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들아! 일 좀 해라. 맨날 놀기만하면서 연봉은 억대로 받아가고 부끄럽지도 않냐"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심심찮게 올라왔던 글이었다.
어느덧 나는 중간관리자가 되어 실무와 관리를 함께 병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똑같이 눈코 뜰새없이 바쁘지만 , 내게 관리라는 업무가 주어졌다는 걸 나름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이젠 옛날이 되어버린 그 시절, 오랜기간 직장내괴롭힘의 일부로 자행되었던 실무자 입장에서의 부당한 경험담을 풀어본다.
그녀는 나의 상사이자 관리자였고, 난 같은 프로젝트를 맡은 실무자(나는 A라고 칭하겠다)였다.
그녀는 일을 참 편하게 했다.
R&R이 명확히 구분된 본인의 고유업무임에도, 조금이라도 단순하고 짜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내 이름을 부른다.
"A야, 이리와봐"
그러면서 본인이 하고 있는 작업내용을 설명해주며, 오늘까지 혹은 내일까지 해달라고 한다.
이 업무는 분명 그녀의 고유 업무이고, 난 나만의 고유업무가 많아 분 단위를 쪼개가며 일하는 상황이지만, 아무 말을 못하고 알겠다고 말했다.
"이거 그쪽 업무 아닌가요?" 라는 , 한 마디에 말문이 막힐 그 말을 못했다.
"다했니?" 그녀는 납기일이 되면 재촉하여 결과물을 받아간다.
검수를 하다가 틀린게 발견되면 다른 상사들에게 이렇게 나의 평을 한다.
"A는 꼼꼼하지 못한것 같아요"
난 분명 그녀의 업무를 대신해준것이다.
어느 날 귀찮았는지 내가 작업한 결과물을 제대로 검수도 안하고 고객사에 보냈나보다.
담당자가 틀린걸 지적하자 그녀는 말한다.
"저랑 같이 일하는 A에게 부탁했는데, 틀렸나보네요. 저도 꼼꼼히 한 번 더 검수했어야했는데, 정신이 없었네요. 앞으로는 잘 확인하겠습니다."
틀린게 없을 때 그 업무를 누가 했는지, 누구의 도움으로 완성했는지는 절대 밝히지 않는다.
결과물만 쏙 뽑아 담당자에게 보내고, 본인의 성과물로 가져가는 것이다.
잘 하면 본인 성과, 못 하면 아래 사람의 탓으로 미뤄버리는건 습관이었다.
난 실무자로써 혼절할 수준으로 바쁜 상황에서, 어느덧 그녀 업무의 90%이상을 내가 대신 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회사에 출근하여 하는 일은 딱 두가지였다.
첫째 , 휴대폰으로 카톡하기
둘째 , 친한 직원들과 메신저로 잡담하기
하루 업무시간을 다 합쳐봐야 3시간이 안되는듯했다.
한 때 다른그룹으로 가고싶어했다는 그녀는 너무 편했는지 부서전배에 관한 말을 더 이상 꺼내지 않고 있었다.
타부서에서 업무요청이 오면, 그녀는 처리해드리겠다고 하며 상대방에게 메일을 요청한다.
그 메일은 내게 그대로 포워딩된다. 완료 후 그녀에게 답장을 보내면, 그녀는 상대편에게 처리가 완료되었음을 알린다.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건 그녀이다.
난 드러나지 않는 그녀의 그림자같은 존재였다. 모든 업무가 이렇게 진행되었다.
그녀는 '관리'라는 미명하에 실무에는 손조차 대지 않았다.
사고가 나면 실무자인 나의 탓으로 가장 먼저 돌렸고, 아무일 없이 성공적으로 잘 흘러가면 본인의 성과를 인정해달라고 윗선에 어필했다. 그 모든 업무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배경에, 아무것도 안하는 그녀를 대신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걸 다 챙겼던 나는 ,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와 내가 함께 담당하게 된 프로젝트 사업은, 노력으로 잘 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었다.
당시 우연찮게도 대형 고객사 회사정책상 전직원 필수과제로 채택되며,
사업은 흥행노선을 타게 되었다.
내 업무는 살인적으로 많아졌지만 사업이 잘 되니 뿌듯했다.
그녀는 연말에 좋은 고과를 다 챙겨갔다. 고과가 높으면 연봉상승률 폭이 커진다.
손하나 거의 까딱 않고, 높은 연봉상승률을 가져가는 마법이 내 눈앞에서 벌어졌다.
그녀는 나를 이렇게 평했다.
"제가 시키는 일만 하고 있어요. 실수도 하구요. 업무 난이도는 높지 않아요"
나의 고과는 어찌된 일인지 좋지 않았다.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자 내가 부족한 탓이라고 자책했다.
부당하다고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실무에 치여 그조차 제대로 생각할 기회가 없었다.
지속된 가스라이팅과 물리적으로 압도적인 업무량은 나의 자존감을 그렇게 밑바닥으로 끌고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