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을 당했다. 그런데...
청소일을 시작하면서 위험한 시간이 생겼다. 집에서 시티로 가는 버스를 내린 직후. 픽업하러 온 팀원이 없으면 그 시간은 무방비가 된다. 어디 갈 곳도 없고 픽업하기로 한 장소를 빙빙 도는 수 밖에. 평일 저녁에는 사람이 없어 한산하다. 하지만 오늘 같은 주말에는 사람들이 미어터진다. 시티 내 펍들은 사람들이 가득이다. 걸어다니는 사람들도 술에 취해있기 다반사.
오늘도 픽업하러 올 친구가 좀 늦는다. 어제에 이어 20분 지각. 그 친구만 하염없이 기다린다. 윈야드 버스정류장 앞에는 '뱅크오브차이나'가 있다. 픽업은 그 골목에서 이뤄진다. 매번 하염없이 걸음을 옮기며 운동아닌 운동을 했지만 오늘만큼은 바로 맞은 편 펍을 슬쩍 관찰했다. 그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How are you?"
오지인들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건네거나 안부를 묻는다. 당연히 그런 것인줄 알고 나도 인사를 하고 다시 펍을 보려던 찰나 손목이 잡혔다. 여자 4명이었다. 그들은 내 손목을 잡더니 안경을 벗기려고 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뭐냐 이건?'
그들에게 휘둘릴만큼 허약하진 않았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뭐라 영어로 말하지만 너무 빠르다. 일부러 그러는 듯 하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당황스럽다.
'촬영인가.'
반도의 저널리스트 지망생은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1인 미디어의 시대에 카메라를 두려워하면 20대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미소를 날리며 포즈를 취한다. 당황한건 그들. 표정이 '이 자식은 뭐야?'다. 그때 내 품으로 한 여자가 들어온다. 사진을 찍자며 카메라를 들이민다.
"오케이."
환한 미소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어깨에 손을 올리라는 듯 품 안으로 들어오지만 손을 위로 올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들이 투덜거리더니 이내 이동한다.
"칭킨 맨, 칭킨 몽키"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 곧 이어 픽업할 친구가 온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이 얘길 했다. 그도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 우리는 웃고 떠든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뜻이 인종차별이란 걸 2번째 일터에서 알게 됐다. 호주에서 3년째 살고 있는 슈퍼바이저 덕택에.
"그거 동양인 비하야. 중국인들 비하하는 거라고."
아뿔싸. 소름이 끼쳤다. 그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지 모르지만 자칫 린치에 몰릴 뻔했다. 호주에 오면 레디즘을 조심하라더니 참... 레디즘은 이번이 2번째다. 지난 번 레디즘은 굉장히 질 나빠 보이는 백인 남성 2명의 "옐로몽키."란 발언이었다.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내심 '뭐지?' 싶었다. 아무래도 호주에서 오지인들과의 다툼은 이방인인 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최대한 피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넘나 당황스러운 경우. 레디즘을 하려다가 된통 역관광당한거랄까. 뭐... 뱅크오브차이나 앞에 있었으니 그런건가.
"무술하는 척 해봐. 여기 애들 동양인들은 무술 잘 하는줄 알아."
우스개소리로 넘긴다. 그래도 무섭다. 그들이 남자들이었고 물리적으로 충돌을 했다면 어땠을까. 추방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 비록 중국이 철광석을 사주지 않으면 경제력도 없는 호주지만 몇몇의 '백인'으로서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 자부심이 레디즘으로 표출되는거라 본다. 물론 거기에는 경제적인 요인도 작용하지만. 이번처럼 경제적으로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은 백인들이 그러는 건 처음이다.
무탈한 나에 감사하며 다시 일을 한다. 내일부터는 잠시 새로운 동료와 일을 한다고 한다. 타이에서 온 타이인이다. 이름은 '쿤.' 짧은 영어로 어찌어찌 의사소통은 하는데 쉽지 않다. 그와의 합이 잘 맞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외국인을 만났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청소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