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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딩가 Jul 29. 2019

시리즈물에 대한 갈증

《넥스트 액터 박정민》을 읽고



출판편집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첫 순간부터 유독 집착했던 키워드가 하나 있다. 바로 ‘Series’다. 문학 편집자가 되고 싶었던 당시의 나는 다짐했다. “나는 꼭 사랑받는 시리즈물을 만들고 말 것이다.” 잠재력 충만한, 그러나 아직 등단하지 않은 한국의 예비 작가들을 찾아서 매달 장편소설 한 편씩 소개하는 ‘이달의 신인작가’ 시리즈를 선보이고 말 것이라는 당찬 포부가 있었다. 그렇다. 당차기만 하다. 당시에는 출판의 매커니즘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도 잘 몰랐고 그저 ‘신인 작가들의 다양한 문학 작품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는 순수하지만 단순하기 짝이 없는 생각뿐이었기에 내가 출판사만 들어가면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기획인 줄 알았다. 지금 보면 해결해야 할 난관들이 너무나 많은 허점투성이 기획이지만 그래도 ‘시리즈물’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왜 시리즈물인가?

시리즈물에 대한 집착은 구체적인 이유가 있기보다도 원초적 ‘끌림’에서 비롯된 것이다. 쉽게 말해, 뭘 생각하든 항상 N편의 연속된 시리즈를 생각한 것이다. 세 출판사(위고, 제철소, 코난북스)에서 발행 중인 「아무튼 시리즈」,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처럼 한 권으로 완결되는 단행본이 아닌, 비슷한 가치를 연속적으로 발행하는 책들에 끌렸다. 이것은 내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바가 단 한 번으로 그치지 않기를, 사람들이 계속해서 기억해 주길 바라는 소망일 수도 있고, 그만큼 소개하고 싶은 무언가가 많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확실한 건 ‘단절’보다 ‘연속’의 느낌을 갈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을 소개한다는 것은

《넥스트 액터 박정민》 by.백은하배우연구소


합정에 위치한 독립 서점 ‘책과 밤’에서 이 책을 만났다. 무슨 책일까 대충 권두만 조금 읽고 내려놓으려 했는데 홀린듯 자리에 앉아서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결론만 이야기하면 이 책은 내가 만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책, 그러니까 내가 만들고 싶은 요소가 모두 담긴 책이었다. 그렇다. 이 책을 만난 건 운명이 틀림없다.(과장 같지만 집을 사랑하는 내가 ‘주말에’ 이 책을 만난 건 정말 기적 같은 일)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이상적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시리즈물일 것
2. 인간 냄새 폴폴 나는 위트가 녹아 있을 것
3.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 것


1번과 3번이 함께 있기는 쉽지만 2번까지 충족시키기란 어렵다. 위트란 무엇인가. 잘은 모르지만 내가 봤을 때 웃겨야 한다. 물론 지극히 나의 기준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실 내가 재미있으면 내 또래도 재미있고, 그들을 타깃으로 삼은 기획이라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 아닌가.(라고 오늘도 합리화해본다) 그리고 이 책이 영화가 아닌 영화 ‘배우’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펴낸곳은 ‘백은하배우연구소’로, 현재 KBS 라디오에서 <백은하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 방송을 진행 중인 백은하 기자님이 2018년 5월에 설립한 기관이다. 영국 유학 중 영화 이론을 공부하면서 배우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고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2019년 6월 5일에 배우 연구 시리즈의 기념비와 같은 첫 책이 나왔다. 그게 바로 《넥스트 액터 박정민》이다. 영화도, 감독도 아닌 ‘배우’에 대한 책이라니. 여지껏 한 명의 감독이 만든 여러 영화들을 다룬 ‘거시적인 담론’은 많이 봤어도 이처럼 배우 한 명이 연기한 캐릭터들을 본격적으로 하나하나 뜯어보며 이야기한 ‘미시적 담론’은 처음이라 그런지 그저 신기하고, 또 기뻤다. 개인적으로 영화 <파수꾼>, <들개>, <동주>를 인상 깊게 봤는데 그곳에 등장하는 ‘베키’, ‘효민’, ‘송몽규’라는 캐릭터를 좋아했으며, 놀랍게도 이 모든 배역들을 단 한 명의 배우가 연기했다는 사실!(이 시리즈의 첫 인물이 박정민 배우라는 것도 놀랍다. 이 정도면 이 책은 정말 운명이 아닐까)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이토록 놀라운 연출을 해낸 감독에게 감동하는 것만큼, 극중 캐릭터가 되어 직접 영화를 이끌어나간 배우들에게도 온갖 희노애락을 느끼기 마련이다. 우리를 울리고 웃게 만든 캐릭터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결국 연기해 낸 단 한 명의 ‘배우’를 소개한 책이라니 이렇게 매력적인 콘텐츠가 또 있을까?


결국 ‘사람’이다. 나는 사람이 가진 매력은 모두 같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무궁무진하다고 믿는다. 시리즈물에 대한 갈망 또한 마찬가지다.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할 때에도 중심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다른 담론이 나올 수 있다. 그 주제를 이야기하는 주체도 사람이고, 그 주제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 식지 않는 이상 나의 이 ‘시리즈물’에 대한 이상한 집착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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