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인 그는 KAIST 물리학과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마쳤다. 미국 예일 대학교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컬럼비아 대학교 의대 정신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KAIST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책의 발행일은 2011년 7월... 벌써 10년 전이다
<필사>
과학이란 마치 길 건너편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 반대편 가로등 아래서 열쇠를 찾고 있는 술 취한 사람과 흡사합니다. 가로등 아래에 빛이 있기 때문이죠.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 노엄 촘스키, 언어학자
< 케빈 베이컨 게임 >
"여섯 다리만 건너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이다"
한때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 크게 유행했던 '케빈 베이컨의 6단계'라는 게임이 있다... 영화에 함께 출연한 관계를 1단계라고 했을 때, 다른 할리우드 배우들이 케빈 베이컨과 몇 단계 만에 연결될 수 있는가를 찾는 게임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게임에서 대부분의 할리우드 배우들이 여섯 단계 이내에 케빈 베이컨과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케빈 베이컨이 장르를 넘나들며 많은 영화에 출현하기도 했지만, '할리우드 영화계'라는 사회가 생각보다 좁은 사회라는 의미이기도 하리라...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단지 영화판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케빈 베이컨 게임은 '여섯 다리만 건너면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이'라는 서양의 오래된 통념을 반영한 놀이다... 우리는 간단한 수학만으로 60억 인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좁은 세상이며, 배우 심은하와 내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가를 증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알고 지내는 사람이 대략 300명 정도 된다고 가정해보자. 학장 시절 동창들만 해도 족히 수백 명은 넘으니 그다지 후하게 어림잡은 숫자는 아닐 것이다.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각각 300명의 친구를 두고 있을 테니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은 9만 명에 이르게 된다. 4단계 건너 아는 사람은 9만 명의 제곱인 81억 명. 지구에 사는 60억 인구가 4단계면 모두 아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이 계산에는 미처 고려하지 못한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작은 메모지 한 장 분량의 이 증명과정에는 60억 인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거대한 사회가 하나의 균일한 집단이며, 그 구성원들은 거리의 제한 없이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는 가정이 숨어있다(22페이지)
세상이 이처럼 '지구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점점 작아진다는 사실이 전적으로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작은 세상 이론'은 중세에 페스트가 어떻게 유럽 인구를 3분의 1이나 감소시킬 수 있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작은 부족에서 발생한 에이즈가 어떻게 20년 만에 전 세계 3800만 명의 보균자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를 설명해 준다(30페이지)
컴퓨터 바이러스가 전 세계 컴퓨터 네트워크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더 이상 기우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위험할 정도로 작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32페이지)
< 머피의 법칙 >
"일상생활 속의 법칙, 과학으로 증명하다"
"하필이면 그때..."혹은 "일이 안되려니까..." 같은 말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용하느가!
그때마다 생각나는 법칙이 있으니 이름하여 '머피의 법칙'
왜 토스트는 항상 잼 바른 부분이 바닥으로 떨어질까?... 일상에서 벌어지는 실제상황은 토스트를 위로 던지는 경우가 아니라 대부분 식탁에서 떨어뜨리거나 손에 들고 있다가 떨어뜨리는 경우다. 버터를 바른 면이 위쪽을 향해 있던 토스트가 식탁에서 떨어지는 경우, 어떤 면이 바닥을 향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떨어지는 동안 토스트를 회전시키는 스핀에 의해 결정된다. 로버트 매슈스는 식탁 높이나 사람의 손 높이에서 토스트를 떨어뜨릴 경우 토스트가 한 바퀴를 회전할 만큼 지구의 중력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간단한 계산으로 증명했다. 대부분 반 바퀴 정도를 돌고 바닥에 닿기 대문에 버터를 바른 면이 반드시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는 것이다(39페이지)
< 웃음의 사회학 >
"토크쇼의 방척객들은 왜 모두 여자일까?"
1962년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다. 기숙학교에 다니던 12~18세의 여학생들이 전염병에 걸린 것이다. 이 병의 증세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것. 한번 터지기 시작한 웃음은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 동안 그칠 줄 몰랐고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웃음을 막을 순 없었다. 더욱 황당무계한 것은 이 '병적 웃음'이 옆사람들에게도 전염된다는 사실이었다. 그해 1월 30일 3명의 여학생에게서 처음 시작된 이 병은 순식간에 98명의 여학생들을 걷잡을 수 없는 웃음바다로 몰아넣었고, 증세는 더욱 심해져 두 달 반 만에 학교 문을 닫아야 하는 사태에 이르게 됐다. 집으로 돌아간 학생들은 본의 아니게 자신의 마을에 이 전염병을 퍼뜨리는 역할을 하게 됐고, 중앙아프리카에 있는 학교의 학생들까지 이 병에 걸려 그 후 2년 반 동안 무려 1천여 명의 사람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병'을 앓게 됐다고 했다. 증세는 무려 6개월 동안 지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물론 아직 밝혀진 바는 없다(63페이지)
