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휘자가 필요한가요?

우리와 맞는 Product Owner

by 류동석

가끔 제품 총괄 책임자의 직함의 무게를 가만히 곱씹어 보곤 합니다. 제품의 방향을 정하고, 사업의 성과를 고민해야 하며, 일정을 조율하며, 수많은 의견과 갈등 사이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내는 리더. 하지만 '오너'라는 단어가 주는 단단함 때문일까요? 우리는 종종 제품 총괄 책임자(Product Owner, PO, 사업부장, 등 여러가지로 불리는) 역할을 정해진 원칙에 맞추어 완벽하게 수행해야 하는 일종의 '정답지'처럼 여기곤 합니다.


제품은 하나의 선율이고, 조직은 합주단입니다


저는 PO의 일을 생각할 때면 무대 위 지휘자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가 하나의 음악이라면, 그 음악을 실제로 연주해내는 동료들은 각자의 악기를 든 단원들이겠지요.


음악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홀로 읊조리는 독창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화음에 매료됩니다. 혼자라면 그저 내 마음 가는 대로 소리를 내면 그만이지만, 두 명 이상이 모여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려 할 때는 누군가 그 호흡을 가다듬어 주어야 합니다. 연주하려는 곡의 성격이 무엇인지, 지금 우리의 상황에 어떤 소리가 어울릴지를 살피는 사람. 그 지휘자의 손끝에서 비로소 '제품'이라는 음악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휘자의 성향이 스며든 음악


흥미로운 점은, 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하더라도 지휘자가 누구냐에 따라 음악의 색채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지휘자는 가볍고 경쾌한 붓터치 같은 연주를 이끌어내고, 어떤 이는 깊고 묵직한 울림에 집중합니다. 지휘자의 철학에 따라 특정 악기의 소리를 키우기도 하고, 때로는 부족한 파트를 다독이며 전체의 균형을 맞추기도 하죠.


제품도 이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똑같은 기능의 서비스라도 어떤 PO의 손길을 거치느냐에 따라 그 결이 달라집니다. 기술의 정교함을 사랑하는 이의 제품은 견고한 신뢰를 주고, 사용자 경험(UX)의 미세한 떨림을 중시하는 이의 제품은 다정한 감동을 줍니다. 결국 지휘자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가 그 제품의 '인상'을 결정짓는 셈입니다.


우리만의 호흡을 찾는 일


요즘 우리 주변에는 실리콘밸리에서 건너온 PO의 정의나 성공 방정식이 참 많습니다. 마치 그곳의 방식이 절대적인 교향곡의 악보이고, 지휘의 방식인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가끔은 궁금해집니다. 그들의 옷을 그대로 입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도 편안한 일일까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의 환경,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성향,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변화하는 마음을 살피는 것이 먼저일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그저 편리하고 기능에 충실한 제품이면 충분했지만, 이제 사람들은 '나만을 위한 편안함' 혹은 '조금 복잡하더라도 나를 이해해주는 특별함'을 원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리콘밸리의 정석을 완벽히 복제하는 PO가 아니라, 우리만의 고유한 리듬을 찾아내는 지휘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만의 지휘봉을 든다는 것


결국 PO의 일이란, 정해진 틀 안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색깔과 우리 조직의 하모니를 조화롭게 엮어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은지, 우리 팀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그 시간 속에 '한국적인 PO'의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려한 기교보다 중요한 건, 지금 이 무대 위에서 우리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는 마음일 테니까요. 오늘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지휘봉을 잡고 계신가요?


with 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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