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담배 피우지 말자. / 국제시장 덕수(황정민 분)
아파트는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사는 공간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한다. 발소리, 음악 소리, 피아노 소리, 강아지 소리, 심지어는 아침마다 뻐꾹~ 뻐꾹~ 울어대는 뻐꾸기 알람소리까지 조심한다. 그리고 냄새도 조심한다. 어쩌다 아래 집에서 고기를 구울 때면 냄새가 온 아파트를 휘젓는다. 당연히 윗집에서는 고기도 굽지 않는데 고기냄새를 맡게 된다. 아~ 어쩌나 식욕을 돋우는 ‘식욕유발죄(食慾誘發罪)’가 자연스럽게 적용된다.
특히 담배를 즐겨 피우는 골초들에게 아파트는 감옥이다. 담배를 피우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 구석에 있는 흡연구역으로 가서 담배를 피운다. 추운 겨울날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운동복 바람에 패딩만 걸친 채 슬리퍼를 신고, 덜덜 떨면서 담배 피우고 있었다. 그게 뭐 하는 짓인지 참 딱해 보였다.
저녁에 아파트 관리실에서 방송이 또 나왔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우리 아파트는 모두가 함께 사는 곳입니다. 이웃의 건강을 위해서 흡연을 삼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흡연을 삼가 달라는 방송이었다. 벌써 몇 일째 방송이 나오는지 모른다.
다음 날도 방송이 또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용이 좀 달랐다.
“… 특히, 화장실에서의 흡연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화장실에서 흡연을 할 경우에는 환풍기 배관을 타고 이웃집으로 담배 냄새가 퍼짐으로, 화장실에서의 흡연은 절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딩~ 동~ 댕~ 동~.”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금하자, 골초들이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게 화장실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담배 피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배관을 타고 담배 냄새가 이웃집으로 퍼진다는 것이다. 골초들은 이제 더 이상 어데 갈 데가 없다.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담배를 끊느냐 마느냐 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러나 담배를 목숨만큼이나 사랑하는 그들이 택한 것은, 욕을 들어 먹을 각오를 하고 베란다에서 다시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내 집에서 내 담배 피우는데 어쩌라고?”
골초들이 하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 종종 이런 문제 때문에 이웃과 다투게 된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잘 못 건드리면 감정싸움으로 번져 더 위험하다. 층간 문제로 싸움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자주 본다. 그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르고 어떻게 하지 못할 때가 많다. 마동석 같은 덩치가 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길 재간이 없다.
경로당 형님들도 걱정하고 있었다. 형님들은 그 집에 대표로 몇 사람이 찾아가서 이야기하면 어떨까? 하고 이야기했지만, 괜히 그랬다가 젊은 사람 건드리면 어떻게 할 거냐? 는 말에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왕년에 한가닥 하셨다는 형님들이 이제는 많이 약해지신 모습이다. 아~ 어제의 용사들이여.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경로당에서 머리 좋다고 소문난 머리가 하얀 홍 씨 할아버지였다.
홍 씨 할아버지는 형님들 앞에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다들은 형님들은 불안해했다.
“이 방법밖에 없어? 너무 힘든 것 같은듸?”
“젊은 사람 건드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이 방법 말고 또 있습니까?"
결의에 찬 홍 씨 할아버지. 마치 나라를 구하러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혹시 안○○의사님은 아니시겠지.
형님 할아버지들은 아무도 말을 못 했다.
"그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 말 대로만 하면 되는겨.”
며칠 뒤 아파트 밑에서 두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홍 씨 할아버지는 안쪽 호주머니에서 핑크색 귀여운 무전기 2대를 꺼내 보였다. 겉에는 '헬로키티'가 예쁘게 그러져 있었다.
“뭐여 이거?”
“이거? 무전기여, 무전기. 우리 손주 거란 말이여.”
홍 씨 할아버지가 김 씨 할아버지 앞에 꺼내 보인 것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무전기였다.
우리가 말하는 ‘워키토키’다. 스위치를 누르자 불이 깜빡거렸다.
