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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현 Jun 30. 2016

마지막 출근을 앞두고

사표 대신 출사표를 던지는 저를 응원해준 모든 분들께 전하는 인사말

마지막 출근길의 기분은 어떨까?


궁금하다. 

사실 며칠 전부터 계속 궁금했었지만, 마지막 출근날이 아니고서야 알 수 없을 것이다.


'퇴사하면 온전히 집필 활동에 몰두할 수 있을 테니, 기쁠까?'

'허가 승인 나서 착공 들어가면 줄줄이 돈 들어갈 일뿐일 텐데, 막막할까?'
'6인 가족의 가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 안에 나 스스로 갇혀, 불안해할까?'

'광고인이라면 누구가 오고 싶어 하는 회사에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아서, 홀가분할까?'

'퇴사 직후 매도하려던 우리 사주의 연일 계속되는 하락 소식에, 슬플까?'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자유가 생겼음에, 흥분되고 설렐까?'


아마도 내 성향상 특정한 하나의 기분이나 감정보다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에 젖어있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무덤덤하게 있거나 할 것 같다. 내일 마지막 출근을 해보면 알 수 있겠지? 


이번 퇴직은 예전에 했던 퇴직과는 다르다. 예전의 퇴직은 광고회사에서 광고회사로의 이직을 위한 경우가 많았다. 처음 웹디자이너로 시작해서, 루블, 디트라이브, 리앤디디비, 비비디오를 거쳐 이노션까지. 돌이켜보면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14년을 온라인 광고 바닥과 함께 했었다. 

막내 시절 젊은피 동갑내기 친구들과 각자 회사에서 퇴근 후 모여 '플래시 Load Movie가 영화 <로드무비>인 줄 알았다는 둥' '지하철 안에서 (배너) 노출을 더 올려달라고 소리쳐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는 둥' 술 마시면서 나누었던 온라인 광고 초기 시절 에피소드들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그 당시 '종합광고대행사의 디지털팀은 조직 내에서 밀려난 사람이 배치받는 팀'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난 업계 선배들을 보면서 '온라인 광고 정년은 38세'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TVC 광고 그대로 로딩타임 없이 포털 사이트에 동영상 광고 가능' 한 획기적인 기술을 파는 재미가 있었고, 지금은 없지만 야후코리아, 하나포스, 프리챌, MSN, 드림위즈, 피디박스, 엔키노, 맥스 엠피 3 등 다양한 타겟 매체들이 활성화되어 Media mix 하는 재미가 있었다. 비광고 전공자도 온라인 광고 바닥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좋았고 재미있었다.
이번 퇴직은 직장이 아닌 직업을 갖기 위한 퇴직이다. 


100세 시대 가장 좋은 재테크는 80세까지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 역시 80세까지 돈 벌 생각이다. 아이 셋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보내려면 돈이 끊임없이 필요할 것이고, 아이들이 결혼해서 아이의 아이에게 용돈이라도 주려면 돈이 필요할 것이다. 아내와 6070 되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하려면 돈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아이 셋에게 받는 용돈도 있겠지만 우리 부부가 쓸 수 있는 돈을 내가 벌고 싶은 마음이다. 올해 칠순 나이에도 경제활동을 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은 직업이 있고 일을 해야 몸도 건강하고 정신도 건강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며칠 전부터 퇴직 인사를 가면 대부분 이런 흐름의 대화들이 오고 간다.


"앞으로 뭐하려고?"
"책 쓰고 집 짓고 살려고"

"뭐? 미친 X. 애가 셋인데, 당장 뭐 먹고살게?"
"적게 벌고 적게 쓰면 되지"
"너 집에 뭐 있지? 금송아지나 숨겨둔 땅이라던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회사를 때려치울 수가 있지? 이노션 좋은 회사잖아"
"이노션 좋은 회사지. 여러 선배들이 말하기를 회사 있을 때 충분히 준비하고 퇴사하는 게 맞다고 하는데, 그건 실현 불가능한 말 그대로 이상적인 일이지. 가족 생각하면부채 생각하면 이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지금이 어떤 세상인데현실을 모르고 배부른 소리한다고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난 기존 것과의 단절을 선택했어"

"단절?"

“모든 변환은 끝에서부터 시작한다. 
새로운 것을 선택하기 전에 과거의 것은 모두 훌훌 털어 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끝에서 과거의 틀은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윌리엄 브리지스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올 때>


"매달 25일 따박따박 통장에 꽂히는 마약 같은 월급과의 단절! 14년째 지하철 타고 회사 출근하고 다시 지하철 타고 집으로 퇴근하는 직장인 생활과의 단절! 업무 시간에 쫓기게 되고, 의자에 앉아있으면 금방 1~2시간 지나고, 끼니를 거르거나 식사 시간이 불규칙적이고, 자려고 누우면 업무 생각이 나고, 늦게 자게 되고, 그러다 보니 몸이 무겁고 얼굴이랑 목에 무언가 나고 몸이 피곤해지고… 수술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는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생활방식과의 단절!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과 마음속에서 익숙해져 버린 상황 또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가면 금방 익숙해져 버릴 것 같은 상황과의 단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야만 진정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설령 월급과의 단절해보니 너무 배고파서 살기 힘들어지면? 그때 가서 방법을 찾아보면 되지. 난 어차피 80세까지 경제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제가 회사 그만둔다는 소식을 제삼자 통해서 들으시면 '혹시 건강상의 문제로 그만두나?'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라고 걱정하신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결론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수술 이전보다 더 건강해졌습니다. 턱선이 살아나고, 뱃살 옆구리 타이어에 바람이 빠졌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보다, 매달 꽂히는 월급의 유혹보다, 내 인생의 첫 책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했나 봅니다. 퇴사하면 당분간 집필 활동에 몰두할 생각입니다. 안 하던 행동을 하려면 괴로울 것입니다. 뇌과학적으로는 새로운 시냅스가 형성되려면 최소 21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시냅스가 형성되면 안 하던 행동이 습관으로 되면서 익숙해질 것입니다.


뇌종양 수술 전에는 관심 없었던 된 브레인, 나 스스로를 임상실험한다는 마음으로 취득한 국가공인 브레인 트레이너 자격증.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 등장 이후에 관심이 높아진 인공지능. 브레인은 미래에 주요한 아이템의 하나임에는 분명합니다. 다만, 제가 의사 할 것도 아니고 질병을 치료할 수도 없지만, 브레인 관련된 디지털 콘텐츠를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꾸준히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아마 3년 후에는 전국 브레인 트레이너 중에서 인지도 Top 3 안에 들지 않을까요?

두둥~ 커밍 순~

앞으로 제 성향과 기질에 맞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을 셈입니다. MBIT, 다중지능, 에니어그램 등의 방법으로 제 자신을 돌이켜보니 '제 스스로 타인의 말을 듣기를 좋아하고, 고개 끄덕여주고, 상대방에 공감해주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발달되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올 하반기에 대학교 1학년에 편입해서 심리학과 공부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가능하면 석사, 박사 학위까지 도전해보렵니다.

상담 선생님이 저 문장이 저와 100% 일치한다고 하셨습니다




뜬금없이 위 노트를 내밀어도 당황하지않고 크리에이티브하게 작성해주신 모든 이노시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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