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이별, 냉수 먹고 정신 차리기 #17

by 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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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시골에 산다. 이곳에서 부모님이 로즈마리 농장을 하신다. 농장은 파주읍내 앞 넓은 들판 한가운데 있다. 시야가 확 트인 넓은 냇가를 옆에 끼고 있지만 멀리 낮은 산들에 싸여 있어서 넓지만 아늑한 느낌이 있는 곳이다. 들판에 있는 콘크리트 농로를 트랙삼아, 동네사람들은 산책을 한다.


헤어진 후 처음으로 산책을 하였다. 만날 당시 다이어트 한다고 매일 돌던 코스다 보니 산책 나가면 예전 생각이 날까봐 못나갔었다. 그러던 중 머리 아픈 일이 생겨 나도 모르게 영특이(집에서 키우는 개)를 데리고 걷게 되었다. 오랜 만에 나온 들판은 자극적일 정도로 선명했다. 봄이다. 예전 생각은 머리에 떠오르자마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같이 따르던 영특이도 따뜻한 봄에 기분이 좋은 지, 말도 안 듣고 뛰어 다닌다. 10살이나 된 암캐인데, 여전히 활발하다. 여기저기 소변표시를 하는 것 보니 머잖아 동네 수컷들이 집에 놀러 오겠다. 아버지는 그 수컷들 내쫓느라 바쁘시겠네. 영특이의 소변지도는 효과가 좋다. 노견인데도 수컷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가 있다. 적극적이고 사랑스럽다. 나이 콤플렉스가 없는 영특이가 부럽다.


이토록 봄이 강한 녀석일 줄이야. 어릴 적 악당을 해치우면, 어둡고 삭막했던 마을이 꽃동네로 변하는 엔딩들이 많았는데, 그 모습이다. 이별의 궁상 따윈 걷어차인 기분이다. 이별이야기로 길게 쓰고 싶었는데, 봄이 오니 생각이 안난다. 일부러 쥐어짤 필욘 없을 것 같다. 이 글들을 쓴 목적도 이별의 갑갑함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는데,.. 서서히 풀리던 빗장을... 봄이 활짝 열어 버렸다.


내 이별순정은 여기까진가 싶다.

마음이 화사한건 아니지만 이미 봄은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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