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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Jan 15. 2021

[초보 고딩엄마의 분리불안 극뽁일기 44]

#수시라는 괴물

미리읽기:

[초보 고딩엄마의 분리불안 극뽁일기 33]

#또 다른 선택과 시작 <고군분투! 예고에서 인문대 가기>

https://brunch.co.kr/@brunchxeg/254



2019년 9월 6일


수시 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내신이 좋은 편이라 학교장 추천을 세 개나 받았지만, 분명 기대를 할 상황은 아니었다. 일반고 아이들과 생기부에서 일단 차이가 크고, 녀석은 영화전공이 아닌 사회대학 쪽으로 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선배들 중에 학교장 추천으로 동국대에 진학한 녀석들이 있었지만, 모두 영화전공으로 지원했던 경우였다. 하지만 일반 학생부종합은 더 가능성이 없었으므로 이것이 녀석에겐 최선의 선택이었다.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국민대와 여대에 교과전형을 추천하셨지만, 녀석은 끝내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어렵게 수능에 도전한 만큼 정시까지 가보겠다는 의지였다.


녀석의 생기부와 자소서를 훑어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예고 3년. 열심히도 살았다.

1년에 두 번씩 워크숍과 영화제만 치러도 빡빡한 스케줄인데 4번의 시험과 쏟아지는 과제들. 방송반이라 체육대회와 축제 진행까지. 정말 버라이어티한 3년이었다. 녀석들과 공부도 하고, 영화도 찍고, 여행도 다니면서 찍사엄마로 덩달아 바쁘게 지냈던 나에게도 이 시간들이 얼마나 그리울지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진다.  특히 관객이 아닌 감독의 부모로 참석했던 여러 번의 영화제들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적인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녀석이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서류로 증명해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하지만 원서 마감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잠깐의 감정 사치와 추억팔이는 무참히 깨지고 우린 다시 입시지옥으로 빠져들었다.  


대학입시에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전형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학교마다 원하는 인재형이 다르고 한 학교 내에서도 여러 가지 전형들이 있는데 그중 자신에게 잘 맞는 전형을 골라 지원해야 한다.  한 학교에 두 가지 전형으로 지원을 할 수도 있고, 4년제 대학 6개 원서 외에 전문대학교는 제한 없이 지원할 수가 있다. 한예종과 서울예대도 추가로 지원할 수 있다. 녀석의 친구들 중에는 수시에서 10개 이상의 원서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아, 진짜 입시는 정보싸움이구나. 나는 부모로서 한계를 느꼈다. 처음 보는 전형들도 꽤 있었고, 미리 알았다면 준비할 수 있었을 법한 전형들도 눈에 띄었다. 왜 비싼 컨설팅을 받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모두가 원하는 곳에 합격을 하는 것도 아닌데. 원서비도 너무 비싸고,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부담이 될 것이 아닌가. 자소서 첨삭은 대학 하나에 3,40만원부터 많게는 200만원짜리도 있다. 논술전형은 정보를 얻기 쉽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다. 입이 떡 벌어지는 논술전형 경쟁률을 보면서도 아이들은 수능에 100%를 거는 것이 불안하기 때문에 너도 나도 지원을 하게 된다. 입시라는 단어가 붙으면 무조건 높은 비용이 허용되고 부모들은 부담스럽지만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마지막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니 실기전형이 대부분인 예체능 입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준비하는 내내 뭔가 상당히 불합리하다는 생각과 그래서 싹 다 뜯어고쳐야 한다는 답답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모든 아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런 고민들과 함께 부모의 무능함을 실감하는 시간만으로도

고3 엄마는 극한직업임에 틀림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원서를 하나씩 등록하는데, 결제와 동시에 수정이 불가하다. 취소도 불가하다. 그렇게 신중을 기해 접수를 했는데도 녀석은 결국 실수를 저질렀다. 경희대는 비교적 경쟁률이 낮은 호텔관광학부에 문화관광콘텐츠학과를 지원하기로 결정을 해놓고 언로 정보학과를  클릭한 것이다. 이미 원서비는 출금되었고, 수정 불가. 녀석과 나는 동시에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이런 순간에도 실수를 할 수 있다니, 참으로 녀석답다.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고 우리에겐 기다림만 남았다.


<녀석의 최종 수시 원서>

건국대ㅡ학교추천ㅡ미디어커뮤니케이션ㅡ면접X
성균관대ㅡ일반학종ㅡ영상ㅡ면접X
고려대ㅡ일반학종(최저 4합6)ㅡ언론정보ㅡ면접
동국대ㅡ두드림ㅡ영화연출ㅡ면접X
                 학교추천ㅡ미디어커뮤니케이션ㅡ면접X
경희대ㅡ고교연계ㅡ언론정보ㅡ면접X



참으로 화려하다. 저중에 제발 한 곳만! 문을 닫고 들어가도 하늘에 감사할 일이었다. 몰라서 용감하다는 말처럼 녀석은 나름 담대하고 당당하게 소신!?있는 극상향지원 원서접수를 마쳤다. 마음을 비우니 웃음이 나왔다. 바라는 것은 이제 행운밖에 없었다. 물론 실패를 각오하고 얻어 낸 용기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녀석은 앞으로 다가올 험난한 시간들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 같다.





결과는 처참했다. 예비번호 한 번을 받아보지 못한 채 쓰라린 6번의 좌절을 고스란히 겪었다. 말로는 기대 안한다 하면서도 수험번호를 입력할 때마다 손가락이 떨렸고, 단호하고 냉정한 메세지에 가슴은 산산히 부서졌다. 그래도 녀석은 울지 않았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외롭게 선택한 부담감으로 녀석에겐 어쩌면 더 절실했을지도 모르는데. 꾹꾹 눌러 참는 녀석이 대견하고 안쓰러웠다. 영화전공을 준비했던 친구들의 합격소식이 하나 둘 들려올 때마다 축하해 주면서도 가슴이 저릿했다. 엄마인 내가 이런데 본인 속은 오죽했을까.


녀석은 수시 이후 아무도 공부를 하지 않는 학교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야 했다. 다행히 함께 수능을 준비하는 동기들이 몇 명 있었지만, 최저를 맞추기 위해서 이거나 정시 실기전형 준비를 하는 터라 전과목 공부를 하는 것은 녀석뿐이었다.


늦은 밤,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스터디 카페에서 종일 공부를 하다가 집에 가는 길이었다.


"엄마, 나 오늘  아무하고도 말을 못 했어."

"왜?"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 매일 인강쌤이랑만 얼굴 보는데 뭐."

"에구, 답답하면 엄마한테 전화해."

"응. 외롭다 진짜."


왜 아닐까. 녀석은 3월에 수능 공부를 시작했지만, 학원도 가지 않고 혼자 공부를 했다. 9월 모의고사를 보고 나서 두 달만 영어학원을 가겠다고 해서 쓰리제이 에듀에 등록을 해 주었다. 단 하루를 위한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니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 테고, 바짝바짝 날짜가 다가오는 압박감에 밤마다 불안하고 힘들겠지. 그래도 전화 끝에 들려오는 녀석의 웃음소리에 안심이 되었다. 밥 먹을 때마다 잠잘 때마다 옆에 없는 엄마 생각이 나겠지.


혼자라는 것이 공부보다 힘들다는 녀석.

이제 조금만 견디면 되니까 힘내. 엄마가 미안해.

녀석의 D-day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글ㆍko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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