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라가 장미성운에서 가져온 빛의 씨앗은 인류의 운명을 바꿀 발견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새로운 색의 감각, 즉 초월적인 시각을 열어주는 열쇠였다. 하지만 그 씨앗이 가진 힘을 인간이 받아들이려면 유전자 변형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단순해 보이는 과정은 인류를 둘로 나누는 깊은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지구의 중심 도시 뉴헤이븐에서 열린 긴급회의에서는 카이라가 직접 씨앗의 힘과 발견을 설명했다. 홀로그램으로 투영된 그녀의 모습이 빛나는 우주 정원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떠올랐다.
“이 씨앗은 우리가 우주의 진정한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체, 아니 우리의 본질을 바꿔야 합니다.”
카이라의 말이 끝나자 홀 전체가 웅성거렸다. 원시주의자들의 지도자인 엘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유전자 변형이라고요?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질을 바꾸는 것은 우주가 아니라 인간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당신은 인류를 괴물로 만들려는 겁니까?”
카이라는 그녀의 말을 조용히 받아쳤다. “괴물이 아니라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 겁니다. 우주는 우리가 진화하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그 문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엘렌은 그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진화라니요? 그것은 기술주의자들이 항상 주장해 온 말도 안 되는 논리입니다. 자연은 우리가 그대로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뿌리를 잊는 순간, 우리는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의 논쟁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원시주의자들은 자연 그대로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진보주의자들은 유전자 변형을 통해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갈등의 한가운데에서, 카이라는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씨앗을 손에 들고 홀로 깊은 우주를 바라보았다. 이 씨앗은 너무도 아름답고, 너무도 강력했다. 하지만 그것이 불러올 파장은 이미 그녀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조용한 발소리가 들렸다. 리안이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구나.” 그는 그녀 옆에 앉아 창밖의 우주를 바라보았다.
“내가 옳은 걸까, 리안?” 그녀는 속삭였다. “우주가 우리에게 이 씨앗을 준 건 분명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리안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우주가 너에게 답을 주었지만, 그 답을 해석하는 건 우리 몫이지. 너는 항상 옳은 길을 찾으려고 했어. 지금도 그럴 거야.”
하지만 카이라는 그 말을 듣고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지구는 두 진영으로 완전히 나뉘었다. 진보주의자들은 우주 정거장에서 새로운 유전자 변형 기술을 테스트하며 초감각 스펙트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반면, 원시주의자들은 지구에 남아 자연과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지키기 위한 군대를 조직했다.
그리고 전쟁의 기운은 우주를 떠돌던 탐사선 루멘스호까지 스며들었다.
“전쟁이 시작되면 어떻게 될까?” 리안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의 발견이 이런 갈등을 불러올 줄은 몰랐어.”
카이라는 고개를 저었다. “이 씨앗은 갈등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야. 우주는 우리에게 길을 제시했지만, 그 길을 어떻게 걸을지는 우리의 선택이야.”
그녀는 결심했다. 씨앗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인류가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카이라는 루멘스호를 이끌고 다시 장미성운으로 향했다. 그녀는 답을 얻기 위해 정원사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성운의 심장부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이전보다 훨씬 강렬한 빛의 파도를 느꼈다. 그것은 마치 그녀를 부르는 듯했다.
“정원사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저에게 다시 한번 가르침을 주세요. 이 씨앗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인류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그 순간, 빛이 주변을 감쌌다. 그리고 그녀는 또다시 우주의 언어 속으로 빠져들었다.
“우리는 네가 이 답을 찾아내길 바랐다.”
정원사들의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속에서 울렸다.
“이 씨앗은 인류를 위한 선물이자 시험이다. 그것은 너희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공존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의 문제다. 유전자 변형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도 모두 우주의 일부일 뿐이다.”
카이라는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그렇다면 인류가 갈등 대신 선택해야 할 것은…”
“균형.” 정원사들이 대답했다. “너희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씨앗은 너희가 함께 피워내야 할 꽃일 뿐이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씨앗은 단순히 초감각 스펙트럼을 열어주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인류가 다시 하나로 모이기 위한 다리였다.
카이라는 장미성운을 떠나며 마음 깊이 결심했다. 그녀는 씨앗을 전쟁의 도구로 쓰게 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것을 통해 인류를 하나로 모으고, 우주가 진정으로 원했던 길로 이끌 것이다.
“우리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니야.”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