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냉수 먹고 정신 차리기 #14
'사랑은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가급적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은 헌신적인 것이라고 섣부른 오해는 하지 말자. 그의 뜻을 존중하는 건 나의 행복을 위해 그를 내 곁에 머물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당신 뜻대로’는 일종의 유혹, 내 곁에 있으면 당신은 나라는 사람을 노예로 두고 영원히 존중받을 수 있다는 치명적인 유혹인 셈이다.' - 강신주의 ‘감정수업’ 중 <사랑> 편에서.
사랑은 태생 자체가 밀당이었다. 나 같은 모지리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먼저 타인에게 노예가 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노예도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닌 마음에 사고처럼 다가오는 게 사랑이다. 어느 순간 천재지변처럼 마음이 진동하는 일이 사랑이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그 진동이 힘들어 더욱 마음을 다잡고 철벽녀인 양 행동했던 게 아닌가 싶다. 나의 주체를 자발적으로 상대에게 줄만큼 용기가 없던 것이다. 내 기둥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겁이 많아 그것 바로 세우느라 바빴다. 유연하게 내 마음을 상대에게 올인하기 힘들었다.
다시 위의 철학가의 이야기로 올라가 보자. 단순한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닌, 내가 ‘당신의 노예가 될 수 있음으로 상대를 유혹’하라 하였다. 거참 심란하다. 그냥 유혹도 안 되는데 노예가 된 후 그걸 빌미로 유혹하라니,... 마타하리가 생각나는 건 내가 연애에 무지함 이리라. 심지어 같은 책 <경탄> 부분에서는 노예가 되더라도, 언제나 떠날 수 있는 노예가 되라고 쓰여 있다. 그게 노예인가. 어렵다.
철학가의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맞는 얘기들은 묘하게 반항심이 생기곤 한다. 그냥 심통이다. 마치 조금이라도 뭔가 모자라면 ‘그건 사랑이 아니지’라며 철학가가 한소리 할 것 같다. 그래서 지레 심술이 난다. 마음 한편엔 죽기 전에 여한이 없는 사랑을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니 어깃장이라도 놓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왜 나는 연애하면서 저 생각들을 못했을까. 꼭 이렇게 글로 배워야만 알 수 있었던 걸까. 위의 글을 이해한다고 실제 행동으로 모두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애정결핍이 또 사랑에 훼방을 놓진 않을까. 용기 있게 노예가 되고 용기 있게 유혹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용기 있게 떠나갈 수 있을까... 벌써부터 생각이 많아진다. 이래서 내가 사랑을 잘 못하나 보다. 겁이 많다.
그래도 이젠 사랑이 단순히 외로움을 떨치려는 행동이 아님은 안다. 사랑해도 외롭다. 사랑이 단순히 꽃향기 나는 설렘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사랑도 끝없이 걱정하고 고민하고 힘들어한다. 내 중심축이 저쪽에 가있으니, 내 생각의 반경이 '내 세상 + 처음 만나는 상대의 세상'만큼 넓어졌으니, 어이 안 힘들겠는가. 다만 그 힘듦만큼 내 시야가 넓어지고 깊어짐을 느꼈다. 어떤 철학자는 그 어떤 철학책보다 사랑을 하는 것이 사람을 더 성숙하게 만든다 하였다. 심지어 내 경우엔 책도 잘 읽혔다. 이해도 잘되었고 전에 공감되지 않았던 다양한 생각들이 새로운 사상처럼 머리에 콕콕 박히곤 했다. 뇌도 활성화되나?
내가 아는 ‘사랑’은 아직 ‘보고 싶다’라는 의미 하나뿐이다. 아직 노예밖에 안 되어봤다. 이젠 노예가 되면서 유혹까지 해보고 싶다. 언제나 떠날 수 있는, 범접할 수 없는 노예가 되어보고도 싶다. 이론이 아닌 본능같이 자연스럽게 사랑해보고 싶다. 그로 인해 더 성숙해지고 싶다.
내가 이렇게 이별에 대해 열심히 파고드는 이유는 다음 사랑을 위한 준비이다.
더 정직하게 내 감정을 알고 싶고, 그것으로 하여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