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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한 Jun 19. 2019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넷플릭스 오리지널 : 블랙미러

* 이 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미러 시즌 1: 당신의 모든 순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만찬이다. 부부는 친구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그런데 남자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인다. 낮에 면접을 망쳐서 그렇다고 하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만 같다. 여자는 남자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느끼하게 생긴 녀석이 자꾸 재미없는 농담을 한다. 여자는 그 녀석의 농담에 즐거워한다. 남자는 그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만찬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여자는 그 녀석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 남자는 언짢아한다. 다음 날 아침, 남자는 기억을 스크린에 재생시켜 어제 여자가 그 녀석의 실없는 농담에 웃던 장면을 반복해서 시청한다. 여자는 의심하는 그의 모습에 화를 낸다. 그러나 남자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다.


그 녀석의 집으로 쳐들어가 위협하고는 그 녀석의 기억을 돌려본다. 그 기억 속에는 여자가 있다. 집으로 와서 여자에게 묻는다. 어떤 관계였냐고. 여자는 거짓말을 한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그러나 결국 여자의 기억은 재생되고, 그곳에는 그 녀석과 여자가 침실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담겨 있다. 남자는 실의에 빠지고 기억을 저장하는 체내 삽입형 디바이스를 제거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데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는가? 처음 사랑에 빠지면 '밀당'이니 '연인 사이의 거리'니 하는 것들은 모두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생각은 금방 바뀐다. 거리가 좀 필요할 것 같다고. 여기서 거리란 심리적 거리를 말한다.


인간은 모두 독립된 내면세계를 갖추고 살아간다. 신기하지 않은가? 속으로 무슨 말이든 중얼거려보자. 방금 그것은 타인에게 닿을 수 없는 자신만의 고요한 외침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지만 아주 익숙한 일이기도 하다. 각각의 내면세계는 독립된 존재로, 누군가 그곳에 침범하려 하면 불쾌해진다. 물론 사람마다 기준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내면세계와는 조금 다르지만 사람이 자신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퍼스널 스페이스'는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1.01m, 미국의 경우 89cm, 남미는 81cm. 문화권마다 차이가 존재하는 퍼스널 스페이스처럼, 내면세계의 침범에 대해서도 사람에 따라 기준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연인 사이라 하더라도 불쾌하지 않은 수준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 선을 지켜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관계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연인이라면 무엇이든 공유해야 하고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상대에게 자꾸만 무언가 요구하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치밀어 오른다. 이런 감정은 본능이지만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것은 집착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공생적인 결합에서의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실존 문제에 대한 성숙한 해결책으로써 능동적인 활동'이라고 말했다. '공생적인 결합에서 수동적인 감정의 결과'로 흔히 치닫은 상태가 집착이다. 집착은 지켜야 할 타인과 나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무시하고 각각의 내면세계를 동일하게 구성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분리에 대한 두려움, 즉 실존적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사랑은 '주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랑은 항상 주체적이고 자신의 개성을 유지한 사람 사이에서 가능하다.




남자는 불안해 보인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실존적 불안감이다. 그러나 그는 불안을 이겨내지 못했다. 대신 의존적인 모습으로 여자의 내면세계를 침범하고, 심지어는 그 녀석의 내면세계를 침범하기도 했다. 어쩌면 남자의 문제는 여자와 그 녀석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내 마음과 같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많은 말을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말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경우에는 대부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때때로 타인의 내면세계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일은 개인에게 매우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래야만 한다. 선을 넘는 순간, 그에게도 나에게도 의존과 집착의 지옥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Yellow C A R D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beep
매너는 여기까지 it's ma ma ma mine
Please keep the la la la line

Hello stu P I D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beep
Stop it 거리 유지해 cause we don't know know know know
Comma we don't owe owe owe owe (anything)

<삐삐>, IU(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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