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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 시간부자 May 08. 2022

시간부자58-②고요함의 지혜(필사)

1일 1독 같이 하실래요?

1일 1독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매일 1권을 읽었을 때 나의 변화를 알고 싶어 시작한 프로젝트!

2022.2.9부터 시작!!


고요함의 지혜

- 삶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마음의 힘-


1. 읽은 날짜 : 2022.4.29(금)    *58권째

2. 작가/출판사/분야 : 에크하르트 톨레/김영사/철학

3. 내가 뽑은 키워드(3가지) : 자신의 생각이라는 감옥, 지금 이 순간,  '명명하지 않는' 연습

4. 내가 뽑은 문장 : '왜 하필 나야?'라고 되묻지 않을 때 순응은 온다


<필사>

진정한 스승은 당신의 본연의 모습을 가리는 것, 존재의 심연에서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진리와 당신 사이에 가로놓인 무언가를 스스로 제거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5페이지)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생각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일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과거에 얽매이고 생각이 지어낸 좁은 자아상을 넘어서지 못한다(23페이지)


언뜻 보면 지금 이 순간은 그저 수많은 순간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삶이 하루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는 수천 개의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라. 지금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한 순간밖에 없지 않은가? 삶은 언제나 '이 순간'이 아니던가?(49페이지)


무슨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나의 삶이 얼마나 많이 변한다 하더라도 분명한 한 가지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이다(49페이지)


지금 이 순간과 친구가 될 때 나는 어디에 있든 편안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속에서 편안하지 않다면 나는 어디를 가든 마음속에 불안이라는 짐 보따리를 지고 간다(50페이지)


이 순간을 책임진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그러함'에 마음으로 반대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지금과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삶과 조화를 이루겠다는 뜻이다(53페이지)


사람들은 대체로 '지금'을 '지금 일어나는 일'과 혼동한다. '지금'은 '지금 일어나는 일'보다 더 깊은 차원에 있다. '지금'은 그것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은 '지금'에 담긴 내용물이다. '지금 이 순간'은 그 안에서 일어라는 어떤 내용물보다 더 깊다. 지금으로 한 발 들어설 때 나는 마음속에 있는 내용물에서 한발 걸어 나온 것이다. 멈춤 줄 모르는 생각의 흐름도 조금은 느려진다... 생각과 생각 사이에 공백이 생긴다. 드넓음과 고요함. 나는 내가 '나의 생각'보다 얼마나 더 넓고 깊은 존재인지 깨닫기 시작한다(55페이지)


그저 지금 이 순간의 '그러함'을 그대로 두어라. 그것으로 충분하다(75페이지)


예를 들어 나에게 어떤 장애가 생겨 걸을 수 없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이 상황은 그저 상황일 뿐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나의 장애를 나름대로 해석하여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나는 결국 이런 꼴이 되고 말았어. 휠체어에 처박힌 신세라니. 너무나 잔인한 삶이야. 인생은 너무나 불공평해. 왜 나만 이런 비참한 꼴을 당해야 돼?"....'왜 하필 나야?'라고 되묻지 않을 때 순응은 온다(76페이지)


인간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은 그가 하는 행동에 눈을 감으란 뜻이 아니다. 다만 그의 행동을 길들여진 양상으로 인식하고 수용하라는 뜻이다. 그의 정체성을 그것에만 근거해서 수립하지는 말라는 것이다(96페이지)


인간관계에 고요함을 가져가는 또 다른 방법으로 깊이 듣기가 있다. 누군가의 말에 진정 귀 기울일 때 고요함의 차원이 내면에서 솟아올라 관계의 중심에 자리한다. 하지만 깊이 듣기의 기술을 제대로 습득한 사람은 거의 없다. 대체로 사람들의 마음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그들은 당신이 한 말을 마음속으로 비판하거나 당신의 말이 끝난 다음 대꾸할 말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당신의 말은 전혀 듣지도 않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100페이지)


당신은 가까운 관계에서 똑같은 일이 자주 되풀이되는 것을 느끼는가? 사소한 의견의 불일치가 종래에는 격한 싸움으로 번져 감정적 고통을 겪는가?  이런 일의 근저에는 에고의 기본적 습관이 깔려있다. 바로 나는 당연히 '옳고' 너는 당연히 '틀린'것이다. 또한 특정의 사물이나 사람과 주기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을 만들려는 에고의 습관도 한몫한다. '나'와 '남'을 분리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에고이기 때문이다(101페이지)


