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반성

이별, 냉수 먹고 정신 차리기 #13

by 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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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닌데

왜 이리 나의 잘못에 목을 매고 있던 것일까.

자학이 특기인 요인도 있겠지만 왜 이럴까?


첫 번째는 내가 필연을 믿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 내 깐엔 우연도 믿고 운명도 믿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론 필연을 더 믿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공부나 일도 열심히 하면 잘되는 줄 알았고(열심히는 안 했다). 그래서 사랑도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나의 사랑 방법이 문제라 생각하여 나를 탓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이별을 했을 때 ‘나 때문’이라는 자학 비슷한 걸 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타인인 상대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타인이지 않은가. 조금 안다고 자만하느니 아예 모른다 전제하는 게 그나마 오해를 줄일 수 있었다. 이젠 만날 수 도 없기 때문에 대화로 그 오해를 줄일 수 조차 없어서 더욱 알 방법이 없다. 그러니 타인의 잘못 보다 내가 잘못한 게 뭘까 더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별의 원인이 '내'가 아닌 '나의 잘못'이길 바라는 데 있었다. 이별 통보 시, 진짜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은 그냥 나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이었다. 이별이 나의 잘못 때문이면 뭔가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였는데, 나 자체가 아니라는 것은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어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냥 존재 자체가 무시당하는 기분? 사랑을 더 지속시켜보려는 마음 때문에 더 왜곡해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만약 자연스레 이별이 이루어졌다면 이 생각까진 미치진 않았을 것이다.


자기반성 이 짓, 이젠 그만해야겠다.

헤어진 남자 친구의 생각 따위 더 이상 중요치 않고,

이별엔 필연도 있고 우연도 있음을 알았고,

나를 부정하는 것이 나를 무시함이 아니라

맞지 않는 사람일 뿐이란 걸 알았으니

궁상은 여기까지.


울상, 진상 그만 떨고 이젠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연애기간이 길지 않아서 그런가,

아님 이별 스트레스를 글로 풀어서 그런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각보다 빨리 정리되었다.

그땐 영원히 안 끝날 것 같았는데.


시간은, 정말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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