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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현 Jun 18. 2016

"장가계가 참 좋다더라"

어머니 인생 69년 만에 아들과 단 둘이 여행 가다

우리 어머니는 요즘 말로 워킹맘 원조 세대다. 

내가 생애 10개월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신 평생을 일과 함께 사신 분이다.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매일매일 새벽에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 어머니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봐온 터라 '우리 엄마는 왜 일하지?'라는 의심할 생각조차 없었고 '우리 엄마는 일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가장이 된 후에야 어렸을 때를 되돌여 생각을 해 본다면? 그 당시에는 모두가 먹고사는 게 다들 힘들었겠지만 아버지 수입은 변변치 못 하고 그 수입조차 일정하지 못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계형으로 맞벌이를 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보니 어릴 적 가족 여행이란 것은 배부른 자의 소유물이었고,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보다는 앨범 속에 남아 있는 사진 몇 장이 전부였고 그 조차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특히 어머니와 단 둘이 가는 여행은 내 기억 속에는 없었다. 

현아, 엄마 여권 어디에 있지?


2015년 3월 때였다.

어머니 생신 때 뭘 해야 드릴까 고민하던 차에 며칠 전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현아, 엄마 친구들하고 장가계 다녀올게"

"장가계요?"

"그래, 엄마 친구가 장가계 다녀왔는데 참 좋다더라"
"우리 지호 어렸을 때 온가족이 중국 계림 가서 고생 고생하고 다시 중국 안 간다고 하셨잖아요"
"친구가 다녀왔는데, 또 가고 싶은 곳 이래. 엄마 3일 월차 내고 다녀올게"
"네 그러세요. 용돈 좀 드릴까요?"

'월차 하루 사용하는 것도 아깝다고 안 쓰시던 분이 3일이나 낸다니 참 가고 싶으셨나 보다'


며칠 후 갑작스럽게 친구 분 사정으로 장가계 여행이 취소되었고, 들떠있던 어머니 마음이 풀리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려 보였다.

"어머니, 이번 생신 때 아들하고 단 둘이 장가계 가실까요?"
"싫어"
"왜요?"
"회사 오래 빠질 수 없고, 또 단 둘이 가면 애들은 어쩌고"
"애들은 며느리에게 맡기면 되지, 아들하고 단 둘이 가십시다"


어머니는 무뚝뚝한 아들 하나만 키우셨던 분이라, 당신이 좋던 싫던 상관없이 일단 싫다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첫마디가 '싫어' 하신 것을 보면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나투어에 근무하는 대학동기녀석도 팔고 하나투어 홈페이지에 있는 장가계 투어 일정표와 풀버전 영상을 보여드리면서, 굳히기 작업에 돌입했다.


"광진이한테 물어봤는데 어머님 모시고 가기에는 장가계 좋데요."
"그렇다니?"

"천문산, 천문산쇼, 귀곡잔도, 대협곡, 케이블카는 꼭 관광하라고 추천해줬어"

"현아, 엄마 여권 어디에 있지?"


7월 어머니 생신에 맞춰 장가계 여행 일정을 세웠다. 인원수가 문제였는데, 패키지여행의 특성상 최소 6인 이상이 모여야 출발 가능한데 2주 전까지 예약된 인원수는 어머니와 나, 단 2명뿐이었다. 이러다가 인원수 미달로 여행 취소되면 어머니께 두 번의 상심을 드리는 것이라 내 마음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하늘이 도운 결과일까? 여행사 확인 결과 출발 10일 전부터 여러 손님이 붙고 붙어서 그 날 출발 인원이 22명이란다. 너무 사람이 많은 감은 있지만 취소 안된 게 어디인가? 


인천공항에서 장사 공항까지 3시간 30분, 장사에서 장가계까지 버스로 4시간 30분. 총 8시간가량 지나 도착한 장가계는 한마디로 중국의 웅대함이 눈 앞에 펼쳐지는 자연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장가계 시내에서 8킬로 떨어져 있으며 해발은 1518.6미터 장가계의 혼이라 불리는 천문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천연 석회암 동굴 천문동, 정상까지 연결된 에스컬레이터를 보면서 중국이란 나라는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수밖에 없었다. 천문산 정상에서 장가계 시내까지 연결되어 케이블카 탑승 시간만 약 20분가량되는 세계에서 제일 긴 천문산 관광전용 케이블카, 그 길이가 무려 7,455m 된다.