메릴랜드 주립대학교 심리학과 및 신경과학과 로버트 프로빈 교수는 <웃음, 그에 관한 과학적 탐구>라는 책에서 웃음은 그저 유머에 대한 생리적인 반응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사회적 신호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메릴랜드 주립대학교 광장과 근처 거리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 1200명의 대화 내용을 분석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대화 도중 웃는 상황에서 농담이나 재미있는 이야기 때문에 웃는 경우는 10~20퍼센트에 불과하며, 대부분 '그동안 어디 있었니?' 혹은 '만나서 반가워요'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 가장 많이 웃는다고 한다... 게다가 농담을 듣는 사람보다 농담을 하는 사람이 1.5배 이상 더 많이 웃는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이나 코미디 영화를 혼자 볼 때와 여럿이 함께 볼 때 웃음의 빈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럿이 함께 영화를 볼 때 무려 30배나 더 많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프로빈 교수는 남성과 여성이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1.3배 더 많이 웃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것을 '이성과 대화할 때 남성은 여성을 웃기려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여성이 더 많이 웃게 되는 것 같다'라고 해석했다(70페이지)
< 심장의 생리학 >
"심장 박동, 그 규칙적인 리듬의 레퀴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리듬, 심장 박동은 생명의 박자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산소가 풍부한 혈액을 온몸에 공급하기 위해 심장은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1분에 평균 60회씩 우리의 가슴을 친다(151페이지)
잘 알고 있다시피 편안한 상태에서 심장은 대체로 1초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뛰고 있다. 그러나 장시간 정밀하게 측정해보면 심장 박동의 간격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불규칙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993년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를 하고 있던 중국인 물리학자 펭 충강 박사는 공동 연구자 골드버거 교수와 함께 열명의 건강한 피험자와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같은 수의 환자들의 심전도를 측정한 후, 두 그룹의 심장박동 간격을 비교해보았다. 그런데 결과는 우리의 상식과는 정반대였다. 정상인의 심장박동 간격이 훨씬 더 불규칙적이었으며, 환자들의 심장 박동 간격은 상당히 규칙적이었다. 그리고 펭 박사는 정상인의 심장 박동 간격이 '장기적으로 반대의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하면, 건강한 심장은 심장 박동이 느려 혈액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자체적으로 알아서 심장 박동 간격을 좁힘으로써 혈액공급량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데 반해, 심장질환에 걸리게 되면 과거의 심장 박동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 회복할 수 있는 피드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156페이지)
나이가 들어 노쇠할수록 심장의 불규칙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역동적이고 유연한 상태가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잘 말해준다. 이러한 특성은 비단 심장의 운동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규칙적인 곡선을 그리는 건강한 사람의 뇌파도 혼수상태에 빠지면 단순하고 주기적인 모양으로 바뀌고, 건강한 사람의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한 백혈구의 농도도 백혈병에 걸리게 되면 그 수치가 일정하고 규칙적으로 변하게 된다. 결국 생명체는 질서 정연한 방식으로 규칙적인 운동을 수행하는 정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불규칙적이지만 유연하고 역동적인 상태를 통해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제 '심장 박동은 규칙적이다'라는 상식은 과감히 던져 버리자(161페이지)
< 크리스마스 물리학 >
"산타클로스가 하루 만에 돌기엔 너무 큰 지구"
중학교 3학년 수준의 물리학 지식으로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이브에 했을 '일과 운동'을 한 번쯤 계산해 본다면, 새삼 산타클로스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니세프가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18세 이하 청소년은 전세계적으로 21억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대교를 믿는 어린이를 제외하고 나면 약 4억 명의 어린이가 산타클로스의 귀여운 고객이 된다. 한 가정에 평균 2.5명의 어린이가 있다고 보고, 그중 한 명만 착하다고 가정해도 산타클로스는 1억 6천만 가정을 방문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에 시달려야 한다.산타클로스에게 주어진 시간은 크리스마스이브 단 하룻밤뿐, 지구의 자전을 고려해 지구 자전의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선물을 나누어 줄 경우 약 31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31시간 동안 1억 6천만 가정을 방문하려면 1초에 1434가구를 방문해야 한다. 다시 말해 0.0007초 만에 지붕 근처에 썰매를 주차시키고, 굴뚝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 선물을 놓고, 다시 나와 다른 집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반지름 6400킬로미터의 지구 표면적은 5억 1000만 제곱킬로미터. 그중 29퍼센트만이 땅이므로 지표면의 면적은 1억 5천만 제곱킬로미터가 된다. 집들이 균일하게 분포해 있다고 가정하면 집과 집 사이의 평균 거리는 약 1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1킬로미터씩 떨어진 1억 6천만 가정을 31시간 동안 쉬지 않고 방문하려면 초속 1434킬로미터로 달려야 한다. 굴뚝을 타고 내려가 선물을 나누어주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사슴이 달리는 속도가 보통 시속 20킬로미터 정도라고 하니, 루돌프는 보통 사슴이 달리는 속도보다 26만 배나 빠른 속도로 크리스마스이브의 밤하늘을 질주해야 한다.... 산타클로스가 운반해야 할 선물도 만만치 않다. 아이들마다 레고 선물세트를 준다고 가정하면 무게는 하나당 약 1킬로그램 정도, 모두 합치면 무려 1억 6천만 킬로그램이 된다. 보통 사슴이 끌 수 있는 무게가 약 150킬로그램 정도이므로, 1억 6천만 킬로그램의 썰매를 끌려면 106만 마리의 사슴이 필요하다(292페이지)
언제부터인가 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면 다시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됐다... 선물을 운반하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1억 6천만 킬로그램이다 되는 선물꾸러미를 썰매 뒤에 싣고, 106만 마리의 사슴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0.0007초 만에 굴뚝으로 들어가 선물을 나누어주고 나오는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중력의 14억 배나 되는 힘을 이겨가며 31시간 동안 1억 6천만 가정을 쉬지 않고 방문해야 하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힘겨운 운명을 말이다. 몇 년 후 크리스마스 아침, 내게도 산타클로스의 선물에 즐거워할 아이들이 생긴다면 녀석들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이 '얼마나 값지고 고귀한' 것인가를(296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