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사람이 살아온 여정은 나이테처럼 얼굴에 새겨진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그가 살면서 받은 햇빛과 바람과 고통과 스트레스와 기쁨과 슬픔과 사랑의 총량이 들어선다. 감정과 그 감정이 표출된 표정에 따라 여러 근육과 주름은 특정한 방식으로 접히고 펴지고 일그러지고 뭉치고 늘어진다.‘잘’생기고‘못’생긴 것과 무관하게, 많이 웃은 사람은 웃는 얼굴이 될 것이고, 자주 짜증내고 화냈던 사람이 찡그린 얼굴을 가지는 것은 일종의 자연법칙 같은 일이다. ‘40대가 되면 자기 얼굴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흔한 말은 그리 틀린 표현이 아니다. 사람의 얼굴은 후천적으로 (의료 기술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삶이 흘러가고 변한다는 말처럼 얼굴도 흘러가고 변한다. 만약 누군가의‘삶’을 그린다면, 무엇을/어떻게 그리면 좋을까? ‘삶’을 그릴 수 있을까? ‘삶’이라는 것이 그릴 수 있는 대상이긴 할까? 긴, 혹은 짧은 삶의 여정 중 어느 특정 일화를 그리거나 특정 사건을 그릴 수야 있겠지만 그것으로 그 누군가의 삶을 그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삶’을 그려낸 최초의 화가가 있다. 자화상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 그는 화가로서 역사상 전례 없이 자신의 얼굴을 본격적으로 그렸고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렘브란트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40점 이상의 자화상을 그렸고 비슷한 숫자만큼 자화상 동판화를 제작했다. 그 자화상들은 수많은 복제본으로 제작되었고 원본처럼 유통되었다. 자화상을 그린 화가는 렘브란트 이전에도 있었지만, 일생에 걸쳐 이토록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그린 화가는 그 이전에 없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 그릴 때, 자신의 얼굴 말고 더 무엇이 필요했을까. 렘브란트에게 얼굴은 자신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구체적인 풍경이었다. 청년 렘브란트의 얼굴에서 청년기의 삶을, 중년 렘브란트의 얼굴에서 중장년기의 삶을, 노인 렘브란트의 얼굴에서 노년기의 삶까지, 한 인간이 거쳐온 삶의 풍경이 그 얼굴들에 고스란히 새겨 있다. 한 사람의 얼굴이 이토록 다채로울 수 있는 것은 그의 얼굴이 가진 특별함이나 관상학적 특징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평범한 자신의 얼굴에서 그가 관찰한 자신의 이야기가 그토록 다채로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예술적 자질과 자신감이 충만한 한 청년의 삶이, 부와 명예를 가진 근엄한 중년의 풍경이, 그리고 한때 누렸던 모든 명예와 부가 마법처럼 사라진, 이제 마른 나무껍질 같은 피부만 남은 한 노파의 쓸쓸한 삶의 풍경이 그의 ‘얼굴들’에 담겨 있다. 렘브란트에게 삶은 얼굴이었고 얼굴은 삶이었다.
*안바다 신작 에세이,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9월 출간 전 일부 내용을 사전 연재합니다.
*다음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출간 알람 서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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