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편. 쓰레기 요일
새벽 네 시.
쓰레기 수거차의 사이렌처럼 날카로운 엔진음이 골목을 가르며 들어왔다.
철제 박스가 덜컹이며 들려 올려지고, 빈 캔들이 구르는 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성호는 그날도 작업복 대신 형광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원래 그는 화가였다. 그러나 지금은 쓰레기를 수거하는 인부였다.
차가 멈추는 곳마다, 그는 검은 봉투를 집어 올려 트럭 뒤편에 던졌다.
살아남으려면, 붓이 아니라 장갑을 쥐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는 낡은 액자 더미를 발견했다.
커다란 캔버스가 5개쯤 묶여 있었다.
비에 젖어 얼룩이 번지고, 모서리는 찢어져 있었다.
하지만 한 장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색의 거대한 선.
그 선은 성호가 예전에 작업실에서 새벽마다 그리던 바다와 닮아 있었다.
그는 장갑 낀 손으로 캔버스를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누군가의 꿈이었을 텐데.”
동료는 말했다.
“에이, 버려진 거잖아. 그냥 올려.”
그러나 성호는 그 그림 하나를 몰래 트럭 옆에 세워두었다.
쓰레기 요일의 새벽, 그는 그렇게 또 다른 화가의 절망을 주워 올렸다.
그날 밤, 작업을 마친 성호는 지하방으로 돌아와 그 그림을 벽에 걸었다.
곰팡이가 핀 벽 위에서, 그 푸른 바다는 다시 살아났다.
비록 얼룩지고 찢겨 있었지만, 그 속엔 아직 숨결이 있었다.
그는 그림 앞에 앉아 맥주를 따고,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버려진 건 그림이 아니라, 우리였구나.”
며칠 뒤, 성호는 자신의 작업실에 남겨뒀던 오래된 스케치북을 꺼냈다.
거기에는 아직 완성되지 못한 수많은 선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펜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끝은 여전히 거칠고, 잉크는 번졌지만, 그 번짐 속에 또 하나의 바다가 생겨났다.
그의 벽에는 이제 두 개의 바다가 걸려 있었다.
하나는 버려진 그림, 하나는 다시 태어난 그림.
두 바다는 서로를 비추며, 쓰레기 요일의 새벽을 잊지 않게 했다.
어느 날, 방을 찾은 이웃 아이가 물었다.
“아저씨, 이 그림은 왜 찢어졌어요?”
성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아이에게 작은 스케치를 건네며 말했다.
“이건 새 바다야. 네가 갖고 있어.”
아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순간 성호는 알았다.
예술은 갤러리의 벽에만 걸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도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쓰레기 요일의 새벽은 여전히 찾아온다.
트럭은 또 다른 절망을 삼켜 가지만, 가끔은 그 속에서 다시 살아날 무언가가 나온다.
성호는 그것을 구원이라 부른다.
그리고 매번 주워 온 절망을, 다시 작은 파랑으로 그려낸다.
오늘도 그의 지하방 벽에는 그림이 늘어간다.
버려진 그림들, 그리고 다시 태어난 그림들.
그 벽은 더 이상 곰팡이 벽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이 벽은… 나만의 갤러리다.”
— 끝 (제19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