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다섯 번째 발렌타인데이

by 두두

한국에서는 발렌타인데이에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로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남녀가 서로 주는 경우가 많고 주로 남자가 저녁식사를 사곤 합니다.


저와 저의 프랑스인 남자친구는 올해로 벌써 5년 차 예쁜 만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처음 몇 년간에는 꼭 레스토랑을 가야 할 것 같고, 꼭 꽃을 받아야 할 것 같고 그랬는데

오늘은 저희 둘 다 이준기, 문채원 배우가 나오는 작품 악의 꽃을 앞에 틀어놓고 초밥을 시켜 먹었습니다. 저는 어제 남자친구에게 프랑스 소시지 소시송 세개를 사주고 오늘은 저녁을 샀고, 남자친구는 저에게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줬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와 잠옷 입은 채로 편안하게 앉아서 초밥을 먹는데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답니다.


남자친구는 최근 2년 정도동안 한국 드라마에 빠져있어요.

저희는 드라마 보면서 깔깔대다 보면 시간이 훅 지나간 걸 느끼곤 해요.

우리 서로가 이제 더는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가 되었구나 싶습니다.

이렇게 같이 앉아서 밥을 먹고 드라마만 봐도 힐링입니다. 하루의 고됨이 다 씻겨 나가는 듯합니다.


집에 오는 길에 학생 기숙사를 거쳐왔습니다. 창밖에서 어떤 한 남학생이 혼자 작은 원룸의 부엌에서 저녁을 차리는걸 트램 안에서 보게 됐습니다. 왠지 모르게 그 학생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네요. 그 학생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을 찾길 기도하면서요.


발렌타인 데이는 두 사람이 서로가 서로에게 기적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줄 수 있는 그런 특별한 날이라고 믿어요.

그렇게 '네가 나의 기적이구나'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이 차가운 세상에 기댈 곳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인데 안타깝게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자주 잊고 사는구나 싶습니다.


저는 사실 불안감을 늘 달고 사는 사람인데 5년 내내 남자친구가 낮이든 밤이든 다 들어주고 늘 제가 멋진 사람이라는 걸 상기시켜 줍니다. 항상 똑같은 이슈로 속앓이를 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귀찮을 법도 한데 늘 시간을 들여 이렇게 사랑을 보여주고 또 보여줌에 고맙고 제가 복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매일이 발렌타인 데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오늘도 어제처럼 특별한 날이니까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을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배려가 가득 담긴 말을 건네고 눈을 마주치며 웃으며 살면 좋겠습니다.

집 밖을 나가지도 않은 오늘이 그 어떤 발렌타인데이보다 더 값지고 특별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