너나없이 모든 인간의 내면에 누적되어온 감정의 고통이 있다. 이는 개인의 과거에서도 오지만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류가 겪어온 집단적 고통의 체험에서도 온다. 내면의 에너지장인 이 '고통의 몸'은 때로 우리를 완전히 장악한다. 고통의 몸이 살아가려면 더 많은 감정적 고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통의 몸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여 극히 부정적인 것으로 만든다. 부정적 생각과 주파수가 딱 맞는 고통의 몸은 가까운 사람들을 자극하여 부정적 감정이 나오도록 부추긴다. 특히 파트너를 건드려놓고는 눈앞에 전개되는 고통의 해프닝을 즐긴다... 삶을 너무나 힘들게 만드는 고통의 몸, 내 몸 깊은 곳에 자리한 고통과의 무의식적인 일체화에서 탈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알아차리면 된다. 과거의 고통이 내가 아님을 알며 그저 과거의 고통이라고 알아차리면 된다(101페이지)


누군가를 만났을 때 비록 순간에 불과하더라도 당신은 그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함으로써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가? 아니면 그 사람을 다만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하나의 기능이나 역할로 격하시키는가? 슈퍼마켓 계산원과 당신의 관계는 어떠한가? 주차관리원은? 수선공은? 고객은?... 잠시만 전념하면 충분하다. 그 사람을 바라보거나 그의 말을 들을 때 2,3초 정도 생생한 고요함이 자리하면 된다(105페이지)


사람들은 끝이 오면 불편해한다. 모든 것의 끝은 조금이나마 죽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언어권에서 헤어질 때 '잘 가'라는 인사 대신 '또 만나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삶에서 끝을 받아들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끝을 환영하는 법을 배운다면 처음에는 불편하게만 느껴지던 공허함이 어느 순간 깊고 평화로운 내면의 여유로움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매일매일 이렇게 죽는 법을 배움으로써 삶에 나를 좀 더 열 수 있다(112페이지)


삶을 살다 보면 늘 상실을 겪는다. 재산이나 집 가까운 사람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명예나 직업, 몸의 기능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깊은 상실을 경험할 때마다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죽어버린다. 내가 누구라고 알고 있는 자아상이 점점 작아지고 초라해진다.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는데... 그것을 읽은 나는 그럼 누구지?'(114페이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 하나하나를 다 사실이라고 여길 때 많은 고통과 불행이 일어난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주변 상황이 아니다. 육체적 고통은 줄 수 있겠지만 그것들이 나에게 불행을 주지는 않는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생각이다. 상황에 대한 나의 주관적 판단, 나의 이야기가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날씨도 거지 같군"

"애프터 신청도 안 해주다니 그 남자는 밥맛이야"

그것은 위축되는 자아상을 보강하기 위해 무의식 중에 만들어지며 언제나 나는 '옳은 쪽' 남이나 사물은 '그른 쪽'이 되어야 한다...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없다면 삶은 얼마나 단순 소박할까?

"지금 비가 온다"

"그 남자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126페이지)


명명과 분류는 습관화된 것이지만 타파할 수도 있다. 먼저 작은 것부터 '명명하지 않는' 연습을 하라. 예를 들어 비행기를 놓치거나 컵을 깼거나 진창에 넘어졌을 때, 그것을 '나쁜 것' '고통스러운 것'으로 명명하지 않는 것이다. 그 순간의 '그러함'을 즉시 받아들이는 것이다(128페이지)


이제 선악을 넘어서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이 다가오든 '좋은 것' '나쁜 것'이란 명명을 삼가야 한다. 어떤 체험이 다가오든 대립하지 않고 수용하는 관계를 이룰 때 전에는 '나쁜 것'이라 부르던 것들이 삶 자체의 힘을 통하여 당장은 아니더라도 빠른 시간에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129페이지)


자신의 마음을 명료히 보면서 스스로 고통을 만들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다. 겉으로 보기에 '나쁜 것' ' 악한 것'으로 보이는 모든 조건과 사람과 상황 뒤에는 커다란 선()이 감추어져 있다(13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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