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편. 하루 알바, 하루 예술
수민은 매일 다른 곳에서 일했다.
월요일은 편의점, 화요일은 카페, 수요일은 학원 청소, 목요일은 주방 보조, 금요일은 서빙.
주말에는 또 다른 단기 알바를 이어갔다.
그녀의 가방에는 항상 작은 스케치북이 들어 있었지만,
그걸 펼칠 틈은 늘 늦은 밤 집에 돌아와서였다.
“오늘은 알바를 했으니, 오늘만큼은 예술도 해야 해.”
그것이 그녀의 하루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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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새벽,
편의점에서 계산대에 앉아 있으면,
형광등 불빛이 하얗게 번졌다.
그 차갑고 무미한 빛 속에서 수민은 손님들의 그림자를 스케치했다.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청년, 손을 꼭 잡고 들어온 연인,
그리고 혼자 도시락을 고르는 노인.
“이건 하루의 초상화야.
편의점 불빛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사람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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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카페에서,
그녀는 라떼 거품 위에 우연히 남은 무늬를 유심히 보았다.
“이건 파도야. 오늘의 바다.”
주문이 쌓여 허겁지겁 컵을 닦으면서도,
그녀는 종이컵 뒷면에 파도선을 그렸다.
고객이 무심코 버린 그 컵은 결국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지만,
그림은 그녀의 기억 속에서 또 하나의 풍경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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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밤,
비어 있는 학원 교실에서 칠판을 닦으며,
그녀는 아이들이 남겨둔 낙서를 가만히 바라봤다.
‘싫다, 힘들다, 졸리다’
지워야 하는 낙서들이었지만, 그녀는 잠시 그 문장들 위로 선을 그었다.
그러자 낙서와 선이 합쳐져 이상한 추상화가 되었다.
“이건 오늘 아이들의 외침이자, 나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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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주방에서 튀김기 앞에 서 있으면 기름 냄새와 불빛이 얼굴을 덮쳤다.
튀겨지는 순간 튀겨나간 작은 기름방울들이 허공에 무늬를 그렸다.
그녀는 땀에 젖은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불꽃도 그림이 될 수 있다. 오늘의 색은 뜨거운 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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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레스토랑 바닥을 수십 번이나 오가며 그녀의 발에는 물집이 잡혔다.
그러나 그 발자국 하나하나가 마치 바닥 위의 드로잉 같았다.
“나는 오늘, 발로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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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그녀는 매일의 조각들을 스케치북에 옮겨 담았다.
편의점 불빛의 초상화, 카페의 파도, 학원의 낙서, 주방의 불꽃, 서빙의 발자국.
그것은 거창하지 않았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솔직한 하루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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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은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매일 알바생이고, 매일 예술가다.
오늘의 알바는 내 작품의 재료,
오늘의 피곤은 내 그림의 색이다.
그녀는 잠들기 전, 내일의 알바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내일도 또 다른 작품을 얻게 되겠지.”
그녀의 삶은 지쳐 있었지만,
그 속에서 매일 태어나는 그림은 여전히 반짝였다.
— 끝 (제16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