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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물리학과 저작권의 기묘한 인연]

저작권 관련 주제 - 산문

by FortelinaAurea Lee레아

양자물리학과 저작권의 기묘한 인연


양자물리학은 애초에 인간의 직관을 배신하기 위해 존재하는 학문이었다. 전자가 동시에 여기와 저기에 있을 수 있다느니, 고양이가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다느니,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지만 더 웃긴 건, 이 난해한 학문이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제도인 ‘저작권’과 충돌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한때 나는 상상했다. 양자역학의 거장 닐스 보어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법정에 나란히 서서, ‘EPR 패러독스’의 아이디어가 누구 소유냐고 다투는 모습을. 판사 앞에 선 아인슈타인이 말하겠지. "저는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보어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답할 것이다. "그래도 주사위를 굴리는 우주의 저작권은 제 겁니다."


실제로는 그런 소송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만약 벌어졌다면 법정은 두 천재를 상대하느라 광속으로 탈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양자물리학의 발견이든, 새로운 수식이든, 실험 데이터든, 심지어 양자컴퓨터의 알고리즘까지, 세상 모든 ‘아이디어’에는 저작권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문제는, 양자 세계의 특성상 이것이 도대체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하는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연구자가 양자 얽힘(Entanglement)을 설명하기 위해 멋진 비유를 만들었다고 치자. "두 입자는 영혼의 트위스트 춤을 춘다!" 오, 아름다운 문장이다. 그런데 이 비유에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아니, 영혼도 트위스트도 우주도 다 프리소스 같은데?


심지어 양자 얽힘 자체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 법률은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표현한 형태만 보호한다. 그러니 양자 얽힘을 설명하는 책을 베껴 쓰면 문제가 되지만, 얽힘 그 자체에 "내꺼!"라고 깃발 꽂을 수는 없다.


그럼 더 골때리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누군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다시 상상해서, 이번엔 상자 안에 고양이 대신 판다가 들어 있는 이야기를 썼다고 치자. "판다는 상자 안에서 살아 있고 동시에 점심을 기다리고 있다."

이 경우 판다 이야기는 저작권 침해일까, 창작일까?

법정에서 다투기라도 한다면, 어느 쪽이 열려 있고 어느 쪽이 닫혀 있는지 모르는 고양이 상자처럼, 재판 결과도 동시에 승소와 패소 상태로 존재할지 모른다. 오직 최종 판결을 "관측"하기 전까진!


양자물리학의 세계는 끝없이 겹치고 분기하며, 저작권법은 단선적이고 직선적이다. 이 둘이 충돌하면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특히 양자컴퓨터 분야에서는 특허권과 저작권이 얽히고설켜 복잡한 난장이 벌어진다.

A 연구팀이 "양자 최적화 알고리즘"을 발표하고, B 연구팀이 이를 약간 수정해 "더 빠른 최적화"를 선보인다. 그러면서 서로 고소장을 들고 달려간다.

"이건 우리가 처음 발명했어요!"

"아니요, 당신들은 단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었던 가능성 중 하나를 미리 본 것뿐입니다!"


이 와중에 양자역학자들은 멀찌감치 앉아 시니컬하게 웃는다.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다니까."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양자 세계처럼 ‘모호한 것’을 인간 세계의 ‘명확한 법’으로 보호할 수 있는가?

법은 정의와 불의를 나누지만, 양자물리학은 그 경계를 흐린다. 입자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일 수 있다면, 저작물이 독창적인 동시에 비독창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몰랐을 뿐, 모든 창작은 어쩌면 원래부터 양자 중첩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현실의 저작권 제도는 아주 조금 유연해졌다. 현대 저작권법은 ‘창작성’이 충분하다면 미세한 아이디어 변형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판사는 인간이다. 슈뢰딩거 고양이 재판을 맡긴다면 판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칠 것이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정하고 오세요!"


그러니 앞으로 양자물리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법체계도 점점 더 ‘양자적’ 사고를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애초에 우리 두뇌도 신경망 차원에서는 양자적 흔들림을 갖고 있는 거니까.

‘명확한 것만 보호하겠다’는 원칙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진짜 혁신과 아이디어를 놓치게 될 것이다.


아마 미래의 저작권 계약서에는 이런 문구가 추가될지도 모른다.


"본 계약은 관측되었을 때에만 유효하며, 모든 조건은 다세계 해석을 고려하여 적용될 수 있습니다."


웃어넘기기엔 너무나 가능한 일 아닌가?


결국, 양자물리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모든 것은 동시에 존재하고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너의 위대한 발명도.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굴지 마. 어차피 우리는 모두 거대한 확률파 안에 떠 있는 작은 꿈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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