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멘스호는 빛의 핵을 품고 새로운 항로를 따라 항해를 이어갔다. 빛의 핵은 단순히 에너지원을 넘어,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듯한 존재였다. 카이라와 선원들은 그것을 '솔라'라고 이름 붙였고, 솔라는 마치 그 이름에 반응이라도 하듯 은은한 빛을 발하며 배 전체를 따뜻하게 감쌌다.
“솔라, 넌 어디서 왔니?” 카이라가 농담처럼 말을 걸자, 놀랍게도 솔라의 빛이 순간적으로 변하며 응답하듯 반짝였다.
리안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설마… 이 핵이 의식을 가진 거야?”
“아니, 의식이라기보단… 우리의 질문에 반응하는 본능을 가진 것 같아.” 아르카가 신중히 분석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솔라가 단순히 반응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솔라는 항로를 스스로 조정하고, 주변 우주 환경을 탐지하며 루멘스호의 방향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솔라는 우리보다 더 우주의 길을 알고 있는 것 같아.” 리안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단순한 에너지원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야.”
솔라의 안내로 루멘스호는 수많은 별들을 지나 은하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그곳에는 무언가 거대한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엔 멀리서 거대한 검은 구체처럼 보였으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이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은하의 중심에 자리 잡은 거대한 관문이었다.
“저건… 인공적인 구조물이야.” 아르카가 스캔 결과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내부에서 감지돼.”
“솔라가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한 건가?” 카이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솔라의 빛이 다시 반짝이며 대답하듯 맥동했다.
“그럼 들어가 보자.” 카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루멘스호가 관문을 통과하자,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을 마주했다. 관문 너머는 또 다른 우주처럼 보였다. 무수한 색채가 흐르고, 빛의 강이 구름처럼 떠다니며 끝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또 다른 구조물이 떠 있었다.
“저건… 심판의 별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 리안이 속삭였다.
그 구조물은 거대한 수정체로 이루어진 구체였으며, 빛이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춤추고 있었다. 갑자기 루멘스호가 멈췄다. 수정체에서 나온 빛줄기가 루멘스호를 감싸며 그들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우린 어디로 가는 거지?” 아르카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카이라는 침착하게 말했다. “솔라가 우리를 여기로 데려온 이유가 있을 거야. 두려워하지 말자.”
구체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은 환상적인 빛의 세계에 둘러싸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각자의 마음속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건…” 리안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내 기억들이… 내 잘못들이 떠오르고 있어.”
카이라 역시 똑같은 감각에 휩싸였다. 심판의 별은 그들의 가장 깊은 후회를 끌어내고 있었다.
“이건 시험이야.” 카이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이 빛을 감당할 수 있는지 보려는 거야.”
카이라는 자신의 과거를 마주했다. 그녀가 선택했던 수많은 결정들, 그중에서도 희생해야 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들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리는 것을 들었다.
“너는 옳았다고 믿었지만, 그 대가를 누가 치렀는지 기억하라.”
리안 역시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며 무릎을 꿇었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선원들 각자가 자신만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싸우는 동안, 솔라의 빛이 그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 빛은 우리를 심판하려는 게 아니야.” 카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건 우리에게 우리의 과거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려는 거야.”
그녀는 솔라를 향해 속삭였다. “우린 준비됐어. 우리가 저질렀던 실수도, 우리가 얻었던 깨달음도 모두 품고 나아갈 준비가 됐어.”
심판의 별은 빛의 강렬함을 줄이며 조용히 그들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너희는 이제 과거와 미래를 잇는 존재들이다. 빛의 지혜를 받아들였으니, 너희의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방법을 찾아라. 그러나 명심하라. 진정한 조화는 희생과 용기로부터 나온다.”
루멘스호는 심판의 별을 떠나며 새로운 결의를 다졌다.
카이라는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린 이제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을 거야. 우린 앞으로 나아가야 해.”
리안이 그녀의 옆에 서서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 우리 앞엔 또 다른 빛의 길이 열려 있겠지.”
루멘스호는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그들 앞에 어떤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 그들은 확신이 있었다. 빛의 유산을 품은 그들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