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중점과 우선순위가 있다
가족들과 같이 다닐 때 가장 많이 쓰는 카메라는 단연코 스마트폰이다. 과거엔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녔던 적도 있었다. 그런 날은 그날 찍은 사진을 컴퓨터에서 열어보며 흡족해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카메라가 거추장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먼저 가족과 나들이를 나가면 고요히 사진 찍을 시간이 없다. 게다가 가족들을 찍어 주기 위해선 어느 정도 가족들과 떨어져 걸어야 했다. 그 모습은 흡사 가족이라기보다 보디가드 같은 모습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더 좋은 사진을 고민하느라 와이프와의 대화에 건성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카메라를 양 손으로 들고 다니느라 아이의 손을 잘 잡아줄 수도 없었다. 어느 순간 가족들과 함께 나온 것인지, 사진을 찍으러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중점과 우선순위를 찾아야 한다.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날의 목적은 가족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여기서 우선순위를 망각하면 사진이 중심이 된다. 그럴 경우 소외된 가족과는 말하진 않지만 작은 틈이 생긴다. 그래서 우선순위가 지켜지지 않으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를 깨닫고 나의 주력 카메라는 스마트폰이 되었다. 다행인 점은 요즘 출시되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상향 평준화 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일반 카메라에 비해 이미지센서나 광학적 성능은 떨어지지만, 수많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미러리스 카메라와 비슷한 결과물을 산출해 낸다. 모바일이나 온라인에서 볼 때에는 전혀 문제없는 결과물을 받아 볼 수 있다.
거기에 덤으로 가족들과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가장 크게 변화된 점은 스마트폰의 무게가 가벼워 한 손으로도 촬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덕에 아이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의 장점은 광각에서 망원까지 줌이 되는 스마트폰의 특성상 굳이 가족을 찍기 위해 떨어져 걸을 필요가 없어졌다. 가족들과 함께 걸으며 한 손을 치켜들고 셀카를 찍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작고 소중한 스마트폰은 가족과 나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좁혀주었다. 이러한 틈의 메움은 조금 더 가족과의 나들이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화질이 좋은 결과물의 사진보다 더 좋은 사진은 웃고 있는 가족의 모습이다.
오늘도 가족과 함께 서울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길을 걷다가 한 아버지가 카메라 2대를 어깨와 목에 걸고, 카메라 가방까지 짊어지고 두 아이와 부인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는 사진에 진심인 듯 보였다. 적어도 좋은 결과물은 보장이 되어 있었지만 아버지는 웃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그리고 어떠한 선택을 하던 그것은 비난받지 않아야 한다. 단지 나는 스마트폰을 선택했고, 덕분에 아이의 손과 부인과의 대화를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