“내가 여기서 보고 있다가 저 사람이 담배 피우면 무전할 테니까, 그러면 부리나케 베란다에 나가서 담배 피란 말이여.”
“…그러니까 나더러 기다렸다가 여기에 불이 들어오면 베란다에 나가 담배 피란 말이지?”
“그럼, 그렇게 몇 번만 피면 저 사람도 양심이 있어서 안 필 거야.”
“정말 그렇게 될까?”
김 씨 할아버지는 홍 씨 할아버지를 마뜩잖은 눈으로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시간을 다 확인해 놨어. 저 사람 담배 피는 시간을 알아놨단 말이야.”
그러면서 호주머니에서 꾸깃꾸깃 접은 종이를 꺼내 보였다. 거기에는 비뚤비뚤하게 시간이 적혀 있었다.
“이걸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박 영감한테 말해서 창문으로 살피라고 했지.”
“박 영감한테?”
“그럼, 부엌에 있는 창문 말이야, 박 영감한테 글로 내다보랬지.”
아파트에서는 주방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 건너편 베란다가 보인다. 물론 아파트마다 다르겠지만, 참새아파트는 그랬다. 마침 다행히도 건너편 아파트에 박 씨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박 씨 할아버지는 시간만 나면 작은 창문으로 건너편 아파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하루 종일 쳐다볼 필요는 없었다. 그 사람이 직장을 다니는지 낮에는 조용했기 때문이다. 베란다로 담배 피우는 일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 저녁이 되어서야 베란다에 나와서 담배 피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옳거니! 몇 시야? 몇 시?”
박 씨 할아버지는 시간을 확인하고 종이에 적었다.
담배 피우러 나오는 시간은 매일 똑같았다.
한번, 두 번, 세 번.
밤에는 지켜보지 못했다.
박 씨 할아버지는 초저녁잠이 많았다.
며칠을 그렇게 하다 할아버지 입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염병! 이게 뭔 짓이야. 남, 잠도 못 자게. “
입에서 욕인지 뭔지 모를 말이 흘러나왔다.
욕 들어 먹으면 오래 산다는데 홍 씨 할아버지는 박 씨 할아버지 덕택에 오래 사시게 생겼다.
그런데 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더니, D-day 날, 지켜보기로 한날 저녁부터 아무리 기다려봐도 그 사람은 베란다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집은 불만 켜진 채 조용했다. 베란다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삼일이 지났다.
애가 타는 것은 영감님들이었다.
“이제 그만 혀, 돼 죽겠어.”
김 씨 할아버지 입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홍 씨 할아버지는 아파트 위를 쳐다보았다.
"허~ 참 이상하네, 왜 안 나오지?"
"아직도?"
"응. 그려, 아직도 담배 피는 게 안 보여."
"이상하네? 벌써 며칠째여..."
아무리 기다려도 베란다에서 담배 피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거의 일주일 동안 두 영감님은 아파트 베란다만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가 빠질 지경이다. 그런데 야단이 나고 말았다.
“아이고! 몸살이야.”
홍 씨 할아버지가 그만 몸살이 나고 만 것이다.
저녁마다 바깥에서 아파트를 지켜보다가 그만 감기몸살에 걸린 것이다.
골초 잡으려다 잘못하면 할배 잡게 생긴 것이다.
"그만큼 했으면 됐어, 이제 그만 혀."
형님 할아버지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홍 씨 할아버지를 말렸다. 그래서일까.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저녁마다 나오던 담배 방송이 뚝 끊겼다. 담배 피운다는 말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며칠 뒤 홍 씨 할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가 퇴원하셨다.
퇴원하시던 날 아파트에 들어서시면서 홍 씨 할아버지는 그 집 베란다를 쳐다보셨다.
"참, 이상하네.....?"
어쨌든 두 할아버지의 고생으로 담배냄새는 사라졌다.
아직도 가~ 끔씩 홍 씨 할아버지는 습관처럼 아파트 위를 쳐다보신다. 아파트에서 담배 피우기를 기다리시는 모습이다.
아~ 한 대 태워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