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나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호 Sep 07. 2020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마음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고

민주주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면서 그것은 ‘이미 내가 당연한 권리로 누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민주시민으로서 ‘다수결의 원칙’을 고수해야한다고 배워왔던, 반장선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절대다수의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원칙이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 적합한가?’, ‘소수자의 의견과 권리는 어떻게 보완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 번이라도 던져보지 못한 채, 민주주의는 나에게 당연한 것이었고, 그래서 주체적으로 나의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실제로 그랬다. 정치는 나에게 꽤 거리가 먼 단어였다. 선거공보물을 주의깊게 살펴본다거나 정치인들의 토론회를 경청하는 것은 지난 나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우리 사회에는 정치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밀접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사건들이 있었다. (물론 이를 놓고, 이데올로기와 프레임싸움을 알지 못한다고 훈수두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 영화에나 나올법한 비선실세를 마주한 국민 등 민주주의가 권력에 의해 능욕당하는 부조리한 사회를 마주한 것이다. 더 이상 민주주의가 냉전시대나 독재시기에만 사수해야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체감하게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시대 정치적 대응과 조치가 서민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지 하루하루 체감하고 있다. 정부의 방역과 행정명령, 재난지원금 등 모든 정치적인 영역이 일상의 영역과 밀접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자연스레 정치와 민주주의를 향해 나의 생각과 마음이 향한다. 그리고 정치는 다른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자아 속에, ‘건강한 시민의식과 사회’에 대한 질문들이 생겨나고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성가, 파커 파머가 정치학에 대한 책을 저술했다. 아내가 함께 읽자고 권해서 책의 표지를 보았는데, 저자가 파커 파머라는 이유만으로 바로 구입했다. 역서의 제목은 <비통한 자를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이다. 제목 그대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원제인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를 보아도 민주주의의 마음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묻어난다.  

“마음의 눈으로 정치를 바라보면 우리는 그것을 전진하고 대항하는 체스 게임, 권력을 잡기 위한 야바위 노름, 서로 비난만 해대는 두더지 잡기 게임으로 보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제대로 이해한다면 정치는 절대로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오래되고 고귀한 인간적인 노력이다.(41)” 저자는 정치로 권력놀음을 하는 자세를 비판하며, 정치에 마음의 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마음의 눈이란 민주주의와 모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회의 부조리들에 대해 ‘비통함’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의 눈으로 사회와 일상을 보는 것으로부터 정치는 시작되는 것이다.

특별히 저자는 링컨을 예로 들며 많은 부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링컨은 죽는 날까지 그 괴롭힘과 싸웠는데, 그 어둠의 씨줄은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공공을 위해 봉사하고자 태어났다는 확신에 의해 그의 일생을 수놓았다. 자기 안에 있는 어둠과 빛을 동시에 끌어안고 통합하는 것으로써 삶을 보존해야 했던 링컨은 그 덕분에 미국이 연방으로서 유지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그만의 독특한 자질을 갖추게 되었다.(34-35)” 링컨은 노예제도를 비롯하여 부조리한 사회를 바라보고 그 어둠을 그의 마음에 깊이 품었다. 그리고 그는 병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비통함의 어둠이 결국 마음을 열어젖히고 세상 속에 빛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래서 파커파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마음의 연금술은 고통을 공동체로, 갈등을 창조의 에너지로 그리고 긴장을 공공선을 향한 출구로 바꿔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동안 무시되어온 민주주의의 인프라를 수리하고 유지함으로써 그 실험을 지속시킬 수 있다. 그 인프라의 두 가지 층위가 이 책의 주된 관심사다. 인간의 마음이 지닌 보이지 않는 역동 그리고 그 역동이 형성되는 가시적인 삶의 현장들이 그것이다.(43)” 마음은 고통을 새로운 공동체로 진일보하는 창조적인 힘으로 승화시킨다. 진실한 비통함은 마음에 균열을 일으키지만, 그 균열로부터 곧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터져 나온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향한 마음의 중요성과 더불어 ‘마음의 습관’을 훈련하길 권한다. 노예제도에서 해방되어 시민이 된 자들이 휴일마다 주일학교에 나와서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는 훈련을 늘 진행했다고 한다. 신분으로는 그들이 노예에서 시민이 되었지만,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아직 낯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음을 쏟으며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질서와 긴장 속에서 토의하고, 의사결정을 합의하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의 습관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앞서 말했듯이 나에게 민주주의는 당연한 나머지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낯설다.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며,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주장하며, 건강하게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이 굉장히 미숙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비통함을 가지고 순수하게 문제를 다루는 ‘마음의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점점 이 ‘비통함’에 공감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건강한 사회와 시민을 위해 정치는 보다 생활에 밀접해져야하고, 일상은 보다 정치에 마음을 두어야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식구(食口) 그리스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