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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 Jan 12. 2021

 방학이 준 선물

"할머니는 치실이 뭔지도 몰라."

코로나로 인한 긴 방학 동안 지성이와 서진이는 일주일 넘게 영종도 외할머니댁에서 지냈다. 지성이는 남편과 내가 영종도로 데리러 간 날, 자신은 혼자 영종도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은 일요일 늦은 밤, 집에 잠든 채 실려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유치원에 가는 일에 대한 반항이자 거부의 표현이었다. 유치원에 가는 일에도 예열이 필요한 지성이에게는 늘 변화를 맞이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영종도에 남겠다고 해서 쓸쓸한 외할머니의 미소가 밝아지는가 싶더니, 아빠와 협상을 하고 와서는 마음을 바꿨다. 월요일 아침에 동생 서진이만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지성이는 유치원에 가지 않는 작전으로 유혹했고, 지성이는 기분 좋게 협상에 동의했다.  


할머니와 지낸 시간을 뒤로하고, 집에 간다고 하니 할머니는 회유했다.

“지성아, 할머니랑 더 지내다 가. 먹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다 해줄게.”

“할머니, 그럼 그 내가 갖고 싶었던 열쇠고리 사 줄 거야? 할머니 스테이크 할 줄 알아?”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다 가능하다고 답해주었지만 지성이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면서 할머니에게 계속 말했다. 할머니가 혼자 남으면 쓸쓸하지 않겠냐는 말을 마음에 담아둔 듯했다.

“할머니, 그 대신 영상통화 자주 하자. 알았지? 할머니 안녕!”

아직 출발할 채비도 하지 않았는데, 할머니와의 이별이 아쉬워 안녕하며 손을 흔든다. 영상통화 자주 하자는 할머니에게 연거푸 했다.



치약이랑 칫솔, 치실을 돌아가는 가방에 넣으며 지성이에게 물었다.

“지성아 치실은 열심히 했어?”

“할머니가 치실 안 해줬어. 할머니는 치실이 뭔지도 몰라. 하고 싶으면 나 혼자 하래.”

화장실 세면대에 치실을 가득 쌓아두었지만 쓰지 않은 듯했다. 하긴 엄마나 나 역시 어릴 때 치실을 써본 기억이 없으니 할머니가 된 엄마에게는 얼마나 낯선 생활용품일까. 치실을 반드시 해야 하는 부모와 치실을 전혀 모르는 할머니가 공존하는 울타리에서 생활하는 게 또 얼마나 귀한 경험일까 싶었다. 물론 치아 건강과 관련해서는 이견이 없겠지만 말이다.




엄마한테 지성이가 한 말을 고스란히 전달하자, 드라마를 보고 있던 엄마가 폭소를 터트린다.

“얘, 서진이는 혼자서 잘도 하더라.”

일주일 동안 지냈던 짐들을 챙겨 차에 올라탔다. 쓸쓸한 할머니는 차창 밖으로 보송보송한 손주들의 볼을 연신 매만졌다. “우리 서진이 지성이! 할머니가 많이 많이 사랑해!”

나는 크면서 엄마에게 직접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손자를 향해 쏟아지는 할머니의 사랑 표현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나도 이때다 싶어 엄마를 버럭 안고 “엄마, 나도 사랑해!”라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내 딸 안아본 게 얼마만이냐”하며 함박웃음이다. 지성이와 서진이가 싱글벙글하며 엄마와 나를 봤다. “엄마,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하자, 지성이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이 됐다.

“나 보다 더 많이 사랑해?”

“지성이를 제일 사랑하지”하며 지성이를 꽈악 안아줬다.

남편이 트렁크에 짐을 싣는데, 지성이가 또 뜬금없이 아빠에게 물었다.

“근데, 아빠도 할머니 사랑해?”

할머니를 향해서도 물었다.

“할머니, 우리 아빠도 사랑해?”

어른들에게는 어색한 순간이었지만, 남편과 엄마는 어색한 정적이 머물 새 없이 “그럼, 사랑하지

!”라고 대답해줬다.

지성이는 차에 타서 창문 너머로 할머니에게 또 말했다. “할머니, 영상통화 자주 하자!”하고 약속한다.




늦은 밤 집에 도착한 지성이는 난데없이 종이접기 책을 펼쳤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까마귀와 방패만 접고 자겠노라고 허락을 구했다. 밤 10시 15분이 넘어가면서, 나는 급격히 피곤해졌고 짜증이 밀려왔다.

“지성아, 시계 좀 봐봐. 몇 시야? 정말 늦은 시간이야. 9시에는 자야 하는데.”

짜증을 애써 뒤로 숨기고, 찬찬히 지성이의 손놀림을 지켜봤다. 색종이 끝을 매만지는 손이 야무지다.

“알겠어, 엄마. 나 방패까지만 접고 바로 잘게.”

나에게는 새삼 어떤 여유가 생겼는지 늦은 시간이라고 말해주면서도 아이가 방배를 접는 모습을 지켜보며 감탄했다.

“와, 우리 지성이 정말 잘 접네!”

“엄마, 고마워.”

뜬금없는 고맙다는 표현에 뭐가 고맙냐고 되묻자, “잘 접는다고 말해줘서 고마워”한다.

내가 이 아이의 기분과 상태, 욕구를 존중해주면서 넘어가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해 같이 설명해준 덕이었을까. 새삼 지성이의 말이 어른스럽게 느껴졌고, 지성이가 한 인격체로서 충분히 존중받았다고 느낄 때 나오는 말이 이런 건가 싶었다.

어김없이 월요일 아침이 다가왔다. 지성이가 세수를 하며 물었다.

“엄마, 존댓말을 쓰는 건 감사한 일이야?”

“감사한 일이라기보다는 존댓말을 쓰는 건 예의를 갖춰서 말하는 거지.”

“나도 원래 엄마한테 존댓말 써야 되지?”

“응, 그렇지!”

“그럼 엄마, 나 이제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로 하나씩 시작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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