 잘 되도록 정해져 있다면, 그 시기쯤 돼서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던가, 지금까지의 패턴을 바꾸고 새로운 패턴을 적용한다던지 등의 여러 행동들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과 상황들이 내가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듯 하지만, 내가 똑똑해서라기 보다는 그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단지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나는 그동안 성장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가설일 뿐이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게 주어진 너무나 많은 것들이 아주 우연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내 의지대로 주어진 것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우리 부모님을 내가 선택하지는 않았고, 대학을 갈 수 있는 가정상황에 놓이게 된 것도 내가 선택하진 않았고, 사진에 재능이 주어졌던 것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고등학교 때 혼자서 미친놈처럼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글을 쓰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우연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된 것이고, 이 중에 하나라도 빠졌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사는 게 이런데 내가 의도한 대로 주체적으로 살아간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에도 자만할 필요도 실망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잘되도 내가 잘해서 잘됐기 보다는 잘될 시기이고, 안될때에도 지금이 안될 시기이지 내가 무능해서가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엄청난 정신승리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들 자신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 뿐이다. 대신 주어진 것들에 더 열심히 살고자 한다. 누구나 주어진 기본의 것들이 있는데 그걸 잘 활용해본다면 뭐든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게으른 놈은 뭘해도 안된다. 그것도 자기 운명이겠지만.


 그래서 살다가 일이 잘 안 풀리고 막막할때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런 기상청 날씨 같으니라고. 내일은 더 좋아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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