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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 시간부자 May 20. 2022

시간부자69-②너의 하늘을 보아(필사)

1일 1독 같이 하실래요?

1일 1독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매일 1권을 읽었을 때 나의 변화를 알고 싶어 시작한 프로젝트!

2022.2.9부터 시작!!


너의 하늘을 보아


1. 읽은 날짜 : 2022.5.16(월)    *69

2. 작가/출판사/분야 : 박노해/느린걸음/문학

3. 내가 뽑은 시(3편) : 작게 살지 마라, 시인의 사치, 비난자

4. 나의 감상평 : 요즘.나는 그냥 시가 좋다


<필사>

그 약속이 나를 지켰다

널 지켜줄게

그 말 한마디 지키느라

크게 다치고 말았다

비틀거리며 걸어온 내 인생


세월이 흐르고서 나는 안

젊은 날의  무모한 약속

그 순정한 사랑의 언약이

날 지켜주었음을


나는 끝내

너를 지켜주지도 못하고

깨어지고 쓰러지고 패배한

이 치명상의 사랑밖에 없는데


어둠 속을 홀로 걸을 때나

시련의 계절을 날 때도

널 지켜줄게

붉은 목숨 바친

그 푸른 약속이

날 지켜주었음을

(11페이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혼자 있기를 놓아한다


나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깊은 침묵을 좋아한다


나는 빛나는 승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의미있는 실패를 좋아한다


나는 새로운 유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고전과 빈티지를 좋아한다


나는 도시의 세련미를 좋아한다

그래서 광야와 사막을 좋아한다


나는 소소한 일상을 좋아한다

그래서 거대한 악과 싸워나간다


나는 밝은 햇살을 좋아한다

그래서 어둠에 잠긴 사유를 좋아한다


나는 혁명, 혁명을 좋아한다

그래서 성찰과 성실을 좋아한다


나는 용기 있게 나서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떨림과 삼가함을 좋아한다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를 바쳐 너를 사랑하기를 좋아한다

(13페이지)


작게 살지 마라

내 힘으로 공들여

쟁취하지 못한 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받을 권리가 있다고 여기고

받는데 익숙해지면

 받기만 바라는 존재로

퇴화해 갈 것이다


쟁취하라, 오직 자신의 힘과 분투로

그리하면 두 가지를 얻게 될 것이다


쟁취한 그것과

언제든 새로운 것을 쟁취할 힘과

가능성의 존재인 자기 자신을


작게 살지 마라

작아도 작게 살지 마라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따라가다 보면

소소한 것들이 기쁨이 되고

소소한 것들이 전부가 되고 상처가 되다


작게 살지 마라

지금 가진 건 작을지라도

인간으로 작게 살지 마라

(16페이지)


죽은 강아지를 안고

죽은 강아지를 안

걸어간 적이 있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이 자그만 생의 무게도

...

죽어간 것들은 무거웠다

진정 사랑하다 죽어서

내 품에 안고 걸은 것들은

두고두고 무거웠다

...

어느 철길과 해변과 벼랑에서

공단 변두리와 철채선 인근에서

의문사로 던져진 피 묻은 동지들,

죽은 내 어머니와 사랑의 사람들


그들의 생은 생각보다 무거워서

나는 안지도 업지도 못하고

푸른 생나무 가지 위에 눕혀

질질 끌고 나아가야 했다

...

진정 사랑하다 죽어서

내 품에 안고 걸어가 묻어준 것들

그 무게와 깊이만큼 생생히 살아있다


진정 사랑했으나 끝내

푸른 나무로 심어주지 못하고

저 바람 속에 어둠 속에 두고 온 이들은

두고두고 날 울리며 내 안에 살아있다

(18페이지)


비움의 사랑

없네

네가 없네


해는 뜨고 별이 떠도

네가 있던 그 자리

네가 없네


나 그렇게 살아가네

비움으로 살아가네


사랑이 많아서

비움이 커져가네


너와 함께한 말들도 비워지고

너와 함께한 색감도 비워지고

너와 함께한 공기도 비워지고


나 홀로 있는

비움의 시간이 많아지네

(25페이지)


