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체육시설이 성인기의 신체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있는가?
[이전 글] [이영임 박사의 스포츠경제학 산책-6] 그게 얼마짜리 퍼팅인데! https://brunch.co.kr/@bruncht7ac/76
이 글은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스포츠정책연구실 이영임 박사의 일곱 번째 글입니다. 이번 글은 학교 체육시설이 성인기의 신체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입니다.
[참고문헌] Black, N., Johnston, D. W., Propper, C., & Shields, M. A. (2019). The effect of school sports facilities on physical activity, health and socioeconomic status in adulthood. Social Science & Medicine, 220, 120-128.
“학교”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칠판을 가득 채운 하얀 글자들을 떠올리는 분도, 교탁에 서 계신 선생님과 옆 자리에 앉은 짝을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죠. 하지만 아마도 많은 분들이 머릿 속에 떠올릴 이미지는 넓은 운동장과 그곳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이 아닐까요? 그리고 좀 더 운이 좋아 괜찮은 시설을 갖춘 학교에 다녔던 분이라면, 잔디구장에서 축구를 하던 기억이나 트랙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던 일도 생각나실 수 있을 겁니다.
인근 체육시설과 생활체육 참여가 정(+)의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밝혀왔던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학교 체육시설이 변변하게 갖추어져 있다면 그 학교에 다니는 동안 학생들은 더 자주, 즐겁게 운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다 할 체육 시설 없이 100m 달리기조차 버거운 좁은 운동장만을 가진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비교한다면 말이죠. 그런데 이처럼 학교에 있는 체육시설이 졸업한 후에도, 청년기를 거쳐 중장년에 접어드는 수십 년 후까지 신체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효과가 지속된다면? 그게 가능할까요?
1974년의 학교시설이 2008년의 신체활동에 미치는 영향
Black, Johnston, Propper & Shields(2019)가 쓴 논문이 이런 질문에 약간의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논문은 청소년기의 학교 체육시설이 성인기의 신체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는데요, 이를 위해 사용한 자료는 영국의 국립 아동 발달 연구(National Child Development study: NCDS)입니다. 이 조사는 1958년 3월 3일에서 9일 사이에 영국에서 태어난 17,415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종단 조사입니다. 여기에서는 조사 대상자들이 16세가 되는 1974년 당시 재학 중이던 학교 시설 자료가 있는 12,653명을 우선 추렸습니다. 그 후 사립학교 및 특수학교에 다녔던 학생 및 기타 분석에 필요한 다른 변수가 누락된 자료들을 제외한 9,929명을 표본으로 선정했습니다. 이들이 성인이 된 후의 신체활동에 대한 설문은 면대면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각각 33세(1991년), 42세(2000년), 50세(2008년)의 자료를 사용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중요한 변수는 바로 학교 체육시설 적합도와 그 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이 성인이 된 이후 얼마나 규칙적으로 운동하는지 – 즉, 신체활동과 관련된 변수입니다.
먼저, 시설 (부)적합도 변수는 이들이 16세였던 1974년 수집된 설문 응답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당시 학생이 다니고 있던 학교의 교장 선생님에게 “귀 학교의 체육 시설이 부족하거나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 묻고, “그렇다”고 응답한 경우 그 학교에 속한 학생은 체육시설 부적합 학교의 재학생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이 비율은 표본의 35% 정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학교장이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음을 가정한 것이지만, 그래도 적합과 부적합을 교장 한 마디로 결정하는 것은 다소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 성인기 신체활동과 관련한 변수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신체활동이 ‘일반 참여’와 ‘적극 참여’로 나뉘었습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운동에 참여하는 ‘일반 참여자’는 전체의 약 77%로 나타났으며, 일주일에 4일 이상 참여하는 ‘적극 참여자’는 약 27%를 차지했습니다. 이들 두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이 분석을 실시했고, 그 결과가 다음과 같습니다. 복잡한 표를 한 번 보시죠.
위의 표는 실증 분석 결과를 보여줍니다. 왼쪽 두 열 (1), (2)의 종속변수는 일반 신체활동 참여 여부(한 달에 하루 이상 참여하면 1, 그렇지 않으면 0의 값을 가지는 변수)이며, 오른쪽 두 열 (3), (4)의 종속변수는 적극 신체활동 참여 여부(일주일에 4일 이상 참여하면 1, 아니면 0의 값을 부여)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붉은 줄로 표시된 첫 번째 줄에는 청소년기 학교 체육시설 부적합도가 종속변수(신체활동)에 주는 영향의 크기가 계수로 표현되었습니다.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1)에서 추정된 계수는 –0.027이며, 이는 통계적으로 매우 유의한 값입니다. 이 숫자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이 결과는 부적합한 체육 시설을 가진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신체 활동에 참여할 확률이 2.7%p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역 변수를 고정효과로 통제한 (2)의 경우에도 2.4%p로 유사한 결과를 보였습니다. 이는 청소년기의 학교 체육시설이 부족하거나 부적합한 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이 성인이 된 이후의 운동 습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인 것입니다.
하지만 (3), (4)에서 추정된 계수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이것은 0이나 다름없는 수치라는 뜻이며, 청소년기의 학교 체육시설이 신체 활동의 적극적 참여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결과입니다. 요약하자면, 청소년기의 학교 체육 시설은 성인이 된 이후 운동에 참여할 확률에는 영향을 주지만 그 빈도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학교체육정책의 장기적 효과
어느 실증연구나 그렇듯이, 이 연구에도 분명 한계점은 존재합니다. 표본으로 선택된 1958년생들은 2019년 현재 만 60세를 넘긴 세대이기 때문에, 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연구를 한다면 다른 결론을 얻게 될 지도 모릅니다. 즉, 이 연구 결과가 모든 세대에 걸쳐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다른 연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죠. 또한, 중요 변수인 체육 시설 적합도를 학교장의 주관적 평가에만 의존한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이 역시 추후 연구에서는 좀 더 객관화된 자료를 이용하여 보완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 논문은 청소년기에 적절한 체육 시설이 마련된 학교에 다니는 것이 운동 습관 형성에 도움을 주고, 이것이 생애 전반에 걸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정책적으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학교체육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때 단기적인 효과도 당연히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학생들의 운동 습관 형성에 학교가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줍니다. 학창 시절, 운동습관이 중요한 이유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