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람을 살린 할머니의 육아
매주 화요일 오후, 오는 할머니와 초등학교 3학년 손자가 있다.
6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는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망고스무디, 케이크 1개를 주문하고,
영수증을 챙기신다.
1시간 정도, 손자는 망고스무디와 케이크를 먹으며 학원가기 전, 숙제를 하거나 학습지를 푼다.
딱봐도 똘똘해 보인다.
할머니의 분위기가 안정되고 온화하고 총기가 있으신 게 가족들이 다 그럴 것 같았다.
"할머니, 겨울에 스페인 가면 00도 하고 00도 할꺼에요.."
남자아이는 겨울에 스페인 여행계획에 들떠 있었다.
"어머, 학생 스페인 여행가나봐요~"
간만에 오지랖 피우는 사장이모가 되어 해외여행 잘 아는 척을 해보았다.
"얘 엄마아빠랑, 얘랑 셋이 겨울에 바르셀로나 여행을 갈꺼에요.
나는 그 동안 휴가지 뭐~ 너 바르셀로나 가면 뭐 본다고 했지?"
"가우디 성당"
"이모도 그 성당 가봤어, 이모 스페인 3번이나 갔었어.
아직 짓고 있을 텐데.. 너 가우디 어떻게 알아."
"책에서 봤어요. 2025년에 완성 된대요."
요즘 어린이는 정말 똑똑하다.
겨우 10살이 가우디와 스티브 잡스를 좋아 한댄다.
10살 때 나는 요술공주 밍키를 좋아했었는데.
바르셀로나에 대해 이미 공부를 많이 한 손자를 할머니는 자랑스럽게 쳐다본다.
그리고 갑자기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 외손자의 육아기가 한바탕 시작되었다.
부산의 한 맞벌이 부부 가정에서 육아를 담당하게 된 외할머니의
10여년간 여정을 압축해서 듣게 되었다.
"얘 엄마 아빠가 둘 다 해외출장이 잦아서...
얘를 놓자마자 내 딸이 3달 만에 복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여서...
나는 그때 영도에 살았는데, 주중엔 딸집에 살고, 주말엔 내 집으로 갔다가
몇 년전에 얘 집 옆단지로 이사와서..
얘가 아기 때, 얘 엄마가 출장 가 있으면 나는 초긴장 상태, 애들은 갑자기 아프니까...
몇 년 전에 아들이 결혼해서 친손자를 낳았는데, 다행히 며느리가 일을 안 해서...거기는 안 불려가.
그러다 얼마 전 며느리가 일을 하기 시작해서... 걔도 봐달라고 하면 어떻하나.. 했는데,
다행히 친손자는 걔 외할머니가 봐줘..
코로나로 학교 안 가고 삼시세끼 해 먹여야 하는 거 너무 힘들어.
그래도 이제 조금 컸다고 할머니 한테 표현을 많이 해...
밥 먹을 때 나 좋아하는 반찬이라고 내 앞에 놔주고..
얘 엄마아빠가 내가 숟가락 들기 전에 애 밥 못 먹게 해.
내가 밤에 우리집에 가려고 하면.. 할머니 오늘도 고생하셨다고 팔 붙잡고 얘기해...
그럴때 별거 아니지만, 보람있고 뭉클해.
가끔 손자 돌보는 친구들 얘기들어보면 철딱서니 없고, 할머니한테 함부로 하는 애들도 많아.
부자인 친구는 손자 2명 영어유치원비 다 대줘. 나는 그렇게 까지 못하니 몸으로 때워.
이제는 얘도 커서 손 많이 안 가고, 딸네 아들네 다 하나씩 낳고 맞벌이 해서 감사 해야해..."
"할머니가 따님, 사위님, 외손자까지 사람 3명 살리신거에요"
중간에 추임새 한 번 넣었다.
아이의 학원 시간에 맞춰 할머니의 넋두리인듯 자랑인듯 수다는 적절한 분량으로 멈춰졌다.
지난 십수년간 결혼출산육아를 한 친구동료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를
할머니의 관점에서 들으니 새로웠다.
세상 혼자 사는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감정이다.
요즘 세상에 아기에서 아이가 되고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될 때 까지
얼마나 많은 '애'가 들어가야 하는지 새삼 목격하였다.
가우디를 좋아하는 이 3학년이 그걸 잘 받아먹고 잘 컸으면 좋겠다.
나는 빨리 퇴근하여 우리집 공기 나 혼자 쐬며 안정되고 온화해져야지.
#카페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