둘러싸이라

건강함을 기원하라

그리고 그 생각에 둘러싸이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라

그리고 그 빛에 둘러싸이라


고귀함을 갈망하라

그리고 그 인연에 둘러싸이라


사랑, 사랑에 투신하라

그리고 그 신비에 둘러싸이라


속셈 없이 구하여라

그리고 그 응답에 둘러싸이


간절하게 구하여라

그리고 그 하나에 응답하여라

(34페이지)


내가 여행하는 이유

여행을 떠나지 않은 이에게

세상은 한쪽만 읽은 책과 같아


탐험을 나서지 않은 이에게

인생은 반쪽만 펼친 날개와 같아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자기 밖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


나 자신마저 문득 낯설고

아득해지는 저 먼 곳으로

...

내가 여행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나에게 가장 낯선 자인

나 자신을 탐험하고 마주하는

(39페이지)


비난자

나를 안다 하는 사람은 많으나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어서


나를 알지도 못하고 비난하는 사람은

얼마나 고마운 나의 일꾼들인가

그가 내게 쏜 화살이 빗나가는 것을 보고

나는 나의 위치를 올바로 점검한다


그들은 나에게 거기에

그렇게 머물러 있으라 요구하나

난 이미 여기 와있고

날이 새로와지고 있는 중이니

(43페이지)


진정한 멋

사람은 자신만의

어떤 사치의 감각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위해

나머지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

제대로 된 사치는 최고의 절약이고

최고의 자기 절제니까


사람은 자신만의

어떤 멋을 간직해야 한다

비할 데 없는 고유한 그 무엇을 위해

나머지를 과감히 비워내는 것

진정한 멋은 궁극의 자기 비움이고

인간 그 자신이 빛나는 것이니까

(47페이지)


10억 줄게 감옥 갈래

몇 년 전  아이들에게

10억 원 주면 감옥 1년 살 텐가

설문조사를 했더니 다수가

감옥 가겠다는 보도를 놓고

아이들 인성이 이 지경이라며

교수님들이 개탄을 하시었다

...

묻는다고 다 답하지 마라

어떤 설문조사도 여론조사도

섣불리 답하거나 믿지 마라

우린 예, 아니오 답하기 위해

정해진 답을 맞히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저들의 잘못된 질문에 무시를

저들의 의도된 질문에 경멸을

언론의 보도와 꼰대의 개탄에 주먹을

(47페이지)


내가 죽고 싶은 자리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음을 향해 걷고 있다


내가 죽고 싶은 자리가

진정 살고 싶은 자리이니


나 지금 죽고 싶은 그곳에서

살고 싶은 생을 살고 있는가

(59페이지))


세상이 조용해져 버린 날

평생 지긋지긋하던 잔소리가 툭,

갑자기 너무 조용해져 버린 날

래라저래라 들려오던 소리가

메아리도 없이 적막해져 버린 날

귀찮기만 하던 전화벨도 끊기고

상이 너무 고요해져 버린  날

...

가난하고 모자라고 잘해주지 못했다 해도

나의 날개가 돋아나 혼자 하늘을 날 때까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품어준 것만으로 충분한,

한 인간에게 그토록 위대하고 절대적인 존재

그게 아빠와 엄마라는 이름의 존재야

당신은 내게 그런 하늘 같은 존재야

(76페이지)


누가 보아주지 않아

알려지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위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밤하늘에 별은 뜨고

계절 따라 꽃은 피고


누아 보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의 길을 간다

(82페이지)


첫 걸음마 하는 아이처럼

그냥 걸어라

첫 걸음마 하는 아이처럼


냥 걸어라

상처도 두려움도 모르는 아이처럼

...

