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있습니다
어려운 영화를 보면 머리가 아프고, 로맨스 영화를 보면 허무하고, 무서운 영화를 보면 일상생활이 힘들고, 신파 영화를 보면, 무서운 영화보다 더 일상생활이 힘들다. 영화를 편히 못 보는 편이다. 그러나 가끔 이 모든 것들을 깨고 재밌게 보는 영화들이 분명 있다. ‘최악의 하루’도 그런 영화였다.
스토리는 제목처럼 최악의 하루이다. 주인공은 둘이다.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있는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와 또 다른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이다. 이야기의 큰 축은 은희이다. 그녀는 하루 동안 세 남자를 만난다. ‘지금 만나는 남자-현오’, ‘전에 만났던 남자-운철’, ‘오늘 만난 남자-료헤이’. 현오와 운철은 은희가 양다리를 걸친 사람들이다. 현오는 연예인병에 걸린 배우로 연인을 향한 관심보다 주변 눈에 관심이 더 많다. 주변을 의식하느라 연인의 팔짱조차 뿌리치고, 현 여친을 전 여친 이름으로 부르는 등 진실성 없는 인물이다.
운철은 현오와 소홀했던 사이에 만났던 남자다. 현오와 다르게 겉으론 진실성이 넘쳐 보이지만 진실의 방향이 영 이상한 사람이다. 이혼 사실을 들킨 이후로 은희와 사이가 멀어지자 다시 전 부인에게 돌아간 인물이다.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 ‘전 행복해지지 않기로 했어요. 재결합합니다.’를 날리는 사람이다.
그럼 이 둘 사이에서 은희는 어떤 존재일까. 다시 영화의 처음부터 살펴보았다. 은희는 연기 연습 중 상대 언니에게 핀잔을 듣는다. 민망하여 배시시 웃자 또 핀잔을 듣는다. 남자에게도 그렇게 웃냐며 은희를 ‘나쁘다’ 한다. 끼 부리지 말란 이야기이다. 시작부터 그녀는 ‘나쁘다’는 소리를 듣는다.
서촌을 거닐 던 은희는 길을 잃은 료헤이를 만난다. 친절히 길을 알려 주고, 료헤이에게 잠깐 쉴 수 있는 카페도 알려준다. 흠잡을게 없다. 흠이라면 좀 전의 핀잔처럼 미소가 넘쳐날 뿐이다.
그와 헤어진 후 현오를 만나면서 다시 상황은 안 좋아진다. 은희의 거짓말에 현오와 은희는 여느 연인처럼 티격태격한다. 서로 못 잡아먹어 으르렁 대다가, 현오는 과거 은희의 양다리 사건과 잦은 거짓말을 다시 들추며 그녀가 좋은 여자가 아님을 꼼꼼히 일깨워준다. 이번엔 남친으로부터 ‘나쁜 여자’라는 소리을 듣는다.
그러다 현오의 말실수로 크게 말다툼 후 잠깐 헤어진다. 그리곤 문제적 인물 운철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관객은 본격적으로 은희의 거짓말을 보게 된다. 좋아하지만 행복하지 않기 위해 전처에게 돌아간다는 운철에게, 좀 전의 은희라면 쌍욕을 할 것 같다. 그러나 은희는 운철만을 사랑한 비운의 여자처럼 얌전히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다양한 거짓말을 한다. 여기서 관객들은 그녀를 보며 식겁(?)하게 된다. 아마 관객들이 은희를 이상한 여자(나쁜 여자)라고 여기기 시작할 지점일 것 같다.
상황은 점입가경. 미안하다며 매달리는 현오를 만나러 가는 길에, 다시 운철을 만나게 된다. 쫓아오던 운철과 현오는 결국 삼자대면을 하게 된다. 운철은 자신 말고 딴 남자가 있었음을 알게 되고, 현오는 지금도 운철을 만나는 것을 알게 된다. 둘은 같이 그녀에게 등을 돌린다. ‘그냥 여기서 땅 파고 뒈지시든가’라는 말까지 들으며 드디어 은희는 최악의 여자가 된다. 그녀는 무너진다.
그들에게 그녀의 존재는 ‘최악의 여자’이다. 여기서 재밌는 것이 영화의 원제이다. 원제가 ‘최악의 여자’이다. 영문원제는 여전히 ‘Worst women'인걸 보면, 한국 정서상 문제가 될 수 있어 제목을 바꾼 게 아닌가 싶다.
