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별오름

이별, 냉수 먹고 정신 차리기 #11

by 아네요







제주도 다음날도 역시 눈보라는 심했다. 주민분께 여쭤보니 이런 날은 손꼽는 날씨라 하였다. 가볼까 했던 비양도는 포기하고 그냥 정신없이 해변을 돌아다녔다. 핸드폰 배터리가 다되어 카페에 들어갔는데 연락 달라던 대학 친구가 생각나 전화를 하였다. 친구는 결혼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예전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이별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유일한 비밀 얘기까지 들을 수 있는 영광도 얻었다. 당떨어지면 우울하다며 일단 맛있는 것부터 먹으라고 충고해주었다. 숨은 생활 철학자다.


엄청난 눈보라는 잠깐 꺾였고, 근처 ‘빅대디’라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인상 좋은 주인 분과 맛있는 냄새가 났다. 음식을 시킨 후 포스트잇이 붙여진 벽을 보았는데 어떤 사람이 냅킨에 ‘2015년 군대 가기 전에 왔다가 2017년 2월 군대 다녀와서 왔다’라고 써놓았다. 별거 아닌데 인상적이었다. 그날이 그때는 며칠인지는 몰랐지만(2월 10일이었다) 2월인 것은 알아서 ‘얼마 전에 다녀온 사람이네’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속은 안 좋았지만 맛있는 것을 먹으니 친구 말대로 힘이 났고 가게 앞에서 택시를 부른 후 새별오름에 가기로 했다. 가까운 곳이 아니었다. 택시비가 꽤 나왔다.


새별오름에 도착하니 눈보라가 또 많이 불기 시작했다. 근처엔 대중교통도 없고 가게도 없는 외진 곳이어서 기사님은 나를 기다려 주신다고 하셨다. 고마운 기사님. 급하게 나온 터라 치마와 앵클부츠를 신고 있어서 하얀 눈발 위에 서니 꽤 처량했다. 너무 미끄럽고 눈보라는 매우 심해져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게다가 눈 때문에 하얗게 덮여 있어 길을 잘못 들었다. 무덤을 지나 나뭇가지를 헤치고 원래 길로 걸어갔다. 그때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무덤 뒤로 몇 명이 잘못된 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별 거 아니라 생각했던 오름의 완만한 곡선이 제법 경사가 느껴졌고 눈 때문에 발이 자꾸 미끄러져 점점 더 무서워졌다. 쉽게 봤던 오름에서 헬기 타고 내려올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119 응급대원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려가긴 더 위험해 보여서 악착같이 납작 엎드려 기어 올라갔다. 가까스로 꼭대기 등정. 나의 늦은 걸음에 추월한 사람들이 있어서 작은 소리로 소리쳤다. 잘 가라.


무서웠던 눈보라 오름 덕분에 슬프지가 않았다. 슬픔보다 앞선 생존본능이다.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생각만큼 따르지 않는 행동이 갑갑했었는데, 시원했다. 다행히 내려오는 길은 잡을 수 있는 줄이 있어서 미끄러워도 그럭저럭 내려올 수 있었다. 거의 다 내려와서 택시를 찾고 있는데 멀리 내 택시 같아 보이는 차가 다른 사람들을 태우고 있는 게 아닌가.


하필 그때 내 핸드폰은 배터리가 나갔고(고장이 나서 배터리가 자주 나갔다) 가득 채운 여분의 배터리조차도 이상하게 나가 있었다. 멀리 지나가던 두 명이 있어서 그들에게 핸드폰을 빌려 아까 택시 콜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새별오름인데요. 기다리신다는 기사님이 안 계셔서요.”

“아 알아요. 20분 기다리세요.”

“네?”

“알아요. 기사님이 먼저 가셨데요. 타시려면 20분 기다리셔야 돼요.”

“하아... 네 알겠습니다.”


핸드폰을 돌려 드린 후 차를 기다렸다. 나쁜 기사님. 두 사람이 간 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또 무서웠다. 눈보라는 더 심해져서 앞이 잘 안보였다. 입구도 안 보여서 어디에 서있어야 기사님이 날 찾아오시려나 싶었다. 게다가 나에게 다시 연락하면 아까 전화 빌려준 사람에게 연락이 갈 텐데, 그또한 걱정이었다. 멀리 경비실 같은 조립식 건물이 있어서 핸드폰 충전이라도 부탁할까 싶어 눈발을 헤치고 걸어갔다. 걱정했던 대로 모두 빈 건물이었고, 점점 더 무서워졌다. 젠장.


그때였다. 눈보라가 조금 잠잠해지니 흰 차가 내쪽으로 천천히 왔다. 이 또한 무서웠다. 나도 참 겁 많다.

창문을 내리더니 앳되어 보이는 남자가

“태워드릴까요?” 하고 물어봤다.


무서운 인상은 아니었지만, 어디 연쇄살인마라고 인상이 따로 있으랴.


