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없는 전시

by FortelinaAurea Lee레아

제17편. 전시 없는 전시


봄비가 내리던 날, 은경은 두 팔 가득 그림을 안고 골목길을 걸었다.

비에 젖은 종이 포스터들이 전봇대마다 붙어 있었고,

그 사이에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조심스레 붙였다.


“이제 이게 나의 전시장이야.”


갤러리에 들어갈 돈도, 협회의 네트워크도,

도록을 만들 능력도 없는 그녀에게 남은 건 길거리뿐이었다.


지하철역 앞 벽보판 한쪽에 그녀는 작품을 테이프로 붙였다.

검은 비닐 위에 그린 유채 그림.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쳤다.

몇몇은 고개를 갸웃하며 “이게 뭐야? 광고야?”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가끔 멈춰 서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짧은 순간조차 은경에겐 관객이었다.

“나는 전시를 하고 있다.

벽보판이든, 전봇대든, 누군가 잠시라도 본다면.”


그녀는 카페 게시판에도, 공원 울타리에도, 버스정류장 유리에도 작품을 붙였다.

밤에는 순찰 경찰에게 불려 가기도 했다.

“이거 불법입니다. 떼어내세요.”

은경은 고개를 숙이며 작품을 떼어냈다.

손에 남은 끈끈이는 눈물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 그림은 갤러리 벽에 거부당했으니, 세상 벽에 걸린다.”


어느 날, 지하철역 그림 앞에서 한 노숙인이 멈춰 섰다.

그는 오래도록 그림을 바라보다가 은경에게 물었다.

“이거, 내 모습인가?”

은경은 놀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신의 눈빛을 담았어요.”

노숙인은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전시회에 온 기분이네.”


그 말에 은경은 숨이 막히듯 울컥했다.

한 사람의 마음에 들어갔다면, 그것이 진짜 전시였다.


그러나 비가 오면 그림은 젖어 찢어졌고,

바람 불면 종이는 날아가 버렸다.

며칠 후, 공무원들이 와서 다 떼어내 버렸다.

그녀의 전시는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벽은 다시 공백이 되었지만,

그녀의 가슴 안에는 여전히 관객의 눈빛이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은경은 낡은 노트에 글을 남겼다.


나는 전시 없는 전시를 한다.

벽은 지워지지만, 마음에 남은 건 지워지지 않는다.


그녀는 다시 작은 그림을 들고 집을 나섰다.

오늘도 또 다른 벽에 붙이기 위해서.


비록 갤러리는 그녀를 몰라주었지만,

세상은 어쩌면 가장 넓은 전시장이었다.


— 끝 (제1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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