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혹은 옷방
오르한 파묵의 소설 <순수 박물관>의 주인공 케말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자 그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수집한다. 페티쉬적 열망에 가까운 그의 수집벽은 끝내‘박물관’을 건립하는 데 이른다. 그는 그녀와 사랑을 이룰 수 없었지만, 그녀와 관련된 사물을 수집하고 전시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이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님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녀의 귀걸이, 그녀와 함께 누웠던 침대, 그녀가 어릴 때 타던 세발자전거, 그녀가 입던 옷, 그녀가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 등 그녀의 부재를 견디기 위해 모아온 물품들은 점차 그녀에 대한 사랑을 영원한 시간 속에 간직하기 위한 일종의 증거(물)들이 된다. 그는 그녀의 이야기로 채워진 사물들로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남기고 증명하고 싶었다.
그는 그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은 시간이라는 개념 을 잊을 거라고, 그것으로 삶에서 가장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단지 ‘사적인 박물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관련된 옛날의 사물들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위안을 얻는 것 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삶의 고통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황금의 순간'이 담긴 사물들을 소유하는 것이다. 남겨진 물건이 이제 만나지 못하는 사람보다 그 순간의 기억과 색깔과 희열을 더 충실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사물이 내게 단지 어떤 기억을 떠올려 주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니다. 과거가 담긴 사물을 보고 만지는 동안 ‘시간 자체’의 사라짐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물은 소중한 것이다. 그 사물로 인해 주인공은 소거된 시간 속에서 사물이 간직한 시간과 감각과 감정과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사물에게 속한 고유한 시간을 마주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아내가 입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교복을 마주하는 일이 신비로운 이유는, 그때 이렇게 몸이 컸었나 하는 놀라움 때문만이 아니다. 그 순간 열여덟 살의 그녀 곁에 잠시 있을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어떤 유물이나 그림을 보기 위해 먼 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는 이유가 단지 원본을 본다는 만족감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가서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별이 반짝이는 밤>을 직접 보는 일은 1890년의 어느 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고흐를 직접 마주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캔버스에 새겨진 실제 물감의 움직임을 따라 우리의 시선이 이동할 때, 130년 전 고흐도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눈과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고흐의 시간과 내 시간은 이 그림을 앞에 두고 만난다. 그의 그림을 직접 본다는 건, 절대적인 시간 속에서 고흐의 말과 표정과 감정을 직접 마주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먼 곳까지 간다.
*안바다 신작 에세이,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9월 출간 전 일부 내용을 사전 연재합니다.
*다음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출간 알람 서비스입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07ZgYtLm3aKnQJUMzYSJwMYHQHM2oNBIDpoMlkYAosAeSsw/viewf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