“네. 감사합니다”

말이 생각이랑 다르게 나왔다. 지금 이 공간이 더 무섭고 추워서였다. 차에 탔는데 무서운 기분보다 이제 살았다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상대가 나쁜 녀석일 수도 있었는데, 정신이 빠져서 그랬나, 상대 얼굴이 착해 보여서 그랬나, 검열할 마음이 줄어들었다. 어디 가시냐는 질문에 가시는 곳 근처에 택시 탈 수만 있으면 내려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본인도 갈 곳을 정하지 않아서 가는 곳까지 태워준다 하였다.


“협재에서 오긴 했는데요”

이 말에 행선지를 밝히지도 않았는데 차는 가고 있었다.

“저도 오전에 협재에서 밥 먹었어요”

“아.. 그러세요..”

“협재에 아는 분이 계셔서,.. ‘빅대디’라는 곳인데 거기서 먹었어요.”

“정말요? 저도 오늘 거기서 먹었는데.”

“그러세요?. 전 군대 제대하고, 여기 내려와서..”

“혹시 2015년 2017년 냅킨?” 내가 말을 끊었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저 그거 붙인 자리 밑에서 먹었어요. 신기해서 기억에 남았어요.”

“가게가 임대 문제로 몇 달 후에 문을 닫는다 하셔서 글 남겨봤어요”

“신기하네요. 얼마 안 되어서 그 글을 읽은 사람을 바로 만나다니”


계속 이야기해보니 그 친구가 나간 후 한 5분쯤 후에 내가 들어온 것이었고 내가 들어왔을 때는 다른 손님이 없었던 걸 보면 그 글을 제일 먼저 읽은 게 내가 아닐까 싶다. 묘한 인연에 무서움이 다 사라졌다. 25살, 복학 전 잠시 제주도로 여행을 온 친구였다. 이것저것 얘기하다 보니 통하는 게 많았다. 인상 깊은 여행으로 인도였던 공통점이나, 경영학 공부를 한 공통점이나, 계획 없이 제주도를 돌아다니는 거나,.. 별거 아닌 공통점이지만 그냥 기분이 좋았다.


어느새 협재에 도착하였고, 딱히 갈 곳도 없는 나는 뜬금없이 제안을 하였다.

“저도 딱히 갈 곳을 안 정했는데, 혹 여행 계획 없으시면 애월 쪽 가실래요? 택시비도 굳었는데 밥 살게요”

어제 내내 울어서 그런가.. 없던 모험심이 싹텄다. 아니면 그냥 기분이 좋아서였나.


흔쾌히 동의해 주었고 계속 드라이브를 하였다. 이름을 물어보니 철빈이란다. 이름 이쁘다. 하늘은 눈이 많이 오다가 맑게 개이다가, 저 멀리에선 눈 오는 게 보이다가,.. 다시 눈이 몰아닥치다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멋진 풍경을 다양하게 보여 주었다. 변화무쌍한 날씨처럼 수다가 끊이지 않아 재밌었다. 그 친구가 본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나도 내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내 나이를 굳이 밝히지 않아도 대학 졸업 후 회사 다니다가 가게까지 한다 하였으니 누나뻘인 게 확실히 드러났다. 얼굴로도 드러났겠지만. 그러나 사회에서 만난 또래처럼 ‘씨’ 자를 붙이며 깍듯하게 대했다. 그 친구도 어려워하지 않고 어른스럽게 나를 대해주었다.


수다가 길어지자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무작정 제주도에 오게 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고 본의 아니게 연애상담까지 하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안타깝게 아직 연애 경험이 없어서 직접적인 조언을 해줄 수 없음에도 자기가 주변에서 보아 오고 들어왔던 이야기들을 열심히 말해주었다. 그 자체로 고마웠다. 차도 마시고 바닷바람도 쐬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금방 저녁이 되었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다시 협재로 데려다주었고, 나는 저녁을 샀다. 근처에서 엽서를 사서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순수한 사람이다. 나에게 순수함은 곧 매력인데 멋져 보였다. 엽서가 많다기에 하나 달라고 하곤 헤어졌다. 섭지코지 사진이었다. 연락처를 줄 수도 있었지만, 누나뻘이 아닌 막내 이모뻘인 게 들킬까 봐 차마 줄 수가 없었다.

맛있는 거 먹으라고 말해줬던 대학 친구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친구 얘기대로 거기 가서 밥을 먹었더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묘한 인연도 만났고, 그 덕에 질질 짜는 어제와 다르게 이런 영화와 같은 하루를 보내다니. 그녀대단한 미래학자 같았다.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자랑 문자를 보내는 진상짓을 마지막으로 하였다. 부끄러웠지만 왜 그리 속이 시원하던지. 이별에 진상짓은 조금 필요한걸까?


한 달 만에 오아시스 같은 하루였다. 근 한 달, 기다리고 매달리다 헤어졌으니, 그날은 오래간만에 만난 꿈같은 하루였다. 뭐 그 이후로 생활이 확 바뀌고 그런 건 아니다. 다시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곤 했지만, 그래도 전과는 달랐다. 진짜 헤어짐을 확신한 느낌? 그로 인한 해탈 감이 맘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친구와 철빈 씨와 그리고 나에게 참 고마웠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마음 한구석에,

자그맣게

새별이 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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