이 영화를 본 후, 첫 느낌은 ‘솔직함’과 ‘정직함’이었다. 주인공의 다양하고 솔직한(?) 거짓말들을 감독은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양다리 걸친 여자가 뭐가 이쁘냐며, 분에 가득 찬 리뷰도 있었으니 말이다. 거짓말과 양다리를 일삼는 그녀를 실제 주위에서 본다면, 나라도 ‘나쁜 년, 최악의 여자’라고 칭하지 않을까.
그런데 은희를 옥죄었던 옳고 그름은 뭘까? 분명 거짓말과 양다리는 불편하다. 그러나 이것이 다짜고짜 지양해야 할 진실인 것일까? 자신의 욕망을 안다는 것이, 자신에게 솔직한 것이, 정말 최악인 것일까?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 타인에게도 솔직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게 진짜일수 있는 것일까?
이 영화는 질문을 끝없이 내뱉고 있었지만 감독 나름의 답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문제풀이의 도우미가 또 다른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있는 료헤이였다.
먼저 료헤이는 자신의 직업을 묻는 그녀에게 자신은 ‘거짓말을 만든다’고 대답한다. 실제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은희와 묘한 대구와 교집합을 이룬다. 뭔가 인연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복선 뿐 아니라, 거짓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료헤이는 작가의 자질을 스스로 의심할 정도로 일이 안 풀린다. 기껏 반년동안 책은 100권밖에 안 팔렸고, 출판기념회에는 지나던 아주머니 둘만 앉아있을 뿐이다. 출판사까지 망하여 앞날이 더 캄캄해진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료헤이에게 최악의 하루인 것만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기념회가 끝나고 자신의 팬이라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무너진다.
기자는 질문을 한다. 왜 소설의 등장인물이 언제나 가혹한 상황에 빠지고 새드엔딩으로만 끝나는지, 그리고 인물들이 욕망이 넘치는데 그 욕망은 작가의 욕망에서 나온 것인지 물어본다. 료헤이는 주변인물일 뿐 자신은 아니라 단언하지만 뭔가 석연찮다. 기자는 뜬금없이 부끄럽다고 한다. 자기 자신과 소설 속 인물이 점점 닮아가더니 벼랑으로 떨어지고 땅에 묻힌다고 한다. 정말 그 사람들을 알고 있는 것인지 료헤이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갑자기 사라진다. 실제 대화였는지 료헤이의 독백인지 애매하게 사라진다. 여기서 료헤이의 무너짐을 본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지 못하여 스스로 무너져 버린 료헤이의 무너짐을 본다.
결국 무너진 은희와 료헤이, 두 사람은 남산에서 어쩌다 재회한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은희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지 못하여 거짓된 글을 쓰는 료헤이는 달라 보이지만 어찌 보면 비슷하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을 뿐이다. 은희와 료헤이는 서로를 알아보는 듯하다. 은희는 료헤이에게 자신은 거짓말을 잘한다고 털어 놓는다. 그리고 료헤이에게는 거짓말을 못하겠다고 한다. 영어로는 거짓말이 힘들어서라는데(둘은 영어로 대화하고 둘 다 영어가 시원찮다), 과연 단순히 영어 때문 만일까. 그리고 료헤이는 처음으로 해피엔딩을 생각한다. 그 해피엔딩은 영화의 엔딩이기도 하다. 상냥하게 일본어 내레이션과 한글 자막으로 보여준다.
‘지금이랑 계절이 달라요. 이 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에요. 저 길에 눈이 내리고 한 여자가 걸어옵니다. 무표정하게 내리는 눈 사이를 걸어오다가 뒤를 돌아봐요. 어두워진 저 산책로 너머로. 하지만 걱정하지마세요.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니까요. 여자주인공은 꼭 행복해질 거예요’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최악의 하루도 없고 최악의 여자도 없다고 하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되는대로 해석한 우리의 시비(是非)로 그네들에게 시비를 건 것은 아닐까 나름 생각하였다. 그리고 료헤이가 말하는 해피엔딩에 위로가 되었다. 해피엔딩이면 권선징악일까. 악은 징하고 선은 권장하는 해피엔딩을 굳이 영상에 ‘활자’로 까지 보여준 이유는 진정한 옳고 그름은 타인들의 시선으로만 평가 할 수 없음을 이야기 한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속 모든 우스운 장면들까지 매우 예의바르고, 아름답고, 상냥하게 꾸며준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영화 중 은희가 연습하던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긴 긴 하루였어요. 하나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 있겠어요. 저는 당신이 원하시는 걸 줄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진짜가 아닐 꺼에요. 진짜가 무엇일까요.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두 번이나 등장한 이 대사가 의미하는 게 뭘까. ‘솔직하다’의 ‘직直’자가 ‘올바를 직’자라는 걸 보면 무엇이 옳은 것인지 다시 한 번 의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