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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호 Jul 16. 2020

자기다움의 과정, 생각하고 멈추어 또 생각하고

<피로사회>를 읽고

대학원시기부터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했던 책, <피로사회>를 이제사 읽는다.


 ‘피로사회하면 단순히 부정적 뉘앙스로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피로를  가지 종류로 나누어 소개힌다. 저자는 피로사회에서 피로사회로 변해야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를 조금  풀어 설명하자면 오늘날 사회가 앓고 있는 ‘탈진의 피로사회에서 ‘무위의 피로사회로 변해야  필요성을 역설한다.   피로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피로는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인가?  어떤 피로는 지양하고 어떤피로는 지향해야한다고 주장하는지 자연스레 궁금증이 생긴다.

저자는 21세기의 시작을 병리학적으로 볼때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한다.(21p) 현대인의 감기라고 하는 ‘우울증 대표적인 사례로   있겠다.  저자는 이런 병리적 증상을 해석할  면역학적 관점을 주요한 도구로 사용한다. 면역은 낯선 것에 대한 방어와 공격이 기본이다.  낯설고 이질적인 것을 부정하고, 부정하는 경험 속에서 나름의 면역체계를 구성한다. 이는 인간의 자아도 마찬가지이다. 자아에게 타인은  낯선 존재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불확실한 타인을 ‘지옥이라고 말하기도 하지 않는가? 타인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과정이 있다. 타인을 수용하기 이전에, 나를 부정하며 다가오는 대상을 부정해야한다. 그리고  부정 속에서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유지해야한다. 내삶에 타인을 수용하는 과정은 관계속에서 자기다움의 경계와 균형을 지키는 줄타기의 과정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관계의 면역체계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변증법을 상실했다. 우리는 방대한 네트워크와 인프라속에서 수많은 낯선 것을 경험없이 수용하며  강요당하고 있다. 부정의 씨름은 사라지고 다양한 자아상이 강요되는 사회에 노출되어 있다. ‘자기다움 대해 고민할 틈도 없이, 우리가 수용하고 긍정해야할 것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경험을 대신 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의 방송과 사진속에서 수용과 긍정의 경계선은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이루고 성취하고 누려야할 것들은 넘쳐난다. 한병철은 긍정성의 과잉이 ‘이질성의 실종 불러일으켰다고 한다.(17p) 실제로 그렇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스펙, 삶의 규모와 방식을 추구한다. 그러면서 동경하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자연스레 수많은 성과를 요구받는다.  ‘성과사회 가는 것이다. 우리가 수용한 멋진 삶을 위해 수많은 성과를 이루어내야하는 실정이다. 취업과정, 취업이후, 삶의 통과의례....어느 하나 성과없이 자기를 주장할  없다. 무엇인가 이루어야 ‘ 주장할  있다. 현대인은 현실에 안주하면 안되고  자기를 넘어서야한다는 압박속에 자신을 가두어두고 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수많은 것들을 성취해서 자랑하는 자기의 모습이 ‘만들어진 라는 사실을  망각해버렸다. 현대인은 뒤늦게 깨닫는다. 오히려 자신은 ‘자기다움 잃어렸다는 사실을..... 그래서 한병철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부응하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리고 만다.”(26p)

빈틈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고, 허비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든 노력이 성과를 향한 압박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압박은 우울증을 초래한다. 왜냐하면 자아는 모든 것을 감당할  없을만큼 탈진했고, 소진했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앓는 자아는 전쟁상태이다. 모든 것을   있을  알았던 자아가 ‘불가능함 마주해야하기 때문이다. ‘부정성 면역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너무 괴롭고 죽고싶은 경험일 것이다. 결국 타인과의 관계, 자기와의 관계에서 면역체계가 없는 자아는 자기 착취와 학대를 하기 시작한다.  매체에 의해 ‘만들어진 자아상 동일해지고 싶은 자아 때문에 자아는 성과의 노예가 되고, 이내 과열되어 타버리게 된다.(22p)

현대인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욕망이 복잡하게 얽힌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으면 생존할  없다. 그들의 시선은  산만하고, 산만한 시선은  피로하다. 결과적으로 자아는 탈진하고 ‘피로한 사회 경험한다. 그래서 저자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추라 권한다. 그리고 심심한 것을 느끼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인은 생산성에 중독되어 있기에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되면 이내 우울하고 조급해진다. 현대인이 회복해야할 것은 ‘깊은 심심함이다.  현대인들은 심심함이 다가오면 시간의 공백을 다급하게 습관적인 처사들로 채운다. 하지만 심심함을 수용하는 사람은 습관적인 처사를 넘어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을 생각할  있게 된다. , 깊은 심심함은 수많은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관조적 삶으로 이어진다. 잠시 멈추어서 정신을 이완시키고 다시 움직일 힘을 얻는다. 힘을 얻은 정신은 이제 주어진 현실을 흐리멍텅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주어진 현실과 현상을 고스란히 긍정하고 수용하기보다, 부정하고 저항하며 ‘주체적인 보기 한다. 이는  ‘사색하는 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행동의 주체는 오직 잠시 멈춘다는 부정적 계기를 매개로 해서 단순한 활동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우연의 공간전체를 가로질러   있다.”(49p)

 책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현대인은 엄청난 인프라 속에서 다양한 자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이에 무분별하게 수용과 긍정으로 반응한다. 빅데이터  이끌려 소비패턴이 만들어지는 현대인의 단면만 보아도 답이 나온다. 자아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타인의 삶에 노출되어 있고, 매력적인 삶은 수많은 성과의 과제로 이어진다. 그리고 하나의 과제를 성취할   과정 속에서   수많은 과제가 더불어 요구된다. 현대인은 과잉성과에 갇혀있고 사회가 만들어놓은 ‘성공의  향해 달려간다. 모두가 같은 꿈을 꾸고 자기를 착취하며 학대하지만, 어느 순간 모두가  꿈에 닿을  없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대부분의 자아는 실패와 좌절감을 마주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한다. 그런데 현대인의 자아는 자기가 부정당한다는 사실을 감당하지 못한다. 현대인들은 타인과 간접경험 속에서 관계했기에, 직접관계 안에서 키워야할 부정성의 면역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절감과 부정성에 휩싸여 관계를 일그러진 시선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고립의 동굴로 들어가게 된다.

저자는 탈진하여 피로한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피로를 가르쳐주고자 한다. 저자는 나를 부정해오는 타자를 부정하는 치열한 과정에서 자아의 면역체계를 구축하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정신은 몹시 많은 힘을 쏟고 피로하게 된다. 그리고 이내 자아는 멈춤의 시간을 가진다.수용과 긍정에 익숙한 자아에게 멈춤은 조급함을 일으키지만, 저항과 부정에게 익숙한 자아에게 ‘멈춤’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저항이기에 익숙한 시간이되며, 쉼이 된다. 생산을, 과잉성과를 그만둠으로 목적지향적 삶에서 해방되는 구원의 날이 된다. 피로는 결국 새로운 창조를 위한 쉼의 통로가 된다. 결과적으로 현대인에게 ‘타자의 이질성’과 ‘멈춤의 시간’을 회복하라는 과제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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