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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레바퀴 Sep 14. 2020

청소년 인문학 아카데미 '고민 10'

시작하는 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들에 집착하라.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바쁘다. 바빠도 너무 바쁘다.

 중·고등학교 교사를 20년 간 하면서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현실이다. 중소도시에 살고 있는 내가 이렇게 느낄 정도인데, 수도권은 오죽할까. 21세기 명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대부분의 학교들은 학생들의 플래너를 꼼꼼하게 검사해가며 여유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갠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한 코칭이 이루어지고, 휴식조차 계획된 일정 안에 끼워 넣어 마련한다.

 바쁜 까닭은 간단하다. 그렇게 해야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좋은 곳에 취직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적이 행복의 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수많은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 간주하고 쉬이 넘겨버린다.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 본 사람은 안다. 대학에 가는 것보다 대학 생활을 어떻게 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취직해본 사람만이 안다. 취직 전의 스펙이 취직 후의 행복을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목적이 불분명한 채 그저 바쁘기만 한 너희는 잔가지만 잔뜩 펼칠 뿐, 뿌리와 밑동을 튼실하게 다지는 작업을 전혀 하지 못하고 산다. 청소년기는 뇌세포가 분화되어 엄청난 뉴런과 시냅스가 생성되는 때다. 몰입이 최적화된 시기, 그 청소년 시기에 인생 전체를 설계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과목 공부에만 매달리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가장 알고 싶은 것, 고민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그랬더니 참으로 많은 궁금증을 쏟아낸다. 그중 가장 많이 나온 것을 추려보니 ‘꿈, 놀이, 역사, 사춘기, 사랑, 장애, 죽음, 경쟁, 친구, 생명’ 열 가지를 고를 수 있었다. 모두가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들이다. 또한 하나같이 느릿느릿 고민할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느림의 미학’, ‘힐링’, ‘웰빙’ 등이 주 트렌드로 정착된 지 꽤 되었음에도, 청소년은 현대인의 범주에 끼워주지 않고 있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민주시민을 육성한다면서 머리 길이 하나조차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지금까지 청소년이야말로 사회 구성원들과는 다른 세계에 살아왔고, 특별 관리 대상으로 분류되어 별종 취급을 받았다. 그동안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너희들은 신경 끄고 공부나 해!’ 식의 단호함으로 그 입을 막아왔는가.

 바쁠수록 성찰이 필요하다. 더욱이 변화를 빨리 겪는 청소년기에는 관심이 가는 주제를 붙잡고 몇 달이고 몰입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한 학기 내내 유서 쓴다며 새벽 두 시까지 잠을 자지 않고 책상 위에서 버틴 적이 있다. 다음 날 아침에 늦게 일어나 헐레벌떡 학교에 가고, 또 그날 저녁에는 유서를 쓰고…….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죽고 싶다기보다 죽음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었던 듯하다.

 대책 없이 바쁜 생활만큼이나 고민도 많은 너희에게 먼저 살아온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저 그들의 고민이 좀 더 발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참고할 수 있는 자료를 건네주는 수밖에. 여전히 좌충우돌 어설픈 어른이지만, 그동안 살아온 것 자체를 벼슬로 삼고 ‘청소년 고민 안내서’를 자처하며 이 책을 편다.      


                                                                                                                         삶의 여름날을 지나며, 김원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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