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슈어의 슬픔

by FortelinaAurea Lee레아

제20편. 브로슈어의 슬픔


전시가 열릴 때마다 가장 먼저 완성되는 것은 언제나 브로슈어(Brochure 전단지나 팜플렛 또는 소책자...) 였다.

하얀 종이 위에 작가의 이름, 전시 제목, 몇 줄의 스테이트먼트, 그리고 몇 점의 이미지.

마치 전시의 얼굴처럼 관람객의 손에 쥐어지는 그 안내서에는

빛나는 듯하지만 어딘가 텅 빈 공기가 감돌았다.


그 얇은 종잇장은 작가들에게 늘 양날의 검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또 누군가는 이름조차 작은 글씨로 밀려나 있었다.

인쇄소의 기계가 덜컹거리며 돌아가던 그 밤,

민정은 갓 찍혀 나온 브로슈어를 들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손끝이 떨리는 걸 느꼈다.


“내 그림이 왜 여기 있어야 하지…?”

그녀의 작품 이미지는 조각처럼 잘려 있었고,

옆 페이지의 화려한 광고가 오히려 더 돋보였다.

그 속에는 돌을 깎던 손의 굳은살도,

밤새도록 캔버스 앞을 지키던 숨결도,

이름 없는 날들의 피로도 담기지 않았다.


전시가 열리면 브로슈어는 무심히 관람객들의 손에 쥐어진다.

누군가는 두세 장 챙겨 가고,

누군가는 구겨 쓰레기통에 버린다.

민정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마치 자신의 심장이 종이처럼 구겨지는 기분에 고개를 돌렸다.

작가들이 낸 도록비와 광고비, 인쇄비는

그 얇은 종이 속에 다 녹아 있었으니까.

“이건 홍보물이 아니라, 나의 삶의 무게인데…”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단체전에 참여할 때마다 느끼는 건 언제나 같았다.

화려한 브로슈어에는 작가의 진심보다 경력이 먼저 자리 잡았다.

몇 번 전시했는지, 어떤 협회 소속인지, 어떤 상을 받았는지가 줄줄이 이어졌다.

작가노트는 짧았고, 작품에 담긴 마음이나 철학은 종종 누락되었다.

“요즘은 이력이 예술보다 중요하대요.”

누군가의 농담 같은 말이, 왠지 씁쓸하게 들렸다.


민정은 종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말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우리가 증명해야 할 건 숫자나 경력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 아닐까?”


그러나 브로슈어는 언제나 화려한 문장으로 가득했다.

“빛의 향연, 색채의 교향곡, 새로운 시선.”

그 문장들은 작가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디선가 복사해 온 기계의 말처럼 들렸다.

그 안에는 예술가의 울음도, 절망도,

빚더미와 설거지 아르바이트의 현실도 담기지 않았다.


전시가 끝난 뒤, 남은 브로슈어는 상자에 쌓여

갤러리 창고 한 구석에 버려졌다.

먼지가 쌓이고, 종이는 눅눅해졌다.

그 속에 담긴 수십 명의 이름도, 사진도 곧 잊혔다.

민정은 그 상자 앞에 앉아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어쩌면 이 종이는, 우리 예술가들의 무덤 같은 것일지도 몰라.”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날 밤, 사용하지 못한 브로슈어 뒷면에

민정은 작게 글을 적었다.


“예술은 종이가 아니다.

우리의 삶, 우리의 눈물, 우리의 피다.

누군가 버린다 해도, 우리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브로슈어의 슬픔은 단순히 종이의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가들의 삶이 얼마나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가에 대한 기록이었다.

아침 햇살이 들어올 무렵,

민정은 구겨진 브로슈어를 펴서 다시 바라보았다.

이제 그 속의 작은 이미지는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그건 살아 있는 기록이었고,

언젠가 누군가가 다시 펼쳐 볼, 꺼지지 않는 증언이었다.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 (제20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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