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봄이었다. 인문계에 다니고 있었지만, 나는 고3때 직업반에 들어가서 신설동에 있는 자동차 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1주일에 한번만 학교를 갔다, 그날은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일주일에 한번 학교에 가다 보니 준비물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평상시에는 일주일에 한번 학교에 갔을 때는 교무실 옆에 작은 방에 직업반 학생들이 따로 모여서 하루를 보냈었다. 그날은 반에 올라가라고 해서 수업에 들어가서 제일 뒤에 앉아 있었다. 그날은 영어 시간이었는데 일주일에 한번씩만 학교에 오다 보니 준비물로 챙겨오라는 교재를 챙겨가지 못했다. 나는 멍청하게 뒤에 앉아서 바닥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이 돌아다니면서 교재를 제대로 챙겨왔는지 확인을 했는데, 내가 챙겨오라는 교재를 챙겨오지 않고, 영어교과서를 펴놓고 눈치를 보며 앉아 있는 모습을 보시더니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병신새끼, 베트공같이 생긴 새끼.. 얘들은 제일 뒤에 앉아서 혼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난 얼굴이 너무 화끈 거려서 그날 뒤로는 학교를 안가기 시작했다.
집에서 교복을 입고 나와서 학교에는 가지 않고, 알바를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 했던 아르바이트는 중국집 배달이었다. 당시 오토바이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오토바이 면허를 따고, 배달을 시작했다. 첫월급은 80만원이었다. 2주 이상 학교에 가지 않으니 담당 선생님이 알바하는 장소를 찾아왔다. 고3에 들어가면서 바로 직업반에 들어가게 되어서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해본적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학교에 다시 나오라고 했지만, 난 더 이상 학교에 대한 마음이 없었다. 학교를 나가지 않으려면 자퇴 확인서? 에 부모님과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해서 어머니와 같이 학교를 찾아 갔다. 어머니는 그날 정말 많이 우셨다.
어릴 때는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각종 만들기 대회에서 나가서 상도 많이 받고, 학교에서 뿐 만 아니라 서울시 대회에도 많이 나갔었다. 중학교때는 성적도 중상위권이었는데 영어에 대한 과목은 학원을 다니지 않다 보니, 혼자서 하기 어려워서 중1때부터 포기 상태였다. 고등학교에 공고로 진학하고 싶었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인문계로 진학을 했다. 다른 과목은 그래도 조금씩 했지만, 영어에 대해서 전혀 기본지식이 없다 보니 평균이 전혀 나오지 않았고, 고2때부터는 학업에 대한 마음도 많이 없어져서 학교와 점점 멀어져 갔다. 고 3때 직업반이라는 곳이 생겨서 자신이 배우고 싶은 분야 학원을 다니면서 자격증도 따고 취업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자동차 정비를 배울수 있는 직업반에 들어갔다. 자동차정비쪽으로라도 잘 배워서 나만의 자동차를 만드는 꿈이 생겼다.
각 학교에서 직업반으로 온 아이들은 공부보다는 학교를 피해서 온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던거 같다. 선생님도 적극적인 수업보다는 다른 이야기로 하루 하루 시간을 보낼 때가 많이 있었고, 지루한 이론 수업이 대분이고, 실습 시간은 많지 않았었다.
이렇게 다닐 바에는 차라리 알바를 빨리 시작해서 돈을 모아 기숙학원에 다니고 공부를해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 부모님에게 짐을 드리면서까지 대학에 가기 보다는 혼자 힘으로 대학에 가고 싶었다.
중국집 배달일은 정말 많이 힘들었다. 한번은 실수로 젓가락과 단무지를 놓고 배달을 갔다가 손님에게 엄청 혼나고 1,000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며 슈퍼에 가서 김치랑 젓가락을 사오라고 했는데, 그때 너무 서로워서 가게에 돌아와서 정말 많이 울었다...
겨울철에 배달일을 하면서 길이 미끄러워서 넘어지기도 참 많이 했다. 자장면 배달은 특히 한손으로 오토바이를 타면서 배달을 해야 하고, 음식물이 가득한 그릇들을 수거할 때에도 참 많이 힘들었다.
어린 나이에 배달을 하다 보니, 손님들이 무시하는 말을 굉장히 많이 했었고, 툭하면 반말로 명령조로 얘기를 많이 했다. 배달일을 하는 곳에서도 막내로 일을 하다 보니 형들보다 일은 2배로 많이 하면서 월급은 2배로 적었다.. 그래도 성실하게 돈을 모아서 꼭 다시 학교에 다니고 싶었다.