걸어오는 길들이 너를 이끌어주고

여정의 놀라움이 너를 맞아주리니


네 영혼이 부르는 길을

그냥 걸어라

(87페이지)


시인의 사치

서촌 골목길을 걷다가

단아한 간판이 예뻐서 들어갔더니

어머나, 이건 딱 내 취향

질 좋은 공책이랑 수첩과 펜

1800년대의 디자인 좋은 책들과

세계의 잡지들과 은은한 향초가

시간을 거슬러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서른 중반의 주인에게

세계 구석구석에 숨은 귀한 작품들을

데려와주어 감사해요, 인사를 건네고서

1870년대에 만들어진 벽돌 두께의

자그만 식물 사전 한 권과

소문만 들었던 그 잡지 창간호와

공책과 수첩을 품에 안아버렸다


아, 이번 달 난 또 과소비다

그녀가 내어준 쿠키와 홍차를 음미하며

나는 텅 빈 지갑을 위로하듯 속삭였다

흔히 과소비란 남들 보란 듯이 쓰는 돈이지,

하지만 어떤 과소비는 최고의 잉태이지,


나는 이 작고 두꺼운 벽돌 책을 안고

두근두근 황홀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 스크린에 무수한 영상과 글이 명멸해도

좋은 책은 하나의 위대한 건축이지

난 150년 전의 이 책을 씹어 삼켜

그보다 오래갈 한 권의 책을 쓰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네가 순례할

감동의 건축인 책을 펴내고 말 테다


울적울적 텅 빈 내 지갑

이 빌어먹을 시인의 가난

이 얼어 죽을 시인의 사치

나는 책과 문구를 가슴에 안고

소년처럼 명랑한 얼굴로 걸어 나선다

(140페이지)


행복을 붙잡는 법

우울한 기분으로 먹구름을 몰지 마라

체념한 걸음으로 지구 위를 끌지 마라

냉랭한 마음으로 눈보라를 일지 마라


좋은 이는 바로 가까이에서 걸어오고 있다

그가 지금 네 곁을 영원히 스쳐가고 있으니

행복을 붙잡는 법을 배워라


귀를 막고 걷지 마라

고개를 들어 앞을 보라

먼저 미소 띤 눈인사를 건네라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가려보는

안목과 지성을 길러라

저 별들 사이를 걸어온 고유한 빛을

알아보는 내적 식별력을 길러라


타인의 시선에 반쯤 눈감아라

오직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라

상처받고 실망하는 걸 웃으며 견뎌내라


지금 이 지구에 단 둘이 마주 걷고 있다

오, 세상의 그 많은 사람과 조건이 다

배경에 불과한 순간이 지금이다


그가 바람같이 스쳐 지나간다

번개같이 뛰어가 조우하라

좋은 이는 네 곁을 지나가고 있다

(214페이지)


묻지 말자

좋은 일을 하면서

앞일을 묻지 말자


사랑하는 이에게

받을 걸 묻지 말자


나의 길을 가면서

비교를 묻지 말자

(219페이지)


너의 때가 온다

너는 작은 솔씨 하나지만

네 안에는 아름드리 금강송이 들어있다


너는 작은 도토리알이지만

네 안에는 우람한 참나무가 들어있다


너는 작은 보리 한 줌이지만

네 안에는 푸른 보리밭이 숨 쉬고 있다


너는 지금 작지만

너는 이미 크다


너는 지금 모르지만

너의 때가 오고 있다

(298페이지)


사랑이 그러네요

난 정직한 사람이라 들었는데

사랑이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네요


난 현명한 사람이라 들었는데

사랑이 나를 바보처럼 만드네요


난 용감한 사람이라 들었는데

사랑이 나를 초라하게 만드네요


난 한결같은 사람이라 들었는데

사랑이 나를 변덕쟁이로 만드네요


난 명랑한 사람이라 들었는데

사랑이 나를 눈물짓게 만드네요


사랑이 그러네요

그러네요 사랑이


나 벌거벗은 인간으로

오 가련한 한 사람으로


사랑은 다 내 탓이라고 하고

사랑은 다 괜찮다고 하고


사랑이 그러네요

그러네요 사랑이

(467페이지)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52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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