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이별, 냉수 먹고 정신 차리기 #18

by 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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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엔딩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 몰아보게 되는 미드의 경우 더욱 엔딩 보는 것을 싫어하는데, 엔딩을 보고 난 후의 밀려오는 허무감을 매우 싫어한다. 그 허무감 때문에 마지막화 전 3~4화를 안 보곤 한다. 유난 떤다.


이별, 끝났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던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은 지 3달쯤 되었나? 그땐 이 감정을 어찌해야 하나 하루하루 다스리기 바빴는데, 지금은 뭐,.. 별일 없다. 예전처럼 건어물녀만 안되길 바라고 있다.


이별 후 정신도 없었지만 나름 나 혼자 자발적 빈곤이라 칭하며 가게문을 닫았다. 일하기 싫었다. 일도 안 하고 스스로 글과 그림만 그려보긴 처음이었다. 브런치 공모건이 동기부여가 되어 이별에 대한 글을 10편 내리 썼다. 그 이후 그림을 덧붙이며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몇몇 글을 더 써갔다. 맘에 드는 글만 올리고 이상한 글들은 일단 미뤄 두었다.


간신히 3월 말 15편을 마치고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이 조금 낯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글 쓴다고 마구 몰입하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내 주위 공간도 낯설고, 사람들도 조금 낯설고, 나도 낯설었다. 안 쓰던 머리를 써서 그랬나, 안 보던 내 감정을 관찰해서 그랬나, 아님 백수 궁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서 그랬나... 너무 오래간만에 연애하고 이별해서 그랬나. 참 낯선 경험이었다.


아님,... 생전 이렇게 글을 처음 써봐서 그런가? 그동안 일기조차도 잘 안 썼다. 책도 그다지 읽는 편이 아니었고. 생각해 보니 이번 글을 쓰게 되면서 안 하던 행동들만 하고 있었다. 가게문 닫기,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음악도 하루 종일 듣고 안 읽던 철학책도 읽었다. 상황에 짜증내고 욕하기 바빴던 감정을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했다. 내가 왜 이런가 궁금해했고,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전에 안 하던 낯선 행동들만 하고 있었다.


생각들이 정리되면서 감정도 정리됨을 느꼈다. 다시는 느끼기 싫은 감정들이었지만, 가라앉고 나니 이 또한 아쉬웠다. 진짜 사랑이 끝난 느낌? 사랑의 끝은 이별이 아닌, 이별의 끝 그다음 임을 알았다. 생각보다 빨리 진정된 이별에, 다음 사랑을 바라고, 심지어 허세스럽게 다음 이별도 조금 바래본다. 아, 아니다. 안 바란다. 이번에도 이 진상을 부렸는데,... 이별까진 생각 안 하련다. 그건 그때 생각할 테다. 내가 요 모양이다.


이별에도 끝이 있음을 알았다. 새드엔딩인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노멀 엔딩이지 않을까? 엔딩은 싫지만 다음 이야기를 위해선 끝이 필요하다는 뻔한 진리를 또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시즌1은 끝나고 시즌2를 기대하며 End를 쓰고 있지만 And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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