낮에 중국집 배달만 해서는 돈이 턱없이 부족할 거 같아서 밤에 우유 배달도 시작했다. 거의 잠을 못자고 매일 배달을 하다 보니 졸음 운전을 할 때도 많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위험했던거 같다.
배달과 우유 배달을 해도 돈이 별로 되지 않다 보니, 피자배달, 냉면배달, 도시락 배달, 퀵서비스, 여러 가지 배달일을 전전했다. 왕십리에 있는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면서 검정고시도 합격을 했다.
돈을 모아서 꼭 대학에 다시 다니고 싶었다.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배달일을 하면서 참 무시도 많이 당하고, 사고도 많이 나고 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담배를 정말 많이 피웠다 많이 피는 날은 하루에 2갑 이상을 피는 날도 있었다. (지금은 담배를 끊고 생활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20대 초반에 신사동에서 도시락 배달 일을 할때다 압구정도 있는 가발 전문점에 배달을 갔는데 배달이 너무 늦게 왔다고 문에 들어갈 때부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 새끼야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지금 배달을 오는거냐고 정말 심하게 욕을 하더니, 너무 화가 났는지 뺨을 굉장히 세 개 때렸다. 정말 별이 보였다. 그때는 왜 가만히 맞고만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화가 난다. 입술이 터져서 피가 났다.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 맞아 죽을거 같았다. 도망치듯 나와서 옆집에 가서 신고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정말 정신이 없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얻어 맞은 적은 처음이었다. 경찰관들이 출동을 하고, 나중에는 그 사람이 화가 풀렸는지 아들같아서 한 소리 하고 한 대 때렸다고 했다.. 강남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쓰고 나왔는데 그 이후로 그 사람은 처벌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그 일 이후로 난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며 살아갔다.
내가 평생 배달만 하면서 이렇게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냥 막연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도 막연했다.
역삼동에 있는 배달전문점에서 일을 할 때였다. 그날은 배달이 많지 않아서 앉아 있었는데 같이 일하던 형이 화를 냈다. 배달이 없는데 서 있지 않고 앉아서 있다고 화풀이를 했다. 정말 일을 하다가 무시도 많이 당하고, 이유 없이 욕먹고 혼날 때도 많이 있었고, 눈치 밥먹으면서 지낼 때도 많이 있었는데, 좀 더 가치 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머릿속에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주로 강남 지역에서 배달을 했는데, 이유는 다른 지역보다 강남이 지도 외우기가 쉽고, 배달 시급을 더 많이 주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강남역을 지나가는데 현수막에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라는 책의 내용이 써 있었다. 그 책을 꼭 한번 읽어 보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독서로 삶을 한번 바꿔 보고 싶었다. 책을 정말 열심히 반복해서 읽었다. 그 다음에 읽은 책은 이지성 작가님의 꿈꾸는 다락방이다. 종이 위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써보기 시작했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많이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시간을 관리해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지인의 추천으로 3P바인더를 만나서 매일 쓰는 시간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에버노트라는 것도 지인이 추천을 해주어서 에버노트 사용법도 찾아다녔다. 각종 자기계발 서적과 강의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강사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아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들을 사람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알려줄 수 있는 모임도 소모임 어플을 통해서 만들어서 3~5명씩 모아서 모임을 진행했다. 배달일을 하면서 강사 명함을 만들고, 강사의 꿈을 키우면서 각종 강의를 찾아다니고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이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인데 그 시기가 가장 많이 성장했던 시간인거 같다. 그 당시에는 정말 죽을만큼 힘들었는데 그 때 힘들었던 시간들이 지금의 가장큰 밑거름이 되는거 같다.
나는 아직까지 대학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강의할 때가 자주 있다. 특히 교수님들 박사님들 대상으로도 교육을 할 때가 많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에버노트를 통해서 전국을 다니면서 교육을 하고 있다. 예전에 한달 내내 일해야 100-150만원을 벌었는데, 요즘은 강의 하루 이틀에 100만원 이상을 벌고 있다.
평일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강의를 찾아다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주말에는 전국을 다니면서 강의를 하고 있다.
현재의 어려움보다 미래의 꿈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을 실천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거 같다. 난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었고, 내가 좋아하는 스마트폰, 기록, 메모 이와 같은 주제를 가지고 강의를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교육을 하고 수입도 생기니 요즘 하루 하루가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네이버에서 박현근강사를 검색해주세요
유튜브에서 에버노트 왕기초를 검색하시면 강의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네이버밴드 박현근의 에버노트 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박현근 강사를 검색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