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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 Oct 09. 2017

오늘은 하루종일 너의 노래를 들었다.

Life should go remix

 네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상하리만큼 생생하게 너의 얼굴과, 차림새와, 걸음걸이를 떠올렸다. 역삼각형의 흰 얼굴, 눈썹을 덮은 까만 머리칼, 쭉 째진 눈에 강아지 같은 선한 눈동자, 나와 비슷한 키, 깡마른 어깨, 흰 후드집업에 체크무늬 교복 마이, 귀에는 늘 이어폰, 빠른 걸음으로 저벅저벅. 목소리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긴 너와 제대로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으니까. 같은 반이었던 적도 없는데 너를 왜 이렇게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단서가 있을까 싶어 너의 페이스북 프로필을 봤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가고 싶어했던, 꽤 이름있는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그럼 같은 자습실을 썼겠네. 우리 한 공간에서 공부했구나. 그것도 3년이나. 복도에서 자주 마주쳤겠구나. 같은 구역을 청소했겠지. 어쩐지 대걸레가 연상되더라니.

 그 있잖아, 랩하던 애. 우원재랑 이름이 비슷했던 것 같은데. 문과이고 여자인 나와 내 친구들 중에 이과이고 남자인 너를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걔 자살했대. 무심히 뱉어진 네 소식에 뒤통수를 후려 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것도 나밖에 없었다. 명절이 지나간 다음 날,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갈매기살을 구우며 기억의 조각들을 끼워 맞춰보려 했지만 다들 똑같은 조각만을 손에 들고 서성였다. 그 있잖아, 랩하는 애. 쪼매난 애.    

 언젠가 내가 사회를 맡았던 학교 축제에서 너는 랩을 했다. 아 맞아. 아웃사이더의 외톨이였다. 대부분 아이돌의 군무를 어설프게 따라췄던 팀들 사이에서 너만 혼자 랩을 했다. 반응이 잔인하리만큼 싸늘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분위기에 나도 가담했다. 네가 하는 말들을 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저게 랩이야? 비웃었다. 정말 미안한데 너를 비웃었다. 그리고 조금 놀랐던 것 같다. 조용조용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늘 말없이 책상 앞에 앉아있던 네가 전교생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랩을 하다니. 늘 꽂고 다니던 이어폰에선 힙합 음악이 흘러나왔겠구나. 그때 나는 딱 그 정도로만 너를 헤아렸다.

 원래 가정환경이 좀 어려웠대. 음악 하면서 버텼다고 하더라. 근데 좀 의외지. 올라오는 게시물들 보면 휴학하고 언더에서 잘 활동하고 있던 거 같던데. 최근까지 여자친구도 있던데. 갑자기 왜 그랬대. 왁자지껄한 식당에서 우리 테이블만이 침울했다. 아무리 연고 없는 사이라지만 한 동네 자라 한 학교 나온 동창의 자살 소식은 우리 모두에게 나름의 상처로 다가왔다. 우리는 고기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각자 핸드폰을 들고 페이스북에 남긴 너의 흔적을 좇았다.

 ‘이 글이 올라올 때 즈음 생을 마감해 있기를 바랍니다.’

 너의 마지막 글은 단출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보인 믹스테이프 링크와 함께 짤막한 감사의 말이 담겨있었다. 진짜구나. 창백한 얼굴로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는 프로필 사진 속 너는 지금 이 세상에 없구나. 이제야 너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너는 이 세상에 없구나. 아아, 이제 다른 얘기하자. 미안해 이런 얘기 꺼내서. 분위기가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자 처음 네 소식을 전한 친구가 애써 수습하려 했다. 우리는 술집을 두 번 옮겼고, 각자의 룸메이트 얘기, 취업 얘기, 남자 얘기, 별별 얘기로 목소리를 띄워보았지만 대화는 자꾸만 뚝뚝 끊겼다. 만나기만 하면 밤을 새우던 우리는 자정이 갓 넘을 때쯤 흩어졌다.

 집에 가자마자 나는 침대에 고꾸라져 이어폰을 꽂고 너의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에 들어갔다. 첫번째 트랙부터 하나하나 들었다. 때론 서늘하기도, 뜨겁기도 한 목소리. 그제서야 들리는 너의 상처와 화와 아픔들. 가슴이 옥죄어왔다. 미안함, 동질감, 죄책감 등 어지러운 감정들이 슬픔으로 덩어리져 방을 가득 채웠다. 어둠이 더욱더 짙게, 이불은 더욱더 무겁게 느껴졌다. 사실 네가 활동하고 있는거, 나 다 알고 있었는데. 우리 페북 친구잖아. 네가 걸었는지 내가 걸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네가 올린 영상들, 종종 눈에 들어왔는데 난 클릭하지도 않았어. 별 볼일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 너 정말 잘한다. 많이 노력했구나. 잘 보고 있어. 한 마디라도 댓글로 달아줄걸.   

 만약 그랬다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달라졌을까? 아니야, 아무도 몰랐대. 그 글도 예약 게시물로 올라온 거래.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을 거야. 위로의 말을 건내준 친구의 목소리가 취기를 타고 비트와 섞여 들려왔다. 정말 아무도 어찌할 수 없었을까? 만약 네가 지원했던 랩 컨테스트에서 네가 조금만 더 컨디션이 좋았다면? 혹은 심사위원들의 마음이 조금만 더 넉넉했다면? 그래서  좋은 성적을 냈다면? 그랬더라면 너는 너와 이름이 같은 어느 래퍼처럼 당당하게 알약 두 봉지를 말하며 랩할 수 있었을까. 만약이란 말은 다신 입에 올리지 않기로 바로 며칠 전에 다짐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만약을 그려보는 나도 참 어쩔 수 없다.    

 요즘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너의 노래를 종종 들려준다. 내 동창이 낸 믹스테잎인데 꽤 하는 것 같다고. 나 힙합 싫어하는데 얘 음악은 듣는다고. 그리고 요즘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네가 목숨을 끊었던 시각에 나는 제주행 비행기에서 웃고 있었고, 너의 음악을 하루 종일 들은 오늘도 사실 제주에 있어야 했다. 비행기를 타지 못한 일, 그러니까 오늘 함께 웃고있을 줄 알았던 사람의 지인이 바로 어젯밤 상을 당한 일도 어찌할 수 없는 일. 취업준비를 한다던 그 선배가 울음을 꾹 참는 얼굴로 나를 마주친 일도, 먼 곳의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도, 낙엽이 떨어지는 일도, 이렇게 무심히 시간이 흐르는 일도. 세상엔 도무지 어찌 할 수 없는 일 투성이라서 나는 자주 무력해진다. 너의 음악을 듣고 너에 대한 기록을 남기며 애도하는 것만이 지금의 내가 어찌 해볼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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