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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Dec 09. 2022

[초보 고딩엄마의 분리불안 극뽁일기 56]

정시 지원

[2019년 12월 26일]

드디어 정시 원서를 쓰는 기간이다


녀석은 썩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표에 풀이 죽어 있었다

늦게 시작한 수능 공부를 혼자서 준비했으니

예상을 했었지만

갈 수 있는 대학들을 찾아보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과전형으로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던

국민대학교도 정시 성적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녀석은 잠깐 혼란스러워했지만

다행히 곧 마음을 추슬렀다


"엄마, 나 진짜 재수해도 돼?"

"그러고 싶어?"

"응, 근데 미안해서 그러지."

"미안할 게 뭐 있어, 니 마음이 중요한 건데. 그래도 원서는 쓰자."

"수시 원서비도 많이 들었는데 정시도 떨어지면..."

"그런 건 걱정하지 말구. 그래도 뭐든 해보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나을걸?"

"응..."


예상 합격률을 알려주는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녀석의 성적을 입력한 뒤

꼼꼼하게 대학들을 검색해 보았다


언론정보나 미디어 쪽은 같은 학교에서도

경쟁률이 높고 정원이 적다 보니

거의 빨간불이었다


그래도 전공을 우선적으로 본다면

충남대 언론정보는 파란불


그런데 녀석의 표정이 영 어두웠다

자꾸만 욕심이 나는 모양이었다


이것저것 제안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럼 떨어질 각오는 이미 되어 있으니까

이번에도 소신지원해봐."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선택한 것은

가군: 세종대-영화학과

나군: 경희대-문화관광콘텐츠

다군: 홍대-자율전공

서울예대: 디지털아트-비실기 수능전형


전부 인문계를 쓰기엔 성적이 모자라고

영화전공은 가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그래도 3년동안 했던 공부니까 

3개 중에 하나만 써보기로 했다

세종대를 제외하고는 수능 100% 전형이기 때문에

원서만 내면 되는데

세종대는 실기가 포함된 전형이었다


예고 영화전공 친구들이나 학원을 통해

1년 이상 영화학과 실기전형을 준비해온 친구들이

높은 경쟁률로 지원할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녀석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주!!!

나는 예전에 검색해 두었던 실기학원 한 곳에 연락을 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현실적으로 3주 동안 준비하는 것이 가능하겠는지 물었다

물론, 학원들이야 절대 안 된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원장의 말보다 녀석의 가능성을 믿기로 했다


수능 두 과목 국어와 영어 성적과 실기, 그리고 면접

주 3회 글쓰기와 면접 준비 수업을 잡고

녀석은 잠시 또 자신의 미래를 건 시간에 집중했다





[2019년 1월 4일]

세종대 영화학과 실기 시험은 

이틀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첫날은 주제와 조건에 맞춰서 장면 쓰기

둘째 날은 첫날 쓴 글에 기초한 면접


다행히 녀석은 외가가 서울이라

큰 걱정이 없었지만

문득 거리가 먼 지역에 사는 수험생들은

숙박까지 해야 하니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문장은

<탈북한 여가수가 서바이벌 노래자랑에서 2등을 했다>


녀석은 교수들이 고심해서 낸

대학 입시 문제 수준이 영 별로라며

툴툴거렸다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써낸 것들을

엄마 앞에서 풀어놓는 것이

짧은 시간 준비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다음날 있는 면접이었다

정시에서 면접은 계획에 없었던 터라

녀석은 수능 시험이 끝나자마자

소원이던 탈색을 해버렸다


한 번의 면접을 위해서 다시 검은 머리로 덮기엔

너무 아까워서

아침 일찍 진한 갈색 스프레이로

감춰보려고 했는데

머리가 길어서

생각만큼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머리때문에 진을 다 빼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가까이서 보면 티가 많이 났지만

면접을 그렇게 근거리에서 보진 않을 거라 믿으며

녀석은 상기된 얼굴로 면접장에 들어갔다


전날 써낸 장면에서는 

스스로 부족했다고 생각되는 점들만 간단히 묻고

영상에 관한 다른 질문들로 시간을 채웠다고 했다


3주간 하얗게 불태웠던 세종대 영화과 입시는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2019년 1월 4일 엄마의 일기]


수험생 엄마를 극한직업이라 칭하는 이유는

아마도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 때문일 것이다


자식의 실패와 좌절을 지켜봐야 하는 무력감과 무능감,

20년 전 나의 입시에서 느꼈던 그런 감정들과는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 아니었다 


부모라 해도 대신해줄 수 없는 영역이 점점 많아지는 건

녀석이 성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뿌연 하늘 사이로 해가 비춘다

이렇게 지켜보며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엄마지만

어떤 순간에도 너와 함께 할게

힘내라 내 아가

다 잘될 거야



글 . ko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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