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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현 Jun 22. 2017

누군가에게 의미 있었던 한 시간

이것이 진정한 오가닉 네트워크 아닐까?

한 시간 동안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에 한 시간 특강 자리가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과 인연으로 마련된 자리였는데, 그 전에는 폴리텍대학을 알지 못했다. 공고의 대학 버전이라 할까? 여하튼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졸지 않고 집중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뭐 하나라도 건져가게 할 수 있을까? 예전 강의 내용을 일부 가공하여 "광고 AE가 보는 디지털 마케팅의 변화"라는 내용으로 준비했다. 무려 61장이다. 원래 3시간 용으로 작업됐던 내용인데 분위기에 맞춰서 skip 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특강 시간에 맞춰 강의실에 들어섰다. 약 5-60명 정도 학생들이 있었다. 안경 쓴 뽀글뽀글 머리 남자아이. 얼굴 뽀얀 긴 머리 여자아이. 통통한 체형의 뿔테 안경 쓴 남자아이. 맨 뒤에는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남자아이들. 학과장님이 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한 후 강의실을 나가셨다.


"안녕하세요. 방금 소개받은 광고 16년 차 오종현입니다. 반갑습니다.
자 여기 계신 분 중에 이노션이라는 회사 아시는 분 계시면 손 들어주세요"


1명도 없었다. 강의에 난항이 예상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프로젝트 연결에 문제가 있는지. 노트북은 켜져 있는데 빔 화면이 자꾸 꺼졌다. 마우스를 좌우로 흔들어대도 빔 화면이 10초 이상 보이지 않고 자꾸 꺼졌다. 세팅을 다시 해보고 잭을 뺐다 다시 꼈다 해보기도 하고. '내가 왜 USB 안 챙겼을까?' 원망도 하고.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가고. 

'아~ X 팔려'


노트북을 덮고 My Story를 들려줬다.

"여러분은 제가 건강해 보이시죠?"
"네~~~"

대학 때 화학 전공하고 졸업 후 광고 회사로 가게 된 일.
크리에이티브한 광고쟁이 틈 속에 남모를 열등감에 빠져있던 일. 

연말 정산 때 의료비 0원 나온 적도 있었고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일.
비전공자이지만 나름 열심히 한 덕분에 대한민국 두 손가락 안에 드는 광고회사에서 일하게 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불안함에 대학원 가게 된 일. 대학원 LA 연수 때 수업 도중 쓰러진 일.
미국 닥터에게 뇌종양 같다고 들었던 일. 9시간 수술을 어떻게 받았는지 등등


내 얘기가 계속될수록 앞에 있는 아이들이 숙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중간 이후에는 엎드려 있거나 딴 일 하는 학생도 있었다. 맨 뒤쪽에 앉아 있는 학생 몇 명은 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우리 집 (따로가치) 자랑을 했다. 노트북에 있는 MBC 방송 영상을 보여줬지만 '아 이런' 여전히 빔 화면이 10초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꾸 꺼졌다. '아 되는 일이 없구먼' 시계를 보니 5분 정도 남았다. 마무리를 할 시간이었다.


"여러분한테 제 얘기를 한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제 인생은 뇌종양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을 많이 하고 다닙니다. 뇌종양 이전에는 하고 싶은 일이 10개가 있다면 실제로 하는 일은 한두 개 될까 말까 였어요. 회사 핑계로 업무 핑계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등등 이것저것 핑계를 대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 10개가 있다면 6-7개는 하는 것 같아요. 댄스 스포츠도 하고 집도 짓고 LG 원정 응원도 하고 자전거 일주도 하고 책도 쓰기도 하고요. 여러분도 앞으로 뭐하고 먹고살아야 하나 막막하시죠? 저도 제 꿈이 뭔지 잘 몰라요. 다만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지금 뭐가 가슴 깊이 당기는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날 때마다 묻습니다. 물론 그때그때마다 달라지긴 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세요. 살아가면서 계속 영점 조정을 해 나가는 겁니다."


급하게 마무리하고 나오는데 한 학생이 따라 나왔다. 맨 뒤쪽에 앉아있던 학생이었다. 본인도 뇌종양 걸렸었다며, 언제부터 회복되었는지 물어보았다. 간단하게 답을 해줬지만 충분하지 못했다. 내 명함을 주면서 언제든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문의 문자가 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아까 특강 후 질문드렸던 폴리텍 학생 OOO입니다.
이사님 강의 굉장히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특히 뇌종양이 하고 싶은 것을 자주 하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이 가장 와 닿았습니다. 

제가 수술을 받은 지는 1년 6개월 정도 지났습니다. 수술을 막 받고 1차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가장 안 좋은 불치병으로 결과가 나왔고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제 인생을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억울했습니다.

대학 전공마저 부모님이 정해주신 곳을 갔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5년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다짐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글씨도 제대로 못쓰고 말도 잘 못하는 제가 뭘 할 수 있겠나 자신감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강의를 듣고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이사님처럼 멋지게 살고 싶다는 꿈도 용기도 얻었습니다. 아직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진 못했지만 자격증 공부도 하고 있고 차근차근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특강이 저에겐 큰 계기가 된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동이었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었던 한 시간이었다. 

만약 프로젝트 연결이 잘 되어서 준비한 내용으로 특강 했었다면 이 학생 사연을 몰랐을 것이다. 나와 이 학생의 연결이 가능한 것은 진실하게 한 나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집 짓는 비용이 얼마인지 궁금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의미 없는 한 시간이었을 텐데 이 학생은 마치 자신의 상황처럼 빠져들고 공감했을 것이다. 내가 요즘 오가닉 마케팅에 빠져있는데 이것이 오가닉 네트워크이지 않을까?  


이제는 제조 시스템, 조직이 만들어내는 가치보다 이 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더 커지는 것이다. 수백, 수천만, 수억의 사용자 한 명 한 명이 만드는 평범한 연결이 반복되고 쌓여 만드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일상을 발견의 즐거움으로 만들어 주는 과정에 가치가 있다. 이것이 연결 비즈니스, 오가닉 비즈니스의 실체다.
by 노성규 <오가닉 비즈니스>, 오가닉미디어랩,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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