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8 봄볕이 좋아, 햇차 들이고
마음이 산란하다.
염두에 둔 일들은 많은데, 그들 대부분이 아직 염두에만 존재한다. 불확실성은 두려움을 어둠 삼고, 설렘을 빛 삼는다. 나의 3월은 그 두 감정이 날뛰는 꼴을 보기만 할 뿐이다. 화쟁하거나 조화하거나 빅뱅을 이루려면, 기어이 여름이 와야만 하겠다.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말차 찻자리를 편다. 차는 대륙의 문화에서 비롯되었고, 말차는 일본에서 꽃을 피웠다. 문화는 흐르는 법이니, 우리는 흘러오는 물을 받아 먹거나, 때로 우리의 물길을 내면 좋을 일이다.
김구 선생님의 말씀이다.
때때로 말차를 즐기지만, 방식을 일본의 것으로 하진 않는다. 소재는 주인이 없고 형식은 주관적 가치를 담아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나는 말차라는 공공 소재를 내 방식으로 즐긴다. 고르는 다완 또한 그때그때 다르다. 양산 은작기림에서 만든 계룡 분청을 즐겨 쓰다가, 오늘은 일본 라쿠다완 14대 후계자인 사사키 쇼라쿠가 만든 흑락다완 '감감'을 꺼냈다. 마침 짧은 차솔이 못쓰게 되어, 통완을 선택했다. 내겐 긴 차솔을 쓰기에 통완이 더 편하다.
이번 다식은 70년 전통의 서울 고려당 만주다. 만두의 일본식 발음이라 한다. 작은앙금빵이라 하면 될 텐데... 마뜩찮으나, 언중을 존중하기로 한다. 또 혀가 민망할 정도로 달달한 일본 다식보다는 조금 덜 달게 만든 한국 다식이 더 낫다. 말차의 쓴 맛을 완화시키기 위해 일본에서는 보통 별사탕, 양갱처럼 매우 단 것을 먼저 먹고 이어서 말차를 마신다. 나는 말차 본연의 맛을 즐기고 싶어, 말차를 다 마신 후에 입가심 삼아 다식을 먹기로 했다.
먼저 다완을 덥히고, 감감한 다완에 찻가루를 넣어 갠 후, 비벼 마신다.
이 간단한 차 한 잔을 타 마시는데 오전이 훌쩍 지났다.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며 일상을 보내다가 긴 시간에 한 가지 일을 느리게 하다보니, 간혹 시간이 흐르는 게 보인다. 산란한 일들은 여전히 머릿속에 있으나, 말차 한 잔 덕에 들뜬 열기는 좀 가라앉았다.
차 한 잔에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