영화 <아바타>의 촬영 배경의 모티브가 된 원가계 풍경구, 아무 곳이나 사진 찍는 곳이 절경이고 아름다운 배경이다. 바닥이 유리로 되어있어 마치 절벽을 걷는 아찔한 경험을 준 귀곡잔도, 어머니 인생에 처음으로 리프트를 타보셔서 한동안 말이 없으셨던 천문산사 가는 길, 심산유곡을 따라 걸으며 어머니와 도란도란 얘기 나누면서 대자연의 신비를 감상했던 금편 계곡, 천문산을 배경으로 인간세상의 사랑을 갈망하는 여우와 시골 노총각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뮤지컬 형식 공연 천문산쇼. 야생화의 고향 십리화랑, 황룡동굴 등등 

장가계 구석구석을 어머니와 관광하고 사진도 찍고 음식도 먹으면서 알차게 보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어머니께 감사한 점 3가지가 있다.

첫째. 3박 5일 동안 다닐 수 있는 체력과 건강을 유지한 것이다. 

중국 여행의 특성상 버스 이동 시간이 길기도 하거니와 버스에서 내리면 산에 오르고, 계단을 걷고, 동굴 안에서도 걷고, 강가따라 산책길을 걷고 또 걷고. 젊은이들도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다행히 여행 일정을 다 소화하셨다. 여행도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가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다음에 가면 되지'  '돈 좀 벌고 여유 좀 생기면 가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부모님 건강은 다음까지 기다리진 않는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건강하신 어머니께 참 감사한 마음이다.

둘째, 어머니는 항상 아들만을 생각하신다는 점이다. 

당신이 목마르고 배고프셔도 항상 나 먼저 챙겨주신다. 철없던 시절에는 창피하다고 어머니 손길을 거부하거나 무시했었다. 이제는 어머니 진심을 아니까 챙겨주시는 대로 주변 눈치 안 보고 다  받아들인다. 이름 모를 불상 앞에서도 아들 건강을 바라는 기도를 하시고, 천문동 정상에서 수많은 기원들을 담겨서 묶여있는 자물쇠들을 보면서도 아들 건강하라고 기도하셨다. 장가계의 아름다운 산새, 탄성이 절로 나오는 절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실 때도 아들 건강하라고 기도하셨다. 길에서 넘어져서 어딘가에 상처만 남아도 부모 마음은 아플 텐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뇌종양 수술을 했으니 어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찢어졌을까? 나는 어머니께 가장 큰 불효를 저질렀다.  

"아들에게 이 모든 기(氣)를 팍팍!" 사진 찍기 전 어머니께서 외치신 말씀이다
셋째, 어머니 덕분에 효자 소리 원 없이 들었다.

장가계 하나투어 패키지여행에 동행한 분들이 첫날에는 서먹서먹하더니 둘째 날부터 한분 두 분 말문이 트이면서 식사시간 때는 마치 단체로 함께 온 일행 같았다. 대부분 50대 부부 커플로 오신 분들이 많았고, 자녀들이 부모님 모시고 또는 부모가 애들과 함께 가족여행 온 분들도 있었고, 딸이 어머니 모시고 온 분도 있었다. 

아들-엄마의 조합은 우리뿐이었다.

"아들이 돈 벌어서 어머니랑 여행도 오고. 요즘 젊은이는 여자 친구랑 놀러 다니기 바쁘던데, 참 효자네"
"어쩜! 어머니 모시고 여행 올 생각을 다 했데. 참 효자네"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기고 아들 참 잘 키우셨네요"

결혼 안 한 총각으로 알던 분들이 아이 세 명 있는 유부남인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한 마디 덧 붙이신다.

"어머니랑 단 둘이 온 겨? 며느리는? 며느리한테 잘 햐" 



이번 여행이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멀리 외지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대화할 시간이 많았다는 점이다. 

평소 무뚝뚝하고 말없는 아들과 딸 키우는 엄마와 달리 아들 키우느라 감정 표현이 서툰 어머니. 집에서든 어디에서든 단 둘이 얘기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딱히 할 말도 없거니와 집에서는 아이들이 모든 관심에서 우선순위였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부터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는 리무진 버스까지 3박 5일 동안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대화 중간중간에 이런 말을 포함했었다. 

"엄마, 아들 이제 건강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들 많이 웃고 이제 아프지 않을게요"
"어머니도 건강하세요. 또 아들하고 단 둘이 여행 가십시다. 다음에 어디로 갈까요?"



우리가 작은 추억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추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뜻밖의 밤길에서 만나 다정한 길동무가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추억은 과거로의 여행이 아닙니다.
같은 추억이라도 늘 새롭게 만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담론>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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