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여검星天女劍 7화

( SF 무협환타지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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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지 문이 닫히는 소리는

언제나 하연의 심장을 한 박자 늦게 때렸다.

철망이 맞물리는 철컥 소리와 함께

공기가 달라졌다.

밖에서는 음악이 울리고,

아나운서가 이름을 외치고 있었지만

하연의 귀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상대는 한 체급 위에서 내려온 선수였다.

리치가 길고, 체력이 좋았다.

전적은 하연보다 조금 나았다.

조금.

하연은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기술이 아니라

여유에서 갈리는 차이라는 것도.

1라운드

종이 울리자

상대는 예상대로 거리를 벌렸다.

잽.

잽.

로 킥.

하연은 방어하며 앞으로 들어갔다.

케이지 중앙을 내주지 않기 위해

발을 조금 더 깊게 디뎠다.

왼손, 오른손, 태클 페인트.

상대의 호흡이 흔들리는 순간,

하연은 몸을 낮췄다.

태클.

그러나 상대는 준비되어 있었다.

스프롤, 팔꿈치.

턱이 울렸다.

시야가 잠깐 흰색으로 번졌지만

하연은 무너지지 않았다.

넘어지면 끝이다.

그 생각이

본능처럼 몸을 세웠다.

2라운드

호흡이 무거워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은 차분했다.

하연은 더 이상

점수 싸움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 경기는 판정으로 가면 진다.

그래서 들어갔다.

근거리에서

엘보, 니킥, 훅.

상대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 순간—

하연은 모든 걸 걸었다.

클린치,

무릎,

연속 타격.

관중석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상대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연의 팔을 감아 잡았다.

그대로

테이크다운.

매트에 등이 닿는 순간,

하연의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갔다.

그라운드

압박.

상대의 체중이

가슴 위에 얹혔다.

숨이 막혔다.

하연은 팔을 밀어내고

가드를 잡았다.

탈출.

하지만 상대는

서두르지 않았다.

엘보가 떨어졌다.

하나.

둘.

시야 가장자리가

어두워졌다.

하연은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멈추면—

머릿속에

아이의 얼굴이 스쳤다.

작은 손.

잠든 얼굴.

하연은 팔을 뻗었다.

목을 노렸다.

암 인 시도.

관중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상대는 고개를 빼고

자세를 정리했다.

마지막 30초

심판이 외쳤다.

“30초!”

하연의 팔은

이미 무거웠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건 경기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하연은 몸을 비틀어 일어났다.

무릎이 떨렸다.

서로 마주한 순간—

상대의 눈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 차이를

하연은 정확히 느꼈다.

종.

판정

하연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심판이 손을 들었다.

상대.

관중의 박수.

카메라의 플래시.

하연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저 케이지를 나왔다.

탈의실

벤치에 앉자

갑자기 몸이 떨렸다.

아픈 곳은 많았지만

가장 아픈 곳은

가슴 안쪽이었다.

하연은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다.

다음 경기는 있을까.




하연이 처음 검을 잡았던 곳은

가현계 아래도, 수면계 아래도 아니었다.

인간계의 체육관이었다.

하연은 탁월한 피지컬과 정신력과 체력이 UFC선수로 안성맞춤이였다.

여자로 맨주먹으로 돈을 벌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UFC선수가 되는 것 밖에 없다고 하연은 생각했다.

형광등이 희미하게 깜빡이는 낡은 체육관 한가운데,

땀과 피, 그리고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공간에서

하연은 글러브를 끼고 서 있었다.

케이지 밖 관중석은 비어 있었다.

아니,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

사실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라스트 라운드.”

심판의 목소리가 울렸다.

하연은 숨을 들이마셨다.

폐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것이 가슴을 눌렀다.

오늘 이기지 못하면—

그 생각을 끝내지 않았다.

끝내는 순간, 버틸 수 없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경기는 졌다.

판정이었다.

항상 그랬다.

기술도, 체력도 뒤지지 않았지만

하연은 언제나 마지막에서 밀렸다.

상대는 돌아설 수 있었고,

하연은 돌아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탈의실에서 샤워기를 틀자

따뜻한 물이 아니라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하연은 고개를 숙인 채 물을 맞았다.

머릿속에는

케이지도, 상대도 없었다.

오직—

집에 있는 아이의 얼굴뿐이었다.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는 심장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낳기전에 산부인과 의사가 심장이 선천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낙태를 하자고 권유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하연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오랜동안 홀로 살아온 그녀에게 그 아이만이 이 세상에서 피를 나눈 유일한 혈육이라고 생각하고 이때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헤쳐왔던 고난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낳아서 잘 키우리라고 결심했을 뿐이였다.


아이는 울 때보다

조용히 잠들어 있을 때가 더 무서웠다.

숨을 쉬고 있는지

수많은 밤과 낮을 두려움으로 아이를 지켜보았다.


하연은

몇 번이고 수술비를 대야 했다.

양육비는 애당초 없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다.

UFC 계약금은

병원비와 월세로 사라졌다.

경기 수당은

기저귀와 분유로 흩어졌다.

하연은 계산기를 두드리다

어느 순간부터 숫자를 세는 걸 포기했다.


밤이 오면

하연은 잠들 수 없었다.

아이 옆에 누운 채

천장을 보며

눈만 감았다.

그때,

스마트 폰으로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수면계 접속형 검객 시뮬레이션]

“잠든 동안 싸우세요.”

“깨어나면 수당이 지급됩니다.”

처음엔 웃어넘겼다.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나 다음 문장이

하연을 붙잡았다.

“사망 위험 없음.”

“통증 최소화.”

“고숙련자 우대.”

검객.

그 단어가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그날 밤,

하연은 아이 옆에 누워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뒤—

수면계의

‘검객 게임’ 계약서를

다시 열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하연은 컴퓨터 앞에 앉아 온라인로 검객게임속의 검객이 되기로 결심했다.


계약서는 길었다.

그러나 하연은 끝까지 읽지 않았다.

대신 아이를 한 번 더 안아 보았다.

“조금만 참아.”

아이에게 하는 말이었는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는지는

하연도 알 수 없었다.

수면 캡슐 안에서

하연은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번엔…

싸우는 이유를 잊지 말자.


수면계에서 검을 쥐었을 때

하연은 알았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고.

검의 무게가

너무 현실적이었고,

공기의 냄새가

너무 선명했다.

그리고—

별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하연이 다시는

잠을 편히 자지 못하